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유석 (2017). 『개인주의자 선언』. 파주: 문학동네.
나는 얼마나 자유로운가? 의외로 이 질문 자체를 해본 한국인은 많지 않을 것이다. 헌법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가 ‘자유’이고, 대한민국이 자유 민주주의 국가라는 말은 정치적 논쟁에 있어 일상적으로 등장하지만 의외로 자유라는 가치에 대해서는 대한민국이 여전히 후진적이란 것을 부정하기 어려울 것 같다. 여기서 얘기하는 자유는 정치적이거나 경제적인 이념이나 기조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개인이 나답게 살 수 있는 일반적인 의미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다.
『개인주의자 선언』의 저자 문유석은 대한민국 판사이다. 학력고사에서 수석을 차지했으며, 가장 들어가기 어렵다는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고, 사법고시에 패스한 엘리트다. 검찰이 어떠한 조직인가? 검찰 개혁을 두고 벌어지고 있는 작금의 사회적 논쟁만 봐도 대한민국에서 검찰이 어떠한 조직인지 잘 알 수 있다. 문유석이 비판하는 ‘수직적 가치관’에 정점에 있는 조직이 바로 검찰이다. 그런 검찰에 속해 있는 그가 펴낸 책이 『개인주의자 선언』이다. 이 책을 사서 집에 팽개쳐 둔 지 한참이 지난 다음에야 이 책을 읽게 된 배경에는 대한민국 판사가 과연 개인주의에 대해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나의 편견이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프롤로그 「인간 혐오」를 읽기 시작하자마자 나의 편견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그는 개인주의자다. 다만, 한국사회의 특징을 어려서부터 빨리 습득하고 냉소하면서 거기에 무난히 적응해 왔을 뿐이다. “집단주의 성향이 강한 한국사회에서 투사가 되기 싫으면 연기자라도 되어야 하(8쪽)”는 것이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참 열심히 산다. 열심히 사는데 왜 불행한가? 나 자신의 준거가 내 삶의 행복의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집단의 기준과 타인과의 비교가 내가 잘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집단 내에서의 서열, 타인과의 비교가 행복의 기준인 사회에서는 개인은 분수를 지킬 줄 아는 노예가 되어야 비로소 행복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사다리 위로 한칸이라도 더 올라가려고 아등바등 매달려 있다가 때가 되면 무덤으로 떨어질 뿐이다. 행복의 주어가 잘못 쓰여 있는 사회의 비극이다(22쪽).” 아무리 위로 올라 간다 한들 그 위에 또다른 포식자가 존재한다. 다시 그를 넘어서야 하는 악순환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동안 계속해서 반복되는 비극이다.
나와 다른 너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회, 개인 간의 서열이 존재한다고 믿는 ‘수직적 가치관’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사회에서는 누구도 행복하기 어렵다. 문유석이 얘기하는 수직적 가치관이란 “사회 구성원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획일화되어 있고, 한 줄로 서열화되어 있(28쪽)”는 의식을 의미한다. 이런 사회에서는 “모두가 상대적 박탈감과 초조함, 낙오에 대한 공포 속에(29쪽)”살 수밖에 없다고 문유석은 얘기한다. 수직적 가치관 때문에 우리는 “집단적 정신병(29쪽)”을 앓으며 살아가고 있다고 문유석은 일갈한다.
대한민국은 동아시아 그 어느 국가보다 빨리 경제성장을 이뤄낸 국가고, 외환위기를 극복한 국가이자, 시민이 민주주의를 쟁취한 국가다. 하지만 여전히 국민들은 불행하다.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오명과 헬조선이라는 경멸적인 단어가 이를 반증한다. 여기에는 복지 체계와 같은 복합적인 시스템이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물질적인 인프라가 필요 없는 우리의 마음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스스로 자승자박(33쪽)”하며 불행을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나와 같지 않은 너를 교정하려 들고, 나와 너의 급을 따지는 사회에서는 모두가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수직적 가치관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 야만적 집단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이것이 『개인주의자 선언』이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이다. 다음의 문장은 뼈아프다. “어떤 때는 다른 것은 몰라도 고통만큼은 평등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13쪽).” 고통이 평등한 사회가 아니라 행복이 평등한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유석이 주장하는 합리적 개인주의라는 가치에 대해 경청할 필요가 있다.
“개인주의란 유아적인 이기주의나 사회를 거부하는 고립주의가 아니다. 개인주의는 근대 계몽주의, 합리주의와 함께 발전하며 서구사회의 근간을 형성했다. 합리적 개인주의자는 인간은 필연적으로 사회를 이루어 살 수밖에 없고, 그것이 개인의 행복 추구에 필수적임을 이해한다. 그렇기에 사회에는 공정한 규칙이 필요하고, 자신의 자유가 일정 부분 제약될 수 있음을 수긍하고, 더 나아가 다른 입장의 사람들과 타협할 줄 알며, 개인의 힘만으로는 바꿀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타인들과 연대한다. 개인주의, 합리주의, 사회의식이 균형을 이룬 사회가 바로 합리적 개인주의자들의 사회다(2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