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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창희 Oct 03. 2020

규칙을 계속 혁신할 것

리드 헤이스팅스, 에린 마이어.『규칙 없음』.

넷플릭스에 관한 글과 자료,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넷플릭스에 관해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규칙 없음』을 기다렸을 것이다. 내가 『규칙 없음』을 기다렸던 가장 큰 이유는 리드 헤이스팅스의 주장을 직접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기대한 종류의 책은 아니었다. 나는 넷플릭스의 조직 문화에 관한 책보다는 넷플릭스가 고비 고비마다 중요한 선택을 내리게 된 이유를 헤이스팅스의 육성으로 듣고 싶었다(육성은 물론 비유적인 표현이다).      


넷플릭스 CEO 리드 헤이스팅스와 비즈니스와 조직 문화를 연구하는 에린 마이어가 같이 쓴『규칙 없음』은 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기업 넷플릭스가 조직 문화를 어떻게 혁신해 왔는가에 관한 책이다. 넷플릭스를 최고의 기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구글, 애플, 아마존과 같은 거인들과 비교하기에는 규모가 작은 기업이고 커버하는 영역도 제한적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넷플릭스에 주목하는 이유는 넷플릭스가 독특한 과정을 거쳐 성장해 왔기 때문이다. 헤이스팅스는 넷플릭스가 성공한 주요한 이유 중 하나로 혁신적인 조직 문화를 꼽는다. 헤이스팅스의 이러한 판단에는 다소간 나르시시즘적인 요소가 있는 것 같다. 예측이 어려운 디지털 환경에서 기업의 성공은 필연과 우연이 섞여 있기 마련이고, 넷플릭스라는 기업이 미래에 어떻게 될지 여전히 알기 어렵다. 자신들이 파멸로 이끈 블록버스터의 길을 가지 말라는 법도 없다.      

    

지금도 가장 많은 주목을 받는 기업이지만 관심에 대한 헤이스팅스의 열망에는 끝이 없는 것 같다. 헤이스팅스는 서문에서 알폰스 쿠아론이 연출한 <로마>의 아카데미 수상을 중요한 성과로 꼽고 있다. <로마>를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로마>는 결코 쉽게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니다. 그리고 극장에서 보면 훨씬 좋을 영화다. 자신들이 제작한 영화를 극장에 걸기 쉽지 않은 넷플릭스가 제작하기에는 적절치 않은 영화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꾸준히 아카데미를 비롯한 각종 시상식에 문을 두드려 왔고,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둬 왔다. 여기서 느껴지는 헤이스팅스와 넷플릭스의 욕망은 단순히 수익 창출을 넘어서는 ‘무엇’이다. 자신들이 특별한 기업이며, 그것을 좀 인정해 달라고 갈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규칙 없음』에서 느껴지는 것도 그것이다. 우리는 특별하다. 우리의 특별함을 보라. 이러한 과시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넷플릭스의 이와 같은 노력은 자신들의 입지를 공고화하는데 분명히 도움이 된 것으로 보인다.      


에린 마이어와의 공저는 탁월한 선택으로 보인다. “넷플릭스의 컬처 데크를 모두 보고 난 뒤, 나는 전반적으로 지나치게 남성적이고 대립적이며 노골적으로 호전적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어쩌면 인간의 본성에 관해 다소 기계적이고 합리주의에 편향된 견해를 가진 엔지니어가 만들 법한, 그런 종류의 기업을 반영하는 문서인지도 몰랐다(13-14쪽).” 초반부에 나오는 에린 마이어의 위와 같은 언급은 『규칙 없음』의 내용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는 데 기여 한다. 하지만 넷플릭스의 문화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다음과 같은 사실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넷플릭스는 유별난 성공 가도를 달려왔다(14쪽).”      


『규칙 없음』의 핵심은 자유와 책임(freedom and responsibility)에 입각하며 인재 밀도를 높이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끊임없이 규칙을 혁신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규칙 없음』의 핵심이다. 흥미로운 지점이 많기는 했지만 사실 넷플릭스의 위와 같은 방식에 호감을 느끼기는 어려웠다. 인재 밀도를 높이는 것은 결국 핵심 인력만을 남기라는 말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넷플릭스가 조직 문화에서 강조하는 자유와 책임은 역설적으로 들린다. 자신들은 대한민국을 포함한 글로벌 시장에서 책임을 회피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내가 『규칙 없음』에서 강조하는 조직 문화와 사례들에 호감을 갖기 어려웠는지도 모른다.          


이제 넷플릭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글로벌 시장이다. 아직까지는 글로벌 시장에서 도전자들 보다 월등히 앞서 있다. 넷플릭스는 컬처 맵을 통해 각기 다른 문화를 지닌 시장에서 적응하고 있다. 네덜란드인들은 미국인들보다 지나치게 솔직하고 일본 사람들은 미국인에 비해 표현이 훨씬 간접적이다. 넷플릭스는 이러한 차이를 컬처 맵을 통해 극복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오늘 같은 정보 시대에 기업이나 팀은 더는 오류 예방이나 정확한 복제를 목표로 내세우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창의성과 혁신의 속도 그리고 민첩성이다. 산업 시대의 목표는 변화를 최소화하는 것이었지만, 지그처럼 창의적인 시대에는 변화를 극대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무서운 위험은, 오류를 예방하거나 일관성을 잃는 것이 아니라 최고의 인재를 끌어들이지 못하고 새로운 제품을 내놓지 못하며 환경이 바뀔 때 신속하게 방향을 틀지 못하는 것이다(458쪽).”      


헤이스팅스의 위와 같은 주장에는 수긍할 수밖에 없다. “재즈는 개인의 자발성을 강조한다. 연주자는 음악의 전체 구조를 알고 있지만, 경우에 따라 즉흥적으로 흐름에서 벗어나 혼자 흥에 겨워 연주할 자유가 있으며, 이로써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음악을 창조해 낸다(458쪽).” 헤이스팅스는 교향곡이 아닌 재즈를 연주하라고 주문한다. 이 표현 또한 거슬리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새겨들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헤이스팅스는 코로나 종료 이후에도 재택근무를 적용하는 것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드러낸 바 있다. 『규칙 없음』에서 한 얘기들과 모순되는 것 아닐까? 넷플릭스에 미래에 대해서는 ‘예측하기 어려움’이라는 무책임한 대답 외에 다른 말을 찾기 어려울 것 같다. 그만큼 변화가 심한 환경이다. 헤이스팅스가 만든 재즈 밴드는 어디까지 나아갈 것인가? 이들로 인해 발생하고 있는 시장 변화에 대응하기는 버겁지만 이들이 걸어온 행보가 꽤나 흥미롭다는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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