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창희 Jul 25. 2022

탑건: 매버릭에서 우영우까지, 차이와 반복의 미학

<아주경제> [노창희 칼럼]

코로나 직후 영화 공개를 잠시 중단했던 마블은 작년 여름 ‘블랙 위도우’를 시작으로 연달아 영화 시리즈물을 공개하고 있다. 디즈니 플러스 런칭 이후 마블 유니버스에 속해 있는 드리마 시리즈도 꾸준히 내놓고 있다. 마블 시리즈물이 가진 최대 강점은 시리즈물 사이의 연관 관계다. 이제 마블 영화와 디즈니 플러스에서 볼 수 있는 시리즈물 사이에도 연관성이 높아지면서 이용자들이 봐야 하는 마블 관련 콘텐츠 목록은 더욱 늘어나고 있다. 필자를 포함해서 이렇게 많은 콘텐츠를 일일이 챙겨 봐야 한다는 것에 대해 볼멘소리하는 이용자들도 늘어나고 있지만 마블이 구축한 유니버스가 가진 특장점이 특유의 연결성에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마블과 같은 글로벌 미디어 기업들이 시리즈물에 집중하는 이유는 시리즈물이 대중문화의 성공 공식인 ‘친숙함과 참신함’의 적절한 조합을 제공하는 데 최적화된 형식이기 때문이다. 이전에 봤던 시리즈물을 좋아하는 이용자에게 후속 작품이 갖는 최대의 강점은 친숙함이다. 하지만 이전 작품과 유사성이 지나치게 높다고 느껴진다면 친숙함은 곧 상투성으로 전락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성공한 시리즈물이 되기 위해서는 시리즈 자체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특성을 유지하면서도 개별 작품마다 차별성을 확보해야 한다.


제임스 웹스터는 『관심의 시장』(백영민 옮김,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에서 많은 위험 부담이 따르는 콘텐츠 산업에서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서는 “참신하지만 익숙한(novel yet familiar),(101쪽)”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히트작의 성공 요인을 다룬 데릭 톰슨의 『히트 메이커스』(이은주 옮김, 파주: 21세기북스)에서는 산업디자이너 레이먼드 로위의 ‘마야’개념을 소개하면서 친숙함과 참신함의 적절한 배합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마야(MAYA)’는 “Most Advanced Yet Acceptable”의 줄임말로 “가장 참신하면서도 받아들일 수 있는(87쪽)” 작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지적하는 개념이다. 철학자 질 들뢰즈의 저명한 저서의 제목을 빌리자면 많은 대중의 관심을 받아야 하는 콘텐츠 산업의 관건은 어떻게 ‘차이와 반복’의 미학을 구현해 내느냐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올여름 최대 화제작 중 하나인 ‘탑건: 매버릭’은 전작인 ‘탑건’이 개봉한 지 무려 36년 만에 개봉된 속편이다. ‘탑건: 매버릭’은 전작을 뛰어넘는 속편이라고 평가받으며 국내에서도 6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고 있다. ‘탑건: 매버릭’은 전작에 친숙한 관객들에게는 추억을 소환하는 한편 CG 중심의 스펙터클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에게는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면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탑건: 매버릭’의 주제 의식은 “오늘은 아닙니다(not today)”라는 매버릭(톰 크루즈 분)의 대사에서 잘 드러난다. 무인 조정으로 대체 되는 과정에서 파일럿의 역할이 더 이상 필요 없다는 상관의 일갈에 매버릭은 언젠가는 그렇게 될지도 모르지만 아직은 아니라고 항변한다. ‘탑건: 매버릭’의 성공이 영화산업의 판도 전체를 바꾸기는 어렵겠지만 스타 중심의 고전적인 액션 영화가 아직은 충분히 관객들에게 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만큼은 분명하다.


‘탑건: 매버릭’에서 40대 이상 관객들에게 추억을 소환하는 가장 중요한 장치는 바로 음악이다. ‘탑건’으로 이미 친숙한 메인타이틀로 영화가 시작되는 순간 관객들은 영화에 몰입하게 된다. 가장 최근에 개봉한 마블의 영화 ‘토르: 러브 앤 썬더’는 10대를 전후로 한 아동을 겨냥해서 만든 작품으로 보인다. 하지만 40대 이상 관객들에게도 소구하는 지점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주제곡인 스윗 차일드 오보 마인(Sweet Child O’Mine)을 비롯한 건즈 앤 로지스의 곡들이다. ‘토르: 러브 앤 썬더’는 현재이자 미래의 고객인 10대에게 어필할 수 있는 소재 중심으로 영화를 이끌어 나가면서도 음악을 통해 40대 이상의 관객들에게도 영화에 몰입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올여름에는 위에 언급한 영화들을 포함해서 ‘범죄도시2’, ‘마녀2’,‘헤어질 결심’과 같은 화제성 높은 작품들이 개봉했다. 하지만 화제성 측면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우영우’)’다. ‘우영우’가 화제를 모으고 있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박은빈이 연기한 우영우의 캐릭터다. 자폐를 겪고 있지만 비범한 능력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서도 호감을 주는 우영우는 그간 국내 드라마에서 만나기 어려웠던 캐릭터다. 우영우라는 캐릭터가 독특하긴 하지만 ‘우영우’는 보통의 드라마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의 요소도 갖추고 있다. 우영우의 캐릭터가 신선한 것은 사실이지만 자폐를 겪고 있으면서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설정은 더스틴 호프만과 톰 크루즈가 출연했던 1988년 작 영화‘레인 맨’에서부터 등장했던 설정으로 완전히 새로운 캐릭터라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국내 드라마 제작 경향과 우영우가 놓여 있는 맥락 등은 우영우라는 캐릭터가 가진 신선함과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고 있다.


코로나 이후 급격히 성장한 스트리밍 시장과 거리두기 해제 이후 코로나 전으로 돌아가고 있는 영화산업의 회복으로 이용자의 관심을 끄는 콘텐츠를 만드는 일은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사업자들과 창작자들에게 주어진 숙제는 새로우면서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한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익숙해 보이면서도 새로움을 주는 것 혹은 참신해 보이지만 편안함을 제공하는 것 자체가 고난이도의 창의성일지도 모른다. 쉽지 않은 이 일을 지속해야 하는 이유는 그렇지 않으면 이용자에게 선택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출처: 이 글은 7월 25일 같은 제목으로 <아주경제>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https://www.ajunews.com/view/20220725093454773


매거진의 이전글 <파친코>와 <브로커>가던지는 ‘경계’에 관한 질문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