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노창희 칼럼]
2023년은 분야를 막론하고 걱정과 우려로 출발하고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산업 전 분야의 상황이 좋지 않고 불확실성도 높아졌기 때문이다. 코로나 기간 동안 영화산업은 크게 위축되었지만 영화를 제외하고 미디어 산업은 거리두기로 인한 이용량 증가로 인해 실적이 오히려 반등한 분야가 많았다. 침체 국면을 맞이했던 방송광고도 일시적으로 회복되는 양상이 나타났고, OTT 이용량은 급증했다.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미디어 산업은 경기 침체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미디어 산업에서 가장 비중이 큰 재원 중 하나는 광고다. 기업들의 상황이 어려워지게 되면 미디어 분야에 투입되는 광고는 줄어들게 된다. 문제는 SVOD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넷플릭스를 포함한 SVOD 사업자들이 광고요금제를 출시하고 있고, FAST와 같이 광고 의존도가 절대적인 서비스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 상황은 좋지 않은데 광고를 BM으로 하는 영상 매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전체적인 미디어 산업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디지털 대전환과 코로나를 기점으로 영상 산업에서 나타나고 있는 가장 큰 변화는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넷플릭스는 오리지널 영화를 제작하고 극장에 개봉하지 않고 자사 플랫폼에서만 공개하기도 했고, 지금도 OTT 서비스에서만 공개하는 영화들이 있다. 물론, 아카데미 수상 조건 등으로 인해 극장에서 개봉할 수밖에 없는 영화도 있지만 넷플릭스의 이와 같은 시도는 영화의 정체성 자체를 바꿔 나가고 있다. 넷플릭스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 촬영상,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고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 사자상을 수상한 ‘로마’를 비롯해서 다수의 수상작을 배출하기도 했다. 올해 아카데미에서는 예년에 비해 후보작에 오른 작품이 적지만 넷플릭스가 배급한 ‘서부 전선 이상 없다’가 작품상 후보에 올라 넷플릭스는 2023년에도 아카데미에 도전하게 되었다. 2022년 아카데미에서는 애플TV 플러스가 배급한 ‘코다’가 작품상, 남우조연상, 각색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OTT는 기본적으로 상업성을 지향하는 매체지만 이미지 제고와 플랫폼 홍보 효과가 큰 시상식에서 수상하는 것에도 신경을 쓸 만큼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가 되었다.
OTT 서비스 역시 방송화 되어 가고 있다. 작년 12월 30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되어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던 ‘더 글로리’는 전체 시즌을 파트로 나눠서 공개해서 많은 이용자가 불만을 제기한 바 있다. 디즈니 플러스 오리지널 ‘카지노’도 시즌1을 나눠서 공개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후발주자인 디즈니 플러스가 시즌을 나눠서 콘텐츠를 공개하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OTT의 상징적인 존재인 넷플릭스가 시즌을 쪼개서 콘텐츠를 공개하는 선택을 한 것은 시사적이다. 최적화(optimization)와 더불어 일괄 출시는 넷플릭스를 상징하는 용어 중 하나였다. 넷플릭스는 자신들이 기존의 방송사와는 달리 편성에 제약 없이 콘텐츠를 몰아서 볼 수 있도록 일괄 출시한다는 점을 차별성으로 내세워 왔다. 하지만 OTT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이용자의 이탈을 방지하고 신규 가입자를 유치하기 위해 시즌제를 나눠서 공개하는 방식을 채택하기 시작한 것이다. 넷플릭스의 이와 같은 선택은 ‘더 글로리’가 처음이 아니다. 넷플릭스의 대표적인 오리지널 드라마인 ‘기묘한 이야기’의 시즌4도 시즌을 나누어 공개한 바 있다. 광고 요금제 도입과 더불어 시즌을 구분하는 전략은 넷플릭스를 포함한 OTT 사업자들이 기존 방송의 관습을 채택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캐빈 맥도날드와 다니엘 스미스-로우지는 자신들이 엮은 <넷플릭스 효과>에서 넷플릭스가 방송과 유사해지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유건식 옮김, 파주: 한울아카데미). 원서가 출간된 시점이 2016년인 점을 고려한다면 이미 OTT 서비스들도 방송에 영향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경쟁 심화와 레거시 방송사업자들의 OTT 진출은 방송과 OTT 사이의 경계도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
문제는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영상 서사를 제작하는데 드는 제작비가 급격히 상승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는 다른 국가들과 달리 티빙, 웨이브와 같은 국내 플랫폼들이 넷플릭스를 제외한 글로벌 플랫폼들과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으면서 국내 진출을 준비하던 글로벌 사업자들의 국내 진출을 지연시키거나 국내 사업자와 제휴해서 진출하는 방식으로 선회하도록 만들고 있다. 하지만 기존의 가입자를 유지하고 신규 가입자를 늘리기 위해 드는 제작비 부담으로 인해 국내 사업자들은 적자를 내고 있으며, 흑자로의 전환이 언제 될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상 서사에 대한 투자와 실험은 이어져야 한다. 영상 서사는 산업과 문화를 주도하는 영역이고 대한민국은 지금까지 충분한 잠재력을 보여줘 왔기 때문이다. 2023년은 제작비가 많이 드는 드라마가 아닌 예능에 대한 투자가 확대될 것이라는 예측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장르에 대한 고민과 더불어 웹툰 중심으로 이뤄져 왔던 원천 서사의 영역을 넓힐 필요가 있다. 2019년 출간된 이혁진 작가의 원작 <사랑의 이해>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 <사랑의 이해>가 드라마화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무척 반가웠다. 소설을 읽었을 때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졌을 때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웹툰과 비교할 때 영상화가 어려울 순 있지만 서사가 가진 깊이나 탄탄함에 있어서는 여전히 문학을 뛰어넘는 장르를 찾기 어렵다. 문학을 포함하여 원천 서사의 소스를 좀 더 다양화하여 서사의 품질을 높이고, 합리적인 투자 방식을 찾는 노력이 필요한 시기다.
OTT가 방송 장르의 관습을 수용하고 있다는 것은 OTT가 과연 최적화된 서비스를 제공해 주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게 한다. 물론, 사업자들은 이용자에게 편의를 제공해 자사 플랫폼이 가진 경쟁력을 높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이용자의 눈높이가 높아지고 있고, 새로운 콘텐츠가 부족한 상황에서는 어떤 사업자도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충분히 확보하기 어렵다. 콘텐츠에 관심이 많은 이용자 입장에서는 복수의 플랫폼을 구독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사업자가 이용자의 니즈에 맞는 최적화된 서비스를 완전히 구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이용자의 주체적인 선택은 더욱 중요하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이용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더 많은 고민과 실험이 필요하다.
출처: 이 글은 2023년 1월 29일 같은 제목으로 <아주경제>에 기고한 글입니다.
https://www.ajunews.com/view/20230129092158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