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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창희 Mar 04. 2024

가성비 시대에 진지한 영상 소비는 왜 필요한가?

<한국대학신문> [노창희의 미디어와 컬처]

OTT를 연구하는 입장에서 잊을 만하면 받는 질문은 OTT의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다. 2022년에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에 ‘온라인 비디오물’의 정의가 추가됐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명시되지 않았다. 넓은 의미에서는 인터넷에서 유통되는 모든 동영상을 OTT로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협의로 보면 OTT의 정의에 다양한 조건이 붙을 수 있다.     


과거에 영상물이라 하면 영화·드라마·예능 등 완결된 형태의 콘텐츠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유료 방송·OTT 등 영상 제공이 주목적인 매체뿐 아니라 SNS를 통한 영상 소비가 비약적으로 증가하며 영상 소비 행태가 근본적으로 변화했다. 모바일 환경, 그 중에서도 SNS를 통한 영상 소비는 짧은 시간에 이뤄진다. SNS는 기본적으로 사회적 연결망의 성격을 가진 동시에 오락성도 강하다. 유튜브에서도 짧은 시간에 소비할 수 있는 콘텐츠가 많이 유통된다. 10초에서 10분 사이의 짧은 동영상을 ‘숏폼’이라고 부른다. OTT에 관한 정의로 글을 시작한 이유는 숏폼 콘텐츠의 이용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유튜브의 ‘쇼츠’와 인스타그램의 ‘릴스’ 등 짧은 시간 동안 소비할 수 있는 동영상 이용의 장점은 짧은 시간에 높은 만족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앱·리테일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굿즈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3년 8월 기준 1인당 유튜브·틱톡·인스타그램 등 숏폼 플랫폼 이용 시간은 46시간 29분으로 나타난 반면, 넷플릭스·티빙을 포함한 주요 OTT 플랫폼의 이용 시간은 9시간 14분으로 조사됐다(채성숙 (2023. 9. 26). 한국인 ‘OTT’보다 ‘숏폼’을 더 오래 본다...월 평균 사용시간 5배 차이. <매드타임스>. 재인용). 숏폼의 경우 대부분 무료로 접근할 수 있는 플랫폼을 통해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겠지만, 이용자들의 동영상 이용 행태가 근본적으로 변화한다는 점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숏폼을 OTT로 보지 않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OTT는 넓게 보면 인터넷을 통해 유통되는 모든 종류의 동영상을 포괄한다. 숏폼의 이용량이 늘어나는 이유는 짧은 시간에 ‘가성비’ 높게 동영상을 소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나다 도요시는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황미숙 옮김, 서울: 현대지성)에서 이용자들이 OTT로 영상을 보며 ‘빨리 감기’와 ‘10초 건너뛰기’ 등의 기능을 이용하는 것을 ‘시간 가성비’를 추구하는 행위라고 설명한다. 고를 수 있는 동영상이 많은 상황에서 이용자들이 가성비를 추구하는 건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2023)의 <2023 OTT 이용행태 조사>에 따르면 국내 이용자 55.2%가 유료로 OTT를 이용하고 있으며, 이용하는 유료 OTT의 갯수는 1.8개로 나타났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플랫폼이 있지만 이용자들이 돈을 지불하며 사용하는 플랫폼들에도 봐야 할 콘텐츠들이 넘쳐 난다. 이같은 현실을 고려하면 최대한 많은 콘텐츠를 짧은 시간 동안 소비하려는 욕구는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남들이 보는 콘텐츠를 나만 보지 않을까 우려하며 강박적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보기 위해 가성비 좋은 영상 소비를 추구하는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증후군’에 가까운 경향도 나타난다. 포모증후군이란 소외를 두려워하는 불안 증상을 뜻한다.     


편리한 영상 이용 환경이 지닌 딜레마는 이용자가 영상이 어떤 방식으로 제공되는지에 관한 정보에 갈수록 무지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숏폼 소비는 대부분 알고리즘 기반 추천에 따라 이뤄진다. 이용자들은 자신의 취향에 근거해 콘텐츠를 추천받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플랫폼의 추천에 따라 나의 여가 시간이 잠식당할 수도 있다.     


딥페이크는 동영상이나 이미지를 조작하는 기술이다. 최근 국내·외에서 딥페이크를 활용해 선거에 악용하는 등 딥페이크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높아졌다. 넷플릭스가 올해 공개한 드라마 <살인자ㅇ난감>에는 배우 손석구의 아역을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해 등장시켜 화제가 된 바 있다. 물론 드라마에서 딥페이크를 활용하는 건 정당하지만, 악용된다면 이용자가 기만당할 수 있다. 기술의 발전은 이용자의 편의를 높여주는 동시에 이용자가 기술에 의해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영상을 볼 수 있는 창구가 TV와 극장으로 국한됐던 시절, TV를 많이 보는 행위가 경멸의 대상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플랫폼 주도 환경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영상을 보는 행위는 여가·정보 획득의 측면과 문화 소비의 관점에서 매우 중요한 행위다. 숏폼을 보거나 롱폼 형식의 콘텐츠를 빨리 감기와 건너뛰기를 통해 보는 가성비 소비는 여가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가성비 소비에 익숙해지게 되면 진지하게 영상을 보는 근력 자체를 잃어버릴 수 있다. 소설가 최민석은 긴 소설을 읽으려면 ‘독서 근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최민석 (2024. 2. 28). 왜 긴 소설을 읽어야 할까. <국민일보>.). 영상이 여가뿐 아니라 정보습득에 있어서도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시기에 영상을 보는 체력을 기르는 게 매우 중요하다.     


OTT 시대가 열리면서 집중해 보지 않으면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운 콘텐츠가 계속 제작된다. 영상 소비 능력은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지금 같은 환경에서 필요한 능력은 영상을 보는 체력을 기르는 일이다. 영화 한 편을 온전히 다 보거나, 드라마를 빨리 감거나 건너뛰지 않고 보는 것 자체가 영상 소비에 필요한 체력을 기를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다. 숏폼 소비에 너무 집중하면 도파민이 과도하게 활성화돼 더욱 자극적인 콘텐츠를 찾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숏폼 소비 자체가 나쁘다기보다는, 숏폼 소비와 롱폼에 대한 진지한 소비가 병행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전 국민의 절반 이상이 유료로 OTT를 이용하며 1.8개의 OTT를 유료로 이용하는 상황에서 자신이 이용하는 플랫폼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방법은 콘텐츠를 진지하게 소비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콘텐츠의 위상이 높아지며 콘텐츠의 산업적 가치가 강조되는 현상에 비해 콘텐츠 소비 방식은 상대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지 못했다. 대한민국 이용자들이 콘텐츠에 갖는 관심과 그에 따른 반응은 콘텐츠의 품질과 다양성을 높이는데 많이 기여했다. 이제는 소비 방식에 대한 관심도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진지한 영상 소비를 위한 체력 기르기와 진지한 영상 소비 교육에 관심을 가져야 할 시기다.


출처: https://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560140

이 글은 같은 제목으로 <한국대학신문>에 2024년 3월 1일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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