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김연수 # 시절일기
일상은 반복적이고 관습적이다. 삶이 고단함에도 불구하고 그럭저럭 견딜만 한 것은 일상의 반복적이고 관습적인 속성이 삶의 표면을 매끄럽게 만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듯 표면이 매끄러운 삶에 피로함과 고통이 수반되는 것은 그 이면에는 평소에는 지각하기 어려운 모순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예술은 현실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아니, 현실이 없으면 예술은 존재할 수 없다. 플라톤이 시인을 추방해야 한다고 한 것은 시가 이데아의 모상인 현실을 다시 한 번 모사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플라톤이 간과한 것은 예술이 삶의 이면을 들여다 보게 해 준다는 것이 었을지 모른다. 『시절일기』(서울: 레제)에서 김연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술이란 우리에게 익숙한 현실의 표면을 찢어서
그 이면에 무엇이 있는지 보여준다(196쪽).
모든 예술작품이 현실 아래 이면을 탐구하거나 모순을 보여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예술은 매끄러운 현실을 잘 포장하여 수용자에게 즐거움을 준다. 그 자체도 예술의 중요한 기능이다. 하지만 김연수가 말하는 예술은 현실에 균열을 일으키는 예술이다.
카프카의 말처럼 단숨에 현실을 박살내는 도끼가 되면 좋겠지만,
그건 정말 카프카 같은 대가나 할 수 있는 일이고,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현실에 균열을 일으키기만 해도 만족하리라(198쪽).
플라톤이 예술이 현실에 대한 모사이기 때문에 그 존재를 폄하했지만 김연수는 오히려 예술이 매끈한 삶 너머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세계를 발견하게 해주는 기능이 있다고 말한다. 그 예술을 창조하는 것도 그 예술을 감상하거나 소비하거나 감각하는 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그 세계를 예술을 통해 가 닿을 수 있다면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예술에게 기대할 수 있는 최대치 일지도 모르겠다.
매끈한 삶 너머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할지도 모르겠다(199쪽).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낙원이 아니며, 유토피아가 아닌 한 삶의 고단함과 고통은 필연적이다. 호르크하이며와 아도르노가 『계몽의 변증법』에서 얘기했던 문화산업에 대해 가장 단순하고 거친 방식으로 이해하면 이들은 대중문화의 범람이 현실에 균열을 가하는 예술의 기능을 위축시킬 수 있기 때문에 문화의 산업화를 우려 했을 것이다. 끔찍한 전쟁을 치루면서 정치적으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에게 현실이 낙원이기는 불가능 했을 테니까. 그래서 김연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이상 국가를 만드는 일은 영영 불가능할 테니까 우리에게는 시인도, 예술도, 종교도 모두 필요하다. 아울러 여기가 지상낙원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인간적인 불안도, 균열도, 엇갈림도(199쪽).
그래서 김연수와 같은 성실한 예술가들은 끊임없이 현실의 이면을 탐구한다. 그의 다음 소설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