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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창희 Aug 04. 2020

디지털의 이면에 대한 성찰적 이해 그리고 수작(手作)

이광석.『디지털의 배신』.

기술이 사회의 발전을 이끈다는 것은 산업혁명 이후 인류를 지배해온 일종의 신화다. 신화라는 표현을 쓴 것은 그것이 틀린 말이라는 것이 아니라 기술발전의 긍정적 측면에 지나치게 매몰된 나머지 기술발전 이면에 놓여 있는 부작용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디지털 대전환의 국면에서 디지털과 데이터에 대한 중요성은 거듭 강조되고 있다. 이 강조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볼 수는 없겠으나 문제는 그것이 맹목으로 이어질 경우 인류에게 오히려 재앙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디지털의 배신』의 저자 이광석은 오랜기간 테크놀로지에 대한 그릇된 인식과 접근이 가져올 수 있는 부정적 효과에 관해 연구해 온 학자다. 『디지털의 배신』은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연구자들은 물론 일반 독자들도 디지털 기술발전 이면에 놓여 있는 그림자와 한계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제공해 줄 수 있는 책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국내에서도 가입자가 급증하고 있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상징하는 넷플릭스의 맞춤형 서비스를 생각해 보자. 많은 이용자들이 넷플릭스의 맞춤형 서비스가 공정하고 투명하게 나의 취향을 반영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넷플릭스는 알고리즘 추천 방식에 대해 완벽하고 이용자들이 알기 쉽게 공개하지 않으며, 그것은 소위 얘기하는 플랫폼 기업 대부분에 해당되는 얘기다. 문제는 지금 우리 정부에서도 글로벌 플랫폼 기업 육성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으며 그들의 본원적 경쟁력은 이용자들이 제공하는 데이터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포털이 추천해 주는 뉴스와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용자의 편의를 높여주는 것으로 칭송되고 있는 데이터 기반 맞춤형 서비스는 이용자의 지위를 오히려 약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 서는 안된다.      


“넷플릭스는 자율의 영상 해석 주체인 전통의 시청자 개념을 완전히 해체한다. 그저 소수 태거들에 의해 생산된 데이터와 알고리즘 기계에 의해 세분화된 취향의 분류틀 아래서 자족하는 콘텐츠 소비 주체로만 유효하다. 여기서는 과거 우리가 알던 영상 해석의 주체인 시청자는 사라지고, 오로지 알고리즘에 의해 양적 계산된 시청 습관과 잘게 쪼개진 취향의 서비스 가입자, 즉 ‘수량화된 자아(quantified self)’만 유효하다고 볼 수 있다(55쪽).”     


우리가 이용하는 플랫폼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기를 요구하는 것은 디지털 기반 사회에서 시민이 요구해야 하는 필수적인 권리가 되어 가고 있다. 하지만 이보다 개인정보의 활용을 통한 산업의 활성화와 플랫폼 기업이 육성이 보다 강조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산업적인 효용성도 중요하지만 시민의 기본적인 권리가 간과되어서는 안된다. “우리의 문화적 취향을 이리저리 조정하는 플랫폼 알고리즘 체계의 편견을 제거하고 플랫폼 기술의 사회적 투명성에 대한 요구도 병행해야 한다(38쪽).”     


정부가 플랫폼 기업 육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제4차 산업혁명의 구도에서 산업 생태계를 이끌어 나가는 것이 플랫폼 기업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플랫폼 생태계는 기업을 운영하는 소수를 제외한 나머지 구성원들이 소외되고 피해입기 쉽다. “플랫폼 중개인이 수수료 등 이익을 과도하게 취하는 반면, 노동 과정에 참여하는 많은 사람은 전혀 플랫폼에 대한 경영 접근권이나 노동 결사권, 수익의 배분과 관련한 최소 수준의 의사결정권조차 없다(67쪽).”     


플랫폼을 통해 정보를 접하는 현재의 이용자들은 편향된 정보 소비를 할 가능성이 높다. “맞춤형 데이터에 익숙해져 그것의 과잉 정보 수취가 이루어지면서 각자가 편향된 정보 거품에 갇히게 되는 효과(199쪽)”를 의미하는 필터 버블이라는 용어는 지금의 정보 소비 환경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개인이 지닌 성향에 따라 자동화된 맞춤형 예측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은 유튜브와 넷플릭스처럼 현대 인간이 소비하는 대부분의 데이터와 콘텐츠를 개인 취향의 소소한 세계에 가두려고 한다. 진실이 흐려짐과 동시에 진실에 도달하기 위한 인식 과정의 도관도 얇아지고 납작해지는 형국이다(199쪽).”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세계가 이른바 탈(post)진실의 시대라고 규정되는 것도 플랫폼이 제공하는 맞춤형 서비스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이다. 플랫폼을 통해 대부분의 정보가 소비되고 있는 지금 플랫폼이 제공하는 정보가 가지고 있는 한계가 무엇인지에 대해 이용자가 과거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디지털 세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코로나 사태 때문에 우리가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것처럼 아무리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우리는 디지털로만 살아갈 수는 없다. 피지컬이 우리에게 주는 것과 디지털의 이면에 놓여 있는 한계에 대해 잘 이해하는 것이 우리가 디지털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다. “수작(手作)에서 ‘손’은 물리적 신체의 일부이자 연장이지만 더불어 뇌와 연결되어 창작·제작 수행 행위를 통해 사물의 원리를 깨치려는 근원이기도 하다. 수작의 말뜻은 직접 손을 움직여 감각하면서 사물에 힘을 가해 무엇인가를 만드는 행위를 지칭하지만, 그 숨은 뜻은 만드는 행위 너머 우리를 둘러싼 사물과 기술이 지닌 맥락을 이해하고 성찰적 지혜에 이르는 비판 의식적 수행 과정까지를 포괄한다(237쪽).”     


우리는 지금 감염병으로 인해 물리적 활동이 제약되는 초유의 사태를 경험하고 있다. 디지털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필요한 것은 디지털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다. 내가 사용하고 있는 디지털 기술 기반 서비스들 이면에 놓여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성찰하는 일은 일종의 문화적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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