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8. 화분

by 정호성

오늘 다섯시 이십분경, 길 가다가 열 두어살 정도 되는 아이가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 나는 안풀리던 일을 곰곰히 생각하며 걷고 있던 중이어서, 그 아이가 두 손으로 신중하게 작은 화분을 움켜쥐고 걷고 있었고, 그 화분에 카네이션 꽃이 심어져 있었고, 오늘이 어버이날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데 약 2, 3초 정도 시간이 걸렸다. 그 아이를 스쳐보낸 것은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아이의 표정에서 기대감, 조바심, 흥분, 그리고 뿌듯함이 뒤섞여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순간의 장면은 사진처럼 내 머리에 각인되었다. 4 x 6 사진의 폭. 오른편에 도로 1/3, 가운데 인도, 왼편1/3에 주유소, 어수선하고 별볼일 없는 길거리, 키가 작고 동그란 안경을 쓰고, 책가방을 매고, 두 손을 가슴 앞까지 들어올려서, 작은 화분의 좌우를 감싸고, 뛰고 싶은 것을 참지만, 보통 속도보다는 약간 빠르게 걸어가는 아이의 모습이 아웃포커스되어 사진 정중앙에 . 옷차림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아이를 지나치고 나서 나 혼자 배시시 웃음이 났다. 사진을 못찍은 것이 못내 아쉬웠고 아래 사진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앞으로 이 사진을 보면, 오늘 마주친 그 아이의 모습이 생각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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