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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창희 Jul 21. 2020

텔레비전과 스트리밍, 로컬과 글로벌 사이의 긴장과 타협

라몬 로바토.『넷플릭스 세계화의 비밀: 넷플릭스식 OTT 플랫폼의 원리』

전체 미디어 생태계를 조망하는 일은 버겁기 마련이다. 미디어는 정치, 경제, 사회 전 분야와 관련을 맺고 있는 영역이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부터 난감하다. 이럴 때 취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대표선수 하나를 선정해서 들여다보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전체를 조망하는 것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전체를 보기 위한 체계를 고민하는 것보다 유용할 수 있다. 미디어 분야에서 그 대표선수로 넷플릭스만큼 적절한 대상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라몬 로바토의 다음의 문장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국경을 초월하며 동시에 여러 나라에서 운영되는 다국적 SVOD 서비스인 넷플릭스가 글로벌 텔레비전의 특정 지형을 대표한다는 사실이다(24쪽).”     


라몬 로바토의『넷플릭스 세계화의 비밀: 넷플릭스식 OTT 플랫폼의 원리』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고민을 좀 더 심화해 나갈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스트리밍 서비스가 글로벌 텔레비전 배급의 공간적 다양성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가? 이러한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학자들에게 필요한 이론과 개념은 무엇인가?(15쪽)”애초에 저자도 위의 두 가지 질문에 대한 완벽한 해답을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완벽한 대답이라는 것은 애초에 존재할 수 없다. 지금의 미디어 생태계는 역동적으로 변화해 나가고 있고 그 이유 중 하나가 변화에 민감한 스트리밍 서비스가 지금의 시장을 주도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 분석가들에게는 산업의 변화를 예측하는 일이 상당히 중요하고, 미디어학자들에게는 텔레비전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 고찰하는 일 그러하다(46쪽).” 스트리밍 서비스는 기존의 다른 텔레비전 서비스에 비해 시장에 진입이 자유로울 뿐 아니라 서비스에 대한 이탈률도 높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 때문에 산업 분석가들과 미디어학자들에게 스트리밍에 대해 분석하는 것은 버거운 일이다.     


텔레비전은 이미 옛날에 사용하던 용어가 된 것 같지만 여전히 통용될 수 있고, 현재의 미디어 환경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용어이기도 하다. “텔레비전을 보는 행위는 텔레비전이라는 단어의 어원(tele-vision: 멀리서 보다)에서 알 수 있듯이 멀리 떨어진 곳, 상황, 상징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수반한다(6쪽).” 스트리밍은 전혀 새로운 서비스가 아니라 텔레비전을 레퍼런스로 등장한 매체라는 것이 이 책이 우리에게 얘기해 주는 중요한 사실 중 하나이다.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교훈은 우리가 아직은 텔레비전의 제도적 힘을 무가치한 것으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43-44쪽).”     


스트리밍이 텔레비전을 참조하여 발전했다면 과거의 텔레비전은 지금의 스트리밍을 참조하며 변화하고 있다. 너무도 당연해 보이는 이 사실은 이 책이 우리에게 얘기해 주는 가장 중요한 통찰이다. “스트리밍 서비스의 출현으로 인터넷 텔레비전의 레퍼런스 매체인 텔레비전이 새롭게 구상되고, 통합, 삭제 및 개편된다는 사실은 인터넷 텔레비전이 가지는 모순 중 하나다(62쪽).”로바토는 기존의 텔레비전과 넷플릭스가 서로 어떻게 닮아 가고 있는지에 주목한다. 스트리밍으로 텔레비전이 대체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넷플릭스가 새로운 텔레비전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상호 간에 어떠한 영향을 어떻게 주고받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것은 텔레비전의 미래가 인터넷과 더 닮은 모습일지 아니면 케이블과 더 닮은 모습일지가 아니라, 과거 미디어와의 유사성을 통해서 새로운 형태의 미디어를 이해해야 할지,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을 통해 이해해야 할지이다(47-48쪽).”텔레비전과 스트리밍의 관계가 미래에 어떻게 나타날지 알기 어려운 환경에 놓인 것이 시장, 이용자, 정부이다.      


텔레비전은 다양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쳐 나타난 제도다. “우리가 텔레비전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다양한 기술과 관행의 덩어리이며, 각각은 공간적 특성뿐만 아니라 국경을 초월하는 자신만의 방식을 가진다(74쪽).” 넷플릭스는 한 국가의 복잡한 환경 속에서 성장한 사업자들과 여러 국가에서 경쟁하고 있다. 그것도 특정 국가에만 진출한 것이 아니라 전세계 190여 개국에 진출해 있다. “넷플릭스는 초국가적이면서 동시에 전세계적이다(70쪽).”     


넷플릭스 효과라는 용어가 상징하는 것은 오리지널 콘텐츠와 추천 시스템이다. 넷플릭스의 상징처럼 되어 버린 추천 시스템은 넷플릭스가 전세계적인 플랫폼으로 도약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까? “넷플릭스의 추천 시스템은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소비자를 감시하고, 대중 시청자의 몰락을 초래하며 우연한 발견이 주는 재미를 없앴다는 이유로 비난받고 있다(59쪽).” 추천 시스템만으로는 넷플릭스의 성공을 설명하지 못한다. 오리지널 콘텐츠 역시 마찬가지다. “성공은 훌륭한 콘텐츠를 세상에 선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고 타협하는 일이 될 것이다(140쪽).”     


넷플릭스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는 여전히 어려운 도전이다. “넷플릭스는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현지의 취향을 쉽게 극복하기는 힘든 것으로 보인다(163쪽).” 미국에서는 저렴한 서비스 일 수 있지만 넷플릭스 이용요금이 부담스러운 국민들이 많은 국가들이 상대적으로 다수다. “디지털 배급은 문화를 넘어서지 못한다. 그것은 취향, 가치, 문화적 기준, 시청 습관, 소득 수준 및 연결성의 근본적인 차이로 특징지어지는 시장의 영역과 협상을 해야만 한다(224쪽).” 미국 시간으로 7월 16일에 발표된 넷플릭스 가입자는 1억 9천 2백만명을 돌파했다. 어쩌면 넷플릭스는 2020년 안에 2억명이 넘는 가입자를 보유한 플랫폼이 될지도 모른다. 넷플릭스는 이 어려움을 어느 정도는 극복한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인 범위에서 일관성 있게 나타나는 넷플릭스 효과는 존재하지 않는다(227쪽).” 우리가 넷플릭스를 바라보면서 할 수 있는 일은 스트리밍 아니 어쩌면 텔레비전의 동역학을 선도하고 있는 대표선수가 기존 텔레비전과의 긴장을 어떻게 해소해 나갈 것인지 어디까지의 로컬로 뻗어 나갈 것인지를 지켜보는 일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고민을 이어나가야 할 것이다. “새로운 미디어가 기존의 미디어를 변화시켰는가라는 질문 대신, 변화의 정도, 그리고 미디어 역사에 매 순간마다 존재하는 변화와 정체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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