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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창희 Mar 06. 2021

“우리가 사는 지금 여기를 진단하는 일”로서의 비평

강신규.『서브컬처 비평』.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인가 묻게 하는 책들이 있다. 나는 주로 미디어 산업과 정책을 연구하는 연구자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텍스트에 대한 비평을 수행하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해 왔다. 그런 의미에서 브런치는 소중한 플랫폼이다.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내가 어떤 텍스트 비평을 지향해야 할지 주로 어떤 텍스트를 비평의 대상으로 삼을 것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그 고민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강신규의 『서브컬처 비평』은 책 제목과 같이 ‘서브컬처’비평에 관한 책이지만 그 이전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당대 사회에서 비평의 역할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묻는 책이기도 하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따르면 서브컬처(subculture)란 그 사회의 주요한 문화에 대비되는 문화를 의미한다(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11131&cid=40942&categoryId=31611). 내가 서브컬처의 개념을 얘기하는 이유는 서브컬처란 ‘당대성’에 의해 재규정될 수밖에 없는 개념이라고 말하기 위해서다. 주요한 문화는 시대적 맥락에 의해 변화하기 때문이다.      


강신규는 비평의 지형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있었던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을 통해 서브컬처 비평에 대해 접근하고 있다. 콘텐츠 강국이라는 말을 듣는 대한민국에서 대중문화 비평의 장은 열악하다. 강한 대중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잡지는 『씨네21』 정도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강신규가 다루고 있는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이외의 다른 영역도 서브컬처 비평의 범주에 포함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방송학 혹은 문화연구의 하위 범주로서 텔레비전 텍스트 연구가 오랜 기간 지속되어 왔지만 비평의 공간이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다. 나는 비평의 장이 활발히 열리고 다양한 논의가 촉발될 때 대중문화가 보다 건강해 질 수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비평이 가지고 있는 다음과 같은 힘 때문이다.     


“다른 무엇보다 비평의 힘은 대상이 지닌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열어 주는 수준을 넘어 그것이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전달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지닌 사회적 함의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해 나가는 과정에서 나온다(4쪽).” 소설가 장강명은 지속적으로 작가가 되어 보라고 권한다. 책을 쓰는 것이 삶에 긍정적인 작용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나 비평가가 되어 보라기보다는 누구나 비평적인 관점을 갖는 것이 유용하다고 믿는 편이다. 현대사회에서 방송, 영화, OTT, 게임, 애니메이션 등 텍스트를 소비하지 않고 살아가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내가 소비하는 텍스트에 대해 이해하는 일은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기도 하다.    

 

강신규의 『서브컬처 비평』은 비평학 개론서로도 유용성을 가지고 있는 책이다. 개인적으로 학부 때부터 문학비평에 관심을 가져 왔다. 깊이 있게 비평을 공부해 보고 싶다면 문학비평 관련 개론서로 시작하는 것이 좋겠으나 대중문화 비평 혹은 이 책의 핵심 소재인 서브컬처 비평에 관심이 있다면 『서브컬처 비평』으로 비평에 입문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비평의 장을 새로이 발견해야 한다는 강신규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전문적인 비평 외에도 누구나 자신의 관점을 제시할 수 있는 장은 여전히 부족하다. 기술적으로 다양한 참여가 가능하다고 새로운 가능성이 열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비평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비평의 장을 열어나가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무력감 속에 머물지 말고 자신들이 비평할 수 있는, 혹은 비평하기 위한 빈 곳(기준, 대상, 이론, 방법/론 등)을 발견해야 한다. 그것이 서브컬처 비평에 요구되는 새로운 전문성이다(101쪽).” 다음의 문단을 인용하며 마친다.     


“서브컬처 비평은 긍정적인 텍스트, 작가, 콘텍스트, 수용/자를 유도하면서 나아가 그것들이 공진화하는 생태계를 지향해야 한다. 따라서 서브컬처 비평은 서브컬처와 사람 그리고 사회의 관계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서브컬처 비평은 서브컬처라는 징후를 살피는 일임과 동시에, 그것을 경유해 우리가 사는 지금 여기를 진단하는 일이기도 하다(102-1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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