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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창희 Mar 31. 2023

비평적 가치 시대정신 대중 좋은 콘텐츠의 기준은?

<아주경제> [노창희 칼럼]

가장 주목받는 젊은 감독 중 한 명인 데이미언 셔젤 감독이 연출한 ‘바빌론’은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넘어가는 시기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189분의 장대한 서사를 가진‘바빌론’은 무성영화 시절의 스타들이 유성영화 시기로 넘어가면서 어떻게 퇴장하는 지를 다루고 있다. 어느 산업이나 마찬가지지만 영화를 포함한 영상산업은 기술 진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영역이다. 영화는 기술 변화에만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다. 당대를 둘러싼 시대적 분위기에 영화만큼 큰 영향을 받는 영역도 드물 것이다. 영화를 포함한 대중문화는 당대를 재현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사극이나 SF도 당대적 가치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영화를 포함한 영상 서사는 이용자들의 정서나 시대정신에 큰 영향을 주는 문화상품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어떤 작품이 좋은 콘텐츠인지에 대한 기준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넘어가는 시기만큼 혹은 그 이상 큰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는 영상산업에서 좋은 콘텐츠의 덕목이 무엇인지는 더욱 중요한 물음이 되어가고 있다.   

  

이용자의 선택권이 높아지고 OTT가 최적화된 서비스와 콘텐츠 제공을 표방하면서 이용자 주도의 미디어 생태계가 형성되어 가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어 왔다. 하지만 OTT와 같은 인터넷 기반 매체도 많은 이용자에게 주목받을 수 있는 텐트폴 콘텐츠 중심으로 경쟁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용찬은 <포스트매스미디어>에서 매스미디어가 주도했던 시기와는 다른 환경에서 미디어가 생산되고 있지만 여전히 매스미디어 시대의 역학이 영향을 미친다고 얘기한다. 김용찬은 그런 측면에서 현재의 미디어 환경을 ‘포스트매스미디어’라고 기술한다. 동영상 매체가 넘쳐나는 디지털 대전환 환경에서도 이용자의 선택과 기준에 영향을 미치는 트렌드와 시대적 흐름은 존재한다. 콘텐츠를 평가하는 기준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좋은 콘텐츠를 가늠하는 기준이 명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영화의 경우 가장 많이 참고하게 되는 중요한 지표 중 하나는 시상식이고 그중에서도 아카데미 시상식은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행사다. ‘헤어질 결심’이 후보에도 포함되지 못하면서 국내에서는 최근 몇 년간 가장 주목을 덜 받았지만 아카데미 시상식은 올해도 많은 관심 속에 진행되었다. 봉준호 감독이 로컬 상이라고 언급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아카데미가 갖는 상징성은 미국이라는 시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를 로컬 영화제라고 한 것은 ‘기생충’의 수상 여부가 화제가 되던 시기에 수상에 너무 연연하지 않겠다는 완곡한 표현이었을 것이라고 짐작해 볼 수 있다. 하지만‘기생충’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승자가 되면서 얻은 것은 너무나도 많다.     


올해 열렸던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승자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였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양자경이 여우주연상을 받은 것을 포함해서 작품상, 감독상, 여우조연상, 남우조연상, 각본상, 편집상 등 무려 7개 부분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최근 유행하고 있는 멀티 유니버스를 독창적으로 구현해낸 영화로, 에블린(양자경 분)을 포함한 아시아계 가족이 멀티 유니버스라는 기이한 상황에 직면하면서 가족이 처한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 가는가를 다루고 있다. 영상 서사가 지향하고 있는 시대정신을 살펴보는 데 도움이 될 거 같아 최근 몇 년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목받은 작품을 일별해 보고자 한다.     


2022년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가장 주목받은 작품은 ‘코다’였다. 코다는 작품상, 남우조연상, 각색상을 수상했다. ‘코다’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농인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루비 로시(에밀리아 존스 분)의 성장 과정을 다루고 있는 영화다. ‘코다(Children Of Deaf Adult)’라는 용어 자체가 청각 장애인 부모로부터 태어난 자녀를 의미하는 용어다. 2021년에 개최된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여우주연상을 차지한 프란시스 맥도맨드를 포함해 작품상과 감독상을 차지한 ‘노매드랜드’가 주인공이었다. ‘노매드랜드’는 펀(프란시스 맥도맨드 분)이 자동차를 타고 집 없이 떠도는 노매드의 삶을 선택하면서 겪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승자는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을 수상한 ‘기생충’이었다. 최근 몇 년간 아카데미의 선택을 받은 작품들이 가진 공통점은 사회적 약자 혹은 소수자의 얘기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양극화가 심화된 사회적 구조의 문제를 다룬 작품이 주목받고 있다는 것도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시대정신(Zeitgeist)’은 스트리밍 생태계를 대표하는 사업자 넷플릭스가 즐겨 쓰는 표현이기도 하다. 넷플릭스는‘오징어 게임’에 대해서도 시대정신을 잘 담아낸 콘텐츠라고 자평한 바 있다. 하지만 시대정신을 담았다고 해서 그 콘텐츠를 좋은 콘텐츠라고 하기는 어렵다. 콘텐츠의 미학적 가치가 개연성이라고 보는 입장에서 시대정신에만 천착한 콘텐츠는 성공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결국 시대정신을 잘 구현하면서도 완성도 높은 콘텐츠가 좋은 콘텐츠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넷플릭스와 같은 OTT 사업자도 좋은 콘텐츠를 제작하는 사업자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 이유는 이용자들도 좋은 콘텐츠로 인정받는 콘텐츠를 제공하는 사업자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콘텐츠를 제작하는 사업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용자로부터 선택받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이고, 이런 측면에서 대중성은 여전히 가장 중요한 가치다.     


좋은 콘텐츠에 단일한 기준이란 존재할 수 없다. 특히, 현재와 같이 다양한 가치를 고려하면서 콘텐츠를 제작하는 시기에 좋은 콘텐츠의 기준을 설정하기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경기 침체로 미디어 산업의 재원 구조가 어려워지는 와중에 제작비 상승은 지속되고 있다. 이런 시기일수록 좋은 콘텐츠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은 더욱 절실하다. 2024년 아카데미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현재로는 전혀 예측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좋은 콘텐츠의 기준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고민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출처: 이 글은 '비평적 가치, 시대정신, 대중성… 좋은 콘텐츠의 기준은 무엇인가?'란 제목으로 3월 30일에 

<아주경제>에 기고한 글입니다.


https://www.ajunews.com/view/20230328094024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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