2017. 8. 교토 여행
노부부가 운영하는 카페 겸 바. 근사한 고전적인 스피커와 더 근사한 재즈 엘피 컬렉션을 갖추고 있다. 낮 열두시부터 장사하는데, 커피 한잔만 마시고 일어나기에는 몹시 아쉽다. 빨간색 바, 구색을 갖춘 싱글몰트, 잔와인도 있다. 손님은 아까부터 미동도 없이 스피커 중앙의 테이블에서 음악을 듣는 늙은 남자. 내 옆 자리에서 한시간 넘게 십자말풀이를 하면서 줄담배를 피우는 나이든 여자. 그리고 30분에 한번은 업무상 전화온 것이 없는지 확인하는 나 뿐이다.
커피를 한 잔 주문하니 남편이 가스스토브의 불을 켠다. 전기 포트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의 나이 절반은 됨직한 커피분쇄기로 원두를 갈고, 드립퍼에 꼼꼼히 거름종이를 밀착시킨다. 손가락으로 어찌나 꼼꼼히 찔러대는지, 손에 뭐가 묻었다면 거름종이에도 달라붙을 것 같다.
앉아있는 동안 아트 블레이키의 캐러번, 칙 코리아의 하얗고 파란 자켓, 그 다음으로 맥코이 타이너를 들었다. 엘피를 바꾸는 것은 아내 몫인데, 그 동작이 어찌나 느긋하고 신중하던지 속주하는 피아니스트도 잠시 주춤한다. 그렇게 틀어 놓은 엘피의 자켓을 선반뒤에 올려놓는다. 이미 수천 번 해본 듯 익숙하다. 엘피 한장에 30분, 정오부터 자정까지 하루 12시간 오픈, 하루에 24장 플레이, 한달에 이틀 휴점, 1970. 3. 3. 개점.
할머니는 뭔가 불만이 있어보이는 표정인데, 절대 말하지 않고 수십 년 동안 참아온 것 같다. 할아버지는 수십년 동안 할 것 다하고 - 가령 집에 돈이 없어도 엘피를 사들이는 것을 포함해서 - 인생이 여전히 재밌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남아있는 머리칼을 긁다가, 책을 읽다가, 손님이 커피를 주문하면 물을 올려놓고, 그 사이사이 손으로 재즈박자를 맞춘다. 할머니는 계속 그 표정으로 손님의 잔을 치우고 설겆이를 한다.
팔십에 가까울 것 같은 이들 부부에게, 나같은 젊은치(?)가 알아채기 힘든 경지가 있을 것이다. 특정한 희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체념도 아닌, 평화로움 그 비슷한 무엇. 이들 부부의 무표정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한가하게 앉아서 손님이 오든말든 항상 흐르는 재즈를 듣고, 메뉴판을 그랜드피아노 모양으로 꾸미고, 가스스토브에 불을 붙이고, 드리퍼에 꼼꼼히 손을 집어넣는다. 동작 하나하나는 무척 느리지만, 거리낌도 주저함도 없고 차라리 호쾌해 보인다.
부지런히 살고있지만, 이미 할 일 다 했다는 간지다.
(위 글은 2017. 8. 처음 교토 여행 때 쓴 것. 아래 사진은 2019. 5. 동행 P와 함께 한 여행때 찍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