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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창희 Feb 06. 2020

최상위 포식자가 되기 위한 스토리텔링

스콧 갤러웨이.『플랫폼 제국의 미래』.

스콧 갤러웨이의『플랫폼 제국의 미래』는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네 개 조직에 관한 책이다. 이들은 어떤 면에서 국가보다도 강력하다. 단일한 국가에서만 영향력을 발휘하는 게 아니라 글로벌한 수준의 변화를 일으키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최상위 포식자’라는 표현은 갤러웨이가 아마존에게 붙여 준 표현이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다른 주인공들에게도 적당한 표현이다. 이들이 어떻게 성장해 왔는지, 이들이 얼마나 위대한지에 관한 이야기들은 지나칠 정도로 많다. 하지만 이들이 결코 선한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이들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책을 찾기는 쉽지 않다. 『플랫폼 제국의 미래』의 미래가 바로 그런 책이다.         


“이들 거인기업과 맞서 싸우자거나 이들에게 ‘나쁜 놈’딱지를 붙이는 것은 허망한 일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틀린 생각일 수도 있다.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이 네 개의 거인기업을 알아야 비로소 우리가 사는 디지털 시대를 제대로 이해하고, 우리와 우리 가족의 경제적 안정을 튼튼하게 보장할 역량을 쌓을 수 있다는 사실만큼은 확신한다(400-401쪽).”     


아마존, 애플, 페이스북, 구글 이 네 기업을 좋아하건 싫어하건 이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나는 틈틈이 페이스북을 확인한다. 알람이 뜨는 순간은 말할 것도 없고 무엇을 해야 할지 별다른 생각이 없을 때 무의식적으로 페이스북을 확인하고 있다. 하지만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갤러웨이에 따르면 페이스북은 “전 세계인의 친구”니까. 보고서를 쓸 때 나한테 가장 유용한 것은 고전과 교과서가 아니다. 바로 구글이다. 이 역시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갤러웨이에 따르면 구글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현대판 신”이니까.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이 네 기업의 장점을 설명할 때 기술적 우위나 전략적 우위 중심으로 설명하지 않고, 이들이 자신들의 서사를 어떻게 구축해 왔는지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물론, 기업별로 편차는 존재한다. 갤러웨이는 이들 기업이 투자를 잘 받을 뿐 아니라 정부의 규제에서도 비교적 잘 빠져 나오는 이유를 이들이 구축해 놓은 신화적인 서사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많은 이용자들이 좋아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은 정부 입장에서도 함부로 규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흥미로움을 넘어 어느 정도 통쾌함을 선사했던 것은 애플에게 관한 갤러웨이의 분석이다. 갤러웨이가 보기에 애플은 과시적 소비를 유도하는 명품이다. 스티브 잡스라는 신화적 인물이 뿜어내는 아우라, 전세계 도처에 위치한 애플 스토어들은 애플 이용자들에게 내가 애플 유저라는 만족감을 선사해 준다. 애플 제품을 이용해 보려고 수차례 시도해 보았다가 이제는 포기한 나로서는 독설에 가까운 갤러웨이의 분석이 무척 흥미롭게 다가왔다. 애플은 전형적으로 최상위 포식자가 되기 위한 스토리텔링 구축에 성공한 기업이다. 갤러웨이는 다른 기업들이 애플을 따라올 수 없는 가장 큰 진입 장벽이 세계 곳곳에 있는 애플 스토어의 위용이라고 설명한다.      


아마존, 애플, 페이스북, 구글은 수많은 고용을 창출하여 중산층을 지탱했던 과거의 기업들을 몰아내고 있다. 이들은 고용을 위협하고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갤러웨이는 지적한다. 이들은 훨씬 적은 고용으로 훨씬 큰 수익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미 그들 없이는 살기 어려운 지경에 놓여 있다. 어떤 면에서 우리는 그들에게 포획되어 있다. 이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그들이 어떠한 존재인지 이해하는 것이다. 『플랫폼 제국의 미래』는 그 이해를 위해 상당히 유용한 책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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