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창희 Apr 25. 2020

영상서사의 통속성과 형식 실험

<부부의 세계>와 <사냥의 시간>

최근 이런저런 기회에 코로나 사태로 인해 영상 소비가 늘어나는 것이 갖는 의미에 대해 지면을 통해 언급하거나 웨비나를 통해 얘기했다(웨비나는 웹을 통해 이루어지는 세미나를 의미한다. 코로나로 인해 대부분의 학술적인 세미나가 웨비나의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최근 넷플릭스가 2020년 1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코로나로 전세계가 신음하고 있는 동안 넷플릭스의 글로벌 유료 가입자는 1,577만명 증가했다. 이제 전세계에서 넷플릭스에 가입한 가입자는 1억 8,286명이다. 넷플릭스의 자체적인 전망에 따르면 넷플릭스의 2분기 가입자는 750만명 증가한 1억 9036명이다(출처: https://s22.q4cdn.com/959853165/files/doc_financials/2020/q1/updated/FINAL-Q1-20-Shareholder-Letter.pdf). 미국과 유럽의 코로나가 장기화 될 전망이기 때문에 넷플릭스의 글로벌 가입자 수는 2020년에 2억 명을 돌파할 수도 있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가입자 규모다.     


어느 시기에나 서사를 주도하는 매체가 있다. 소설은 근대를 대표하는 서사 장르였다. 영화와 방송이라는 매체가 세상에 등장한 이후에도 소설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단순히 판매 부수와 같은 객관적인 수치뿐 아니라 사회에 미치는 힘도 컸다. 1980년대부터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서사를 주도하는 매체는 방송이었고, 방송이 주도하는 서사의 중심에 드라마라는 장르가 있었다. 이 드라마라는 장르와 영상 서사에 있어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영화라는 영상 형식은 이제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활발하게 소비되고 있고, 그 중심에 넷플릭스라는 글로벌 사업자가 있다. 지금은 서사를 주도하는 매체가 방송에서 스트리밍으로 전환되는 과도기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코로나 사태는 방송에서 스트리밍으로의 전환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가정에서 영상을 시청하더라도 방송보다 스트리밍 서비스가 보다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콘텐츠를 이용하는 것에 용이하기 때문이다. 그럼 향후 방송과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전달되게 될 영상 서사는 어떠한 방향으로 진화해 나갈 것인가? 이 글에서 내가 이와 관련하여 다루게 될 콘텐츠들은 JTBC에서 방영되고 있는 <부부의 세계>와 윤성현 감독이 연출하고 넷플릭스에서 릴리즈 된 <사냥의 시간>이다.      

TV 드라마 속 세상은 통속의 세계이다. 통속은 부정적인 개념이 아니다. 우리는 성(聖)이 아닌 속(俗)의 세계에 속해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일반 대중, 산업적으로 얘기하면 광고주에게 가장 매력적인 세대라고 알려진 20~49세에 속한 사람들을 타깃으로 제작된 드라마가 통속적이라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다. <부부의 세계>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부부의 세계라기보다는 불륜이다. 서사가 통속적이라는 말이 부정적으로 쓰일 때 너무 흔하게 다뤄진다고 비판받는 소재 중 하나가 불륜이다. 하지만 불륜 자체는 나쁜 소재가 아니다. 비평적 평가에 영상 서사 보다 훨씬 민감한 소설에서 불륜은 90년대에 즐겨 소재로 사용되어 온 테마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부부의 세계>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 확실히 <부부의 세계>는 강한 흡인력을 갖춘 서사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여전히 지상파가 아닌 채널에서 시청률 20%를 상회하기는 어렵다. 닐슨코리아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4월 24일 금요일 <부부의 세계> 시청률은 20.5%이다. 여전히 불륜이라는 테마는 시청자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는 소재인 것이다.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부부의 세계>는 폭력성 등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는 작품이다. 이와 동시에 내가 아쉬움을 느끼는 것은 <부부의 세계>가 다루고 있는 계급적 특성이다. 고산시라는 가상의 공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의 클리셰들은 대부분은 상류 계급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는 <부부의 세계> 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의 교육문제를 핍진하게 그려 내어 화제가 되었던 <스카이 캐슬> 역시 교육문제에 있어 특정 계급으로 국한될 수밖에 없는 영역을 다루었다. 아직까지는 선망의 대상이 되는 계급의 이야기가 보편적인 주제로 선택되고 경쟁력을 얻을 수 있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과연 언제까지 이러한 형식이 대중적인 공감을 폭넓게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자신 보다 높은 계층의 서사를 미디어를 통해 간접적으로 접할 경우 삶의 만족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연구들은 수년간 폭넓게 축적되어 왔다. 공익적인 관점이나 비평적으로 접근하자는 것이 아니라 많은 대중들이 공감할 수 있는 ‘통속’이라는 개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사냥의 시간>은 <부부의 세계>에 정반대에 놓여 있는 작품처럼 여겨진다. 애초에 극장에서 개봉을 기다리고 있었던 <사냥의 시간>은 코로나로 인해 처음으로 릴리즈하는 매체로 넷플릭스를 선택했다. 23일 오후 4시에 릴리즈 된 <사냥의 시간>은 주변의 반응을 보면 이미 절반쯤은 성공을 거둔 느낌이다. <사냥의 시간>은 처음 릴리즈된 23일 오후 9시에 넷플릭스 유튜브를 채널을 통해 영화 평론가 이동진을 사회자로 온라인으로 관객가의 대화(GV)를 갖기도 했다. 넷플릭스는 시간의 제약 없이 이용할 수 있는 매체이지만 넷플릭스는 <사냥의 시간>의 릴리즈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이동진이라는 영향력 있는 평론가를 활용하여 릴리즈 되는 날의 이용률을 높이고자 한 것이다(그 전략에 동원된 이 중 하나가 필자다. 나는 이동진이 진행하는 GV를 보기 위해 부리나케 집에 와서 <사냥의 시간>을 보고 GV까지 봤다).       


<사냥의 시간>은 국내에서는 드문 디스토피아 혹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의 영화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정확한 시간적 배경이 나와 있지 않다는 것에 대한 비판도 좀 있는 거 같은데 그 자체가 결함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영화화되기도 했던 코맥 맥카시의 대표작 중 하나인 『로드』도 정확한 시공간에 대한 설명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사냥의 시간>에 대한 평가는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영화보다 넷플릭스적이라는 호평부터 <파수꾼>의 윤성현 감독의 작품치고는 너무 실망스럽다는 혹평까지 다양한 것 같다.          


한국 드라마에서 가장 흔하게 채택되는 소재로 방송에서 본방된 이후 VOD와 스트리밍을 통해 볼 수 있는 <부부의 세계>와 디스토피아적인 상상력을 동원하여 넷플릭스를 통해 제공된 <사냥의 시간>은 극과 극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공통점이 있다면 현재까지는 두 영상 서사 모두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끄는 것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두 서사 모두 배우들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것이다.     

  

한동안 오래 아니면 생각보다 훨씬 더 오래 <부부의 세계>와 같은 익숙한 세계와 <사냥의 시간>과 같은 낯선 세계는 영상시장이라는 생태계에서 공존할 것이다. 하지만 영상시장에서 형식적 실험은 계속해서 일어날 것이고, 우리에게 익숙했던 세계는 이용자들에게 피로감을 주게 될 수도 있다. 나는 여기서 어느 쪽의 편을 들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대전환기 속에 놓여 있는 이용자로서 과거의 모습에 가까운 영상 서사와 새로운 형식 실험의 도상에 놓여 있는 영상 서사가 공존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내가 이 글에서 얘기하는 형식 실험은 프로그램 포맷이나 장르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장르를 포함한 제작 방식, 유통 방식, 홍보 방식을 아우르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비평적 가치를 높이기 위한 형식 실험도 포함된다. 넷플릭스가 아카데미에 꾸준히 도전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비평적 가치를 가진 콘텐츠 확보는 플랫폼의 지속적인 성장에 중요한 요소가 되어 가고 있다.      


<부부의 세계>는 우리가 여전히 통속의 세계에 관심이 많으며, 대한민국에서 드라마라는 장르가 어떤 기능을 하는가를 확인시켜 주고 있다. <사냥의 시간>은 젊은 세대가 가지고 있는 암울한 미래 인식이 한국적 방식으로 SF화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뿐 아니라 새로운 유통과 홍보 방식을 통해 우리가 영상 콘텐츠를 소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부부의 세계>가 보여주는 전통적 영상 장르적 특성과 <사냥의 시간>과 같은 새로운 주제의 새로운 유통 방식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다. 영상 소비가 늘어나고 있는 지금 영상을 제작하는 쪽에 있는 이들이나 소비하는 쪽에 있는 이들이나 영상 서사라는 형식이 우리에게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시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용자 중심 시대의 정보 주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