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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창희 May 01. 2021

기호로서의 소비 그리고 정체성

장 보드리야르.『소비의 사회: 그 신화와 구조』.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혹은 한 해를 시작하면서 하는 일 중 하나는 지나가는 해를 규정지을 수 있는 키워드를 꼽는 것과 새로 시작되는 해를 전망할 수 있는 키워드를 꼽는 일이다. 수많은 접근 방식이 있겠지만 가장 흔한 것이 마케팅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즉, 소비자로서의 개인이 무엇을 좋아할지가 한 해의 특성을 가늠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나 역시 몇 년 전부터 ‘소비 트렌드’라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내가 연구하는 분야인 미디어와 소비는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와 미디어 사이의 관계는 현대사회의 특성을 분석할 수 있는 중요한 방법이기도 하다. 이 사실에 대해 선구적으로 지각한 학자 중 한 명이 바로 보드리야르다. “매스커뮤니케이션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것은 현실 그 자체가 아니라 현실의 현기증 또는, 말장난은 아니지만, 현기증 없는 현실이라고 해도 좋다(30쪽).” 보드리야르는 미디어를 통해 지각된 현실이 실제 현실이 아닌 ‘기호’라고 보았다. 문제는 현대사회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미디어를 통해서만 현실을 지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20년대에 살아가는 우리는 보드리야르가 관심을 가지고 탐구했던 매스커뮤니케이션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SNS의 시대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소비자들은 미디어를 통해 전달된 정보를 가지고 소비만 하는 것이 아니라 SNS를 통해 자신의 소비성향을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보드리야르가 살아있다면 아마도 SNS를 통해 소비성향을 드러내는 소비자의 주체는 실제 주체가 아니라고 했을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소비를 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정 사회에 소속되어 있는 구성원들은 소비를 통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획득하며, 이 소비를 통해 경제가 굴러간다. 보드리야르가 문제 삼는 것은 소비가 반드시 필요한 행위인가이다. 혹은 소비를 통해 만족 혹은 행복을 느끼는 주체가 있다고 할 때 그것이 과연 개인에게 진정으로 의미를 가질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보드리야르는 소비를 통해 개인들이 상대화된다고 지적한다. 소비를 긍정적인 것으로 본다고 해도 소비를 통해 개인적인 특성이 드러나는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미개사회에서 교환의 경우에는 각각의 관계가 사회의 부를 증가시키는 데 비해, 현대의 ‘차별’사회에서는 각각의 사회관계가 개인의 결핍감을 증대시킨다. 왜냐하면 소유되는 모든 것은 다른 것들과 비교해서 상대화되기 때문이다(93-94쪽).”소비를 통해 개인의 정체성이 드러나고 개인이 만족을 느낀다고 해도 소비로 인해 사회적 차이가 부각되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우리는 자신의 사회를 소비사회로 간주하며, 또 그러한 것으로서 말하고 있다. 적어도 우리 사회가 소비를 행하는 경우에는 소비사회로서의 자기규정에 기초를 두고 자신을 그만큼 관념적으로 소비하고 있다(328쪽).” 자신의 소비를 전시하는 것이 일상화된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는 2020년대에 보드리야르의 지적은 더욱 유효할지도 모른다. 물론, 관념적인 소비가 보드리야르가 보고 있는 것처럼 부정적인 면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불안정한 현대사회에서 느끼는 불안을 해소하는 도구로서 소비가 활용된다면 다음과 같은 보드리야르의 말은 다시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결국 소비사회가 지불하는 큰 대가는 사회 그 자체에서 발생하는 보편적인 불안감이다……(42족).”     


“소비의 주체는 개인이 아니라 기호의 질서이다(326쪽).” 미디어를 개인이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수 있게 된 2020년대에 보드리야르가 1970년에 발표한『소비의 사회』는 여전히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다음의 말이 완전한 진실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어느 정도의 진실을 말해주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소비는 하나의 신화다. 현대사회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 하는 말(parole), 우리 사회가 스스로 말하는 방식, 그것이 소비다. 말하자면 소비에 관한 유일한 객관적 현실은 소비라는 관념뿐이다(3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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