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받을 수 없는 천국

장희원, 「우리(畜舍)의 환대」

by 노창희

한 번도 명확하게 의사 표현을 해 본 적은 없지만 가끔씩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 ‘너’는 왜 ‘내’기준과는 다른 방식으로 행동을 하고 사고를 하니 하는 투의 얘기들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왜 애를 갖지 않느냐고. 물어보는 무지한 폭력의 언어들에 대해. 무지한 폭력이라고 얘기하는 이유는 그들이 자신의 언어에 내재한 폭력성을 깨닫지 못한 채 폭력의 언어를 구사하기 때문이다. 반대의 경험을 하는 경우도 있다. 자신이 하는 말의 폭력성을 지각하고 예의를 굳이 갖출 필요가 없는 사이 임에도 불구하고 격식을 갖추어 내 입장을 헤아려 주는 분도 계시다. 삶이란 것에 희망이 있다면 바로 주변에 그런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느낄 때일 것이다.


“이 단편소설은 누군가의 세계가 얼마나 천국인지 보여주고 싶다는 단순한고 직접적인 나의 울분에서 시작된 것이다(작가노트「죄인」, 328쪽).” 장희원의 이 문장은 이 소설의 작의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이 구체적인 작의는 「우리(畜舍)의 환대」 에서 소설적인 방식으로 전경화되어 드러난다. 결코 단순하지 않은 방식으로.


차량손해사정사로 일하고 있는 재현의 아들 영재는 호주로 유학을 가 있는 상태이다. 재현은 호주로 유학 가 있는 영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영재는 줄곧 재현의 기준을 충족시켜 주는 아들이었지만 어느 순간 괴도를 이탈 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재현의 입장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남성 간의 성관계를 다룬 영재가 보고 있던 영상을 통해 영재의 성정체성을 의심하게 된 재현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영재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우리(畜舍)의 환대」에서는 이것이 트라우마가 되어 영재가 호주로 갔으며 가정으로 돌아오고 복귀하고 싶지 않은 상황임을 암시한다.


영재가 한국으로 오고 싶어 하지 않으므로 재현 부부가 영재를 만나기 위해서는 호주로 갈 수밖에 없다. 호주에 간 재현은 영재가 흑인 노인과 20대 초반의 민영과 함께 산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충격을 받는다. 「우리(畜舍)의 환대」에서 괄호로 들어 있는 축사라는 단어가 제목에 포함되어 있는 이유는 아마도 다음과 같을 것이다. 재현 부부 입장에서 흑인 노인과 변기를 닦는 일을 하는 20대 초반의 민영과 영재가 함께 형성하고 있는 유사 가족은 동물들이 살고 집을 뜻하는 축사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집에는 아들과 흑인 노인, 어린 여자애가 함께 사는 셈이었다. 재현과 아내는 입을 꾹 다물었다(317쪽).”


재현은 민영과의 대화 중에 영재가 자신이 폭력을 행사 한 일을 민영이 알고 있으며, 그것 때문에 아직도 종종 괴로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영재가 속해 있는 유사 가족은 재현 부부를 극진히 대접하지만 재현 부부는 축사 같이 느껴지는 이 집이 불편하기만 하다. 그리고 이 집 건너편에 있는 세계를 자신들이 속해야 할 세계라고 생각한다. “건너편에서 집집마다 노란 불빛들이 일렁이고 있었다. 그는 아들이 저런 곳 중 한 곳에 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는 자신이 지금 너무나도 저쪽으로 가고 싶어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간절히 저쪽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의 꼴이 우스웠다(321쪽).”


집주인인 흑인 노인은 이 집에서 묵고 갈 것을 여러 차례 권하지만 이 공간을 축사로 여기는 재현 부부가 이 집에서 묵을 리가 없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이 예약한 호텔로 간다. 영재는 이제 다른 세계에 속하게 되었구나를 체감하며. “한참 후 아내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운전기사가 힐끗 뒤를 돌아봤다. 그는 아내가 본능적으로, 이제 영원히 아들을 잃었음을, 자신들이 도저히 좁히지 못할 어떤 경계선을 기어이 넘어버렸음을 깨닫는 중이라고 여겼다(325쪽).”


자신들과 다르다고 해서 그 세계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물론, 그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기 이전에 느끼는 인지적 불편함을 극복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나 자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세계는 분명 존중되어야 한다. 그 당위성을 논리로 설명하는 것보다 때로는 서사로 보여줄 때 더 잘 다가올 때가 있다. 「우리(畜舍)의 환대」는 여기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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