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신문> [노창희의 미디어와 컬처]
추석은 통상 극장산업의 대목 중 하나로 통한다. 이번 추석 때도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1947 보스턴’, ‘거미집’ 등 텐트폴급 영화 세 편이 추석 연휴 직전인 9월 27일에 개봉해 위기에 빠진 극장산업을 구원해 줄 것이라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추석 연휴 기간이었던 9월 28일부터 10월 3일까지 극장을 찾은 관객 수는 311만 3170명에 불과했다. 이 수치는 올해보다 연휴가 이틀 짧았던 작년에 극장을 찾았던 373만 3024명에 못 미칠 뿐 아니라 작년 추석 연휴에 극장을 주도했던 ‘공조2: 인터내셔날’이 2022년 추석 연휴 동안 동원한 관객인 283만 1928명을 조금 상회하는 수치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창고에 쌓여 있는 영화가 아직 많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는데 새롭게 제작된다는 영화 소식을 찾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미디어 환경이 변화한 만큼 극장의 위기가 영화산업 전체의 위기와 동의어가 되기는 어려울 수도 있지만 코로나를 전후로 국내 영화산업이 가혹한 상황에 내몰려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필자는 영화산업의 위기가 영화산업에 국한된 문제만이 아닌 전체 미디어, 문화산업 측면에서 심각하게 들여다볼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번 칼럼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영화산업의 위기가 아니라 ‘다양한 영상상품이 경합하는 와중에 이용자는 어떤 선택을 하고 있고, 무엇을 염두에 두고 콘텐츠를 소비해야 하는가’다.
영화의 위기로 글을 시작한 이유는 극장 관객 수 감소에 OTT의 성장이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극장에 가는 경험과 OTT를 통해 영화를 시청하는 것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다른 문화적 체험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OTT를 극장의 대체재로 보기는 어렵다. 그보다 유사한 속성을 가지고 있는 유료방송과 OTT의 관계도 여전히 대체재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극장 체험과 OTT 이용을 수평 선상에서 놓고 비교하는 것은 더욱 조심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OTT의 성장과 극장 관객 수 감소가 동시에 일어나고 있고, OTT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장르 중 하나가 영화라는 점을 고려할 때 OTT 이용량 증가와 가입자 급증이 극장을 찾는 관객 수 감소에 영향을 줬다는 점은 납득할 수 있는 부분이다.
넷플릭스는 국내·외에서 영화계와 불편한 긴장 관계와 협력 관계를 동시에 이어가고 있다. 넷플릭스로부터 제작 투자를 받는 것에 대한 이점이 커지면서 넷플릭스의 영화 제작·유통에 대한 거부감이 과거에 비해 줄어들었으나, 넷플릭스로부터 촉발된 OTT의 영화 제작·유통이 영화라는 장르 자체에 대해 중대한 도전으로 작용한 것만큼은 부인하기 어렵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할 부분은 OTT가 활성화되는 사이에 극장 관람료가 인상됐다는 것이다. 일반관 기준으로 1만5000원으로 인상된 극장 관람료는 관객 입장에서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광고요금제를 도입한 넷플릭스는 월 5500원을 내면 수만 편의 영화를 제약 없이 이용할 수 있다. 티빙, 웨이브 등 국내 OTT들도 베이직 요금제가 1만 원 이하로 형성돼 있다. 티빙과 웨이브는 광고요금제 도입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OTT 요금제는 더욱 저렴해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OTT 요금 정책 변화는 광고요금제 도입에 따른 요금 인하가 아니라 요금 정책 다양화라는 측면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다른 국가에서 광고요금제를 도입한 바 있는 디즈니플러스는 국내 진출 후 처음으로 요금 인상 계획을 발표했다. 보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UHD 화질로 4명까지 동시 접속이 가능한 프리미엄 요금제를 월 1만3900원, 연 13만9000원의 가격으로 2023년 11월 1일부터 출시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OTT 사업자들이 요금 정책을 다양화하고 있는 이유를 따져보면, 이용자를 유인하고 수익 모델을 다각화하기 위해서는 광고요금제와 같은 저가 요금제가 필요하지만 매출 극대화를 위해서는 프리미엄 요금제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SVOD 경쟁의 기본 구도는 다른 플랫폼에서 서비스하지 않는 오리지널 콘텐츠나 익스클루시브 콘텐츠를 독점적으로 제공해 신규 이용자를 끌어들이고 기존 가입자의 이탈을 방어하는 것이다. ‘무빙’ 효과로 인한 디즈니 플러스의 약진은 현재와 같은 OTT 경쟁 구도에서 콘텐츠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경쟁 구도가 지속되면서 이용자들은 보고 싶은 콘텐츠를 다 보기 위해서는 복수의 플랫폼에 동시에 가입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이러한 상황은 누누티비와 같은 불법 사이트 이용에 대한 유인을 높이고 있다. 정부의 노력으로 차단됐던 누누티비는 유사한 형태의 불법 사이트가 다시 등장하면서 누적 접속자 수가 19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복합적인 미디어 환경의 변화는 이용자의 선택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일수록 합리적 소비가 필요하다. 이용자 입장에서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사항은 자신에게 콘텐츠 소비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따져보는 것이다. 콘텐츠 소비에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이용자라면 어느 정도 재정적 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콘텐츠를 이용하는 것이 본인에게도 유익한 일이 된다. 콘텐츠 소비는 여가의 영역이지만 삶의 가치와도 연결되기 때문에 선한 소비가 바람직하다. 또한 불법적 행위가 성행하게 된다면 중·장기적으로 국내 미디어 산업 전체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은 유독 이용자들이 자국 콘텐츠를 선호하는 국가다. 내가 좋아하는 우리나라 콘텐츠를 이용하기 위해서라도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미디어를 연구하는 입장에서 인터넷 등장 초기에는 이용자의 능동성에 대해 다소 과하게 긍정적 기대를 표명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면, 현재는 알고리즘 등 데이터 기반 맞춤형 서비스 등으로 이용자가 무력해지고 있다는 우려가 갈수록 커지는 느낌이다. 이용자는 능동적일 수도, 수동적일 수도 있는 존재다. 중요한 것은 이용자가 자신이 처한 맥락에 맞게 미디어를 소비하는 것이다. 앞으로는 이용자가 매체와 콘텐츠를 선택하는 일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이처럼 도전적 환경일수록 자신에게 필요한 미디어 소비가 이뤄지는 게 중요하다.
출처: https://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553592
이 글은 10월 14일 <한국대학신문>에 '영상상품의 다양화와 복잡해진 미디어 생태계의 역학, 이용자의 선택은?'이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