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 『재수사』.
기본적으로 작품이 좋을 때 작가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다. 특정 작가에 대한 독서 이력이 쌓이다 보면 작품이 작가보다 좋은 경우가 있고, 작가가 작품보다 좋은 경우가 있다. 소설을 쓰는 사람은 아니지만 내 이름을 걸고 이런저런 글을 쓰는 처지에서는 사람보다 글이 좋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는 것이 인지상정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장강명이라는 작가를 알게 된 것은 2015년에 출간된 『한국이 싫어서』를 통해서였다. 굉장히 재밌게 읽었다. 무책임하고 성의 없는 평가일 수는 있지만 『한국이 싫어서』에 대해서는 만큼은 위의 평가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에세이집『5년 만에 신혼여행』은 더 재밌게 읽었다(『한국이 싫어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책이니 『한국이 싫어서』를 재밌게 읽으신 분들께라면 강추드릴만 하다). 『한국이 싫어서』를 접한 후 장강명이 쓴 책이라면 거의 모두 사서 읽었다(『한국이 싫어서』 이전에 출간된 소설 몇 권은 사 놓고 다 읽지 못한 책이 있기는 하다). 그가 나오는 팟캐스트를 챙겨서 들었고, SNS를 통해 그의 활동을 꾸준히 확인해 왔다. 작가 입장에서 듣기 싫은 소리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장강명의 소설도 자연인 장강명도 좋아하지만 소설보다 자연인 장강명을 더 좋아하는 쪽이다. 그의 작업 태도와 성실성, 사회를 바라보는 문제의식, 독서와 관련된 사회적 활동을 나는 적극 지지한다.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일 수 있겠지만 『재수사』는 지금까지 출간된 장강명의 소설 중 대표작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동안 내가 읽어온 장강명의 책들과 그가 한 말들을 토대로 나는 장강명이 다음과 같은 소설 쓰기를 추구한다고 생각한다. 먼저, 많은 독자가 흥미를 느낄 만큼 재미있어야 한다. 한국 소설에서 가장 부족한 덕목이다. 문단에서 좋아할 만한 소설들에 결여되어 있는 미덕이기도 하다(참고로 나는 이런 소설들을 좋아하는 독자다). 다음으로 한국사회 체계의 문제를 다루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장강명은 둘 중 어느 쪽에 무게 중심을 두기보다는 둘 다 성취하기를 지향하는 작가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여태까지 장강명의 대표작으로 생각해온 작품은 『표백』이었다.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나는 지금의 20대에게는 ‘언젠가는 위대한 일을 해낼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허락되지 않았을 수 있다는 생각을 글감으로 삼아 이 소설을 썼다(「작가의 말」, 『표백』, 341쪽).”『표백』을 읽고 20대 때부터 내가 시달려 온 공허감의 일부를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장강명이 어디에선가 자기 세대 이후의 세대들은 시스템을 만들 수 없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말에도 깊이 공감한다. 나는 젊은 세대가 희망을 가지기 힘들다는 것이 대한민국 사회가 가진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하며, 장강명이 『표백』을 쓴 것도 그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을 거라고 짐작한다.
『재수사』를 읽으면서 내내 『표백』을 떠올렸다. 『재수사』는 두 개의 축으로 구성되어 있는 소설이다. 한 축은 20년 넘게 범인을 잡지 못한 미제사건을 형사들이 수사해 나간다. 다른 한 축은 독자 입장에서 아직 누구인지 알 수 없는 범인이 자신의 살인을 정당화 해 나가는 독백이다. 물론, 단순한 자기 정당화는 아니다. 그 독백 속에는 한국사회에 대한 소설가 장강명의 문제의식이 담겨 있다. 물론, 작가의 생각이 전부 다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분량은 더 적지만 나는 후자에 더 집중해 가며 『재수사』를 읽었다. 2권 분량의 책이지만 잘 읽히는 책이다. 소설 읽는 근육이 어느 정도 있는 독자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읽는 내내 한국사회의 체계가 가진 문제점에 대해 성찰하게 만드는 책이다. 소설가 장강명이 지향하는 바가 잘 관철된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2020년대 한국사회의 가장 깊은 문제를 두 단어로 설명하라고 한다면 저는 ‘공허’와 ‘불안’을 곱겠습니다. 저는 그 공허와 불안의 기원이 이 사회의 시스템에 내재되어 있다고 봅니다. 다시 말해 이렇게 설계된 사회에서는 누구도 공허와 불안의 함정으로부터 완전하게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작가의 말」, 『표백』, 403쪽).”「작가의 말」을 읽고 작가가 소설을 쓴 문제의식에 깊이 공감했다. 나는 장강명이 이 문제의식을 가지고 계속 소설을 써 나가기를 바라는 독자다. 그리고 대표작이 될 다음 작품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