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론을 읽고 by 마키아벨리
1. 서론
악마의 책으로 불렸던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시대에 뿐만 아니라 읽는 사람에 따라 평가가 극명하게 엇가리는 책이다. 출판사 “현대 지성”에 따르면, 필사본이 돌아다닐 때부터 논란의 대상이었을 뿐만 아니라 아니라 교황청은 악마의 사상이라고 하며 금서로 지정했다. 하지만, 현대 사회의 “군주론”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뒤바뀌었다. 하버드대, 옥스포대, MIT 그리고 서울대등 세계 유수의 대학으로부터 필독서로 지정되었고, “타임”과 “뉴스위크”는 “세계 100대” 도서로 꼽았다.
“군주론”에 대한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이유는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개념의 변화와 궤를 같이 한다. “군주론”은 군주가 인간에 대한 냉철한 평가를 토대로 행동할 때, 자신의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착하기만 한 존재가 아니다. 그래서 군주는 보복을 확실히 해야 한다. 동시에 인간이 평등을 요구하기 때문에 통치는 법에 기초해야 한다. 이런 모순적이면서도 악의적 본성에 대한 군주론의 분석은 인간은 신의 비조물로서 합리적이고 선천적으로 “선” 하다는 관념을 가진 교황청은 “군주론”을 악마의 사상으로 치부했던 것이다. 반면에,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인간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무너지고 행동경제학 심리학이라는 새로운 평가 방식으로 인간을 평가하고 있는 현대에서는 “군주론”에 대한 평가가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군주론”에의 분석이 현대의 인간에 대한 분석보다 심오하거나 더욱 정확하지 않다. 오히려 피상적인 인간에 대한 분석이 “군주론”의 주를 이룬다. 무의식이나 구조주의 같은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그림자에 대한 설명은 없고 단순히 작용 - 반작용처럼 물리적 법칙으로 인간을 그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주론’이 여전히 읽히는 이유는, 단순히 인간에 대한 냉혹한 묘사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마키아벨리가 자신의 시대를 지배하던 고정관념에 맞서 새로운 시각을 만들어내려 했던 그 의지 덕분일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군주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오늘날의 맥락에 맞게 다시 읽고 해석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군주론’은 과거의 책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위한 문제제기로 다가온다.
2. 탄생배경 및 줄거리
마키아벨리는 피렌체 공화국에서 국제 외교를 담당한 공무원이었다. 그는 그의 능력을 바탕으로 타국에 대한 분석을 담은 보고서를 써서 보냈는데, 그의 문체와 묘사가 탁월해 종이가 너덜너덜 해질 때까지 관계자들이 읽어봤다고 한다. 그렇게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던 마키아벨리는 44세의 나이에 메디치 가문에 대한 반란 음모 혐의로 투옥되고 파면당한다. 이후 조반니 데 메디치 추기경이 레오 10세로 선출되고, 그의 동생 줄리아노 데 메디치가 형의 취임을 축하하기 위해 대대적인 사면령을 내린다. 사면된 마키아벨리는 시골 농장에 칩거하며, 줄리아노 데 메디치가 자신의 능력을 인정하고 다시 기용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군주론』을 집필했다.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마키아벨리는 끝내 중용되지 못한 채, 1527년 5월 22일 58세의 나이로 외롭게 생을 마감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2가지가 조건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첫째, 군주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역량”과 “행운”이 필요하다. ‘역량’만으로는 갑작스러운 불운 앞에 쉽게 무너지고, ‘행운’만으로는 우연히 얻은 열매를 잠시 누릴 뿐, 오래 권력을 유지할 수 없다. 비록 그 열매를 가졌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권력을 길게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마키아벨리의 주장이다.
둘째, 군주는 당시 지배적으로 통용되던 덕에만 의존하지 말고 필요하다면 권모술수도 불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군주가 다스리는 국민이나 그의 경쟁자들이 도덕적으로만 행동하지 않기에, 군주 또한 필요하다면 도덕적으로 악하게 보이는 전략을 사용해야 한다. 즉, 흔히 ‘마키아벨리즘’으로 알려진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원칙이 두 번째 조건이다.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기 위해, 모세 키루스 등의 역사적 사례에서부터 고전을 대표하는 알렉산더 대왕 그리고 체사레 보르자와 같은 당대 이탈리아 군주들의 실제 사례를 들었다. 이는 마키아벨리의 인문학적 지식뿐만 아니라 역사적 개별사건들을 하나의 관념으로 묶을 수 있는 그의 능력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만약 마키아벨리가 자신의 정치적 복귀를 노리고 『군주론』을 집필했다면 이 책의 신뢰성은 흔들리는 것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만약, 마키아벨리가 군주에 대한 객관적 역량에 대한 분석보다 자신의 안위를 우선시했다면 당대를 지배하던 교황적 세계관을 기반으로 “군주론”을 집필하는 것이 더욱 유리했을 것이다. 더구나 조반니 추기경이 교황으로 막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던 시기였기에, 그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었다.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도 신적 인간관을 거부하고 현실적인 인간관을 택하는 것은 자신의 사상을 펼치고 이탈리아를 보호하는 것이 개인의 영달보다 우선시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3. 현상학으로서의 “군주론”
“군주론”이 읽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여러 가지 관점이 뒤섞여 있다는 점이다. 박구용 교수에 따르면, “군주론”은 여러 관점을 가진 마키아벨리가 집필한 책으로 이해할 때 이해가 된다고 이야기했을 정도이다. 그리고 그는 “군주론”이 현상학적 관점에서 집필되었다고 말했다.
현상학은 모든 선입견을 내려놓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현상을 기술하려는 방법이다. 반면 관점주의는 인간이 이미 전이해와 무의식에 얽매여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특정 관점에 기반해 현상을 해석하는 접근이다. 현상학적 접근법은 헤겔의 “정신현상학”, 후설의 “데카르트적 성찰” 그리고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등 다양한 고전 철학의 서술방법으로 사용되었다. 현상학을 사용하는 철학자들은 “사태 자체로(후설과 하이데거의 표어이고 헤겔의 작품에서 언급되지는 않지만 3가지를 다 엮을 수 있는 개념)”를 강조한다. “사태 자체” 즉 현상에 최대한 가깝게 접근했을 때, 그 현상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헤겔은 현상학적 접근법만이 정신의 성장과정을 있는 그대로 파악할 수 있고 철학적 시각에 거부감을 느끼는 일반인을 설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후설은 학문의 위기를 과학적·수학적 접근법에 매몰된 시각에서 찾았고, 하이데거는 존재를 파악하는 현상학적 접근만이 철학을 모든 학문의 근본으로 세울 수 있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서 위의 3명 모두 다, 객관적 사태의 서술이 진리를 찾는 여정의 시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을 통해 자신의 영달보다, 이탈리아를 구원할 진정한 군주의 탄생을 더 중시했다. 신학적 인간관을 거부하는 그의 현실적 접근은 당대 피렌체 군주에게 환영받기 어려웠지만, 그만큼 시대를 넘어선 문제의식이었다. 그는 신학적 혹은 도덕적 접근은 이탈리아를 보호할 수 있는 군주의 탄생을 뒤로 미룰 뿐이라고 믿었다. 오히려 성공한 군주들의 사례를 “사태 그 자체”로 파악할 때 그들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고, 이를 전하는 것이 이탈리아를 구원할 군주를 탄생시킬 수 있다고 믿은 것 같다.
“군주론 3장:
민중이란 다정하게 대해주거나 철저히 파멸시켜 버려야 한다.”
“군주론 17장: 잔인함과 인자함에 대하여
인간은 감사할 줄 모르고 변덕스러우며 앞뒤가 다르고 위선적이며 위험은 피해 가고 이득이 되는 일에는 극성을 부린다.”
“군주론 18장: 군주가 약속을 지킨다는 것의 의미에 대하여
안타까운 일이지만 인간은 사악하고 당신에 대한 신의를 지키지 않는다. 따라서, 당신도 그들에 대한 신의를 지킬 필요가 없다.”
이처럼 『군주론』이 요구하는 군주는 신적이고 도덕적인 존재가 아니라, 현실적이고 책략적이며 때로는 비열하기까지 한 인간이다. 바로 그 점에서 마키아벨리는 ‘사태 자체’를 서술하려 했던 것이다.
4. “군주론”의 세계관
마키아벨리가 현상학을 사용해 “군주론”을 집필했지만, 그 또한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마키아벨리의 시대는 인간 중심적 사고가 부상한 르네상스와, 신 중심적 사고가 여전히 강력했던 중세가 공존하던 시기였다. 물론 르네상스가 더 큰 힘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오랜 세월에 걸쳐 사람들의 사고를 형성해 온 중세의 세계관이 쉽게 저물지는 않고 있었다. 이런 시대에 마키아벨리는 르네상스와 중세 세계관을 혼합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그의 세계관은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는 결정론적 믿음과, ‘그럼에도 인간은 행동해야 한다’는 능동적 인간관이 동시에 자리하고 있었다.
“세상은 인과율의 법칙에 따라 흐르기 때문에,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쟁취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행운이라는 바람이 나의 운명과 반대 바람으로 불면 인간은 어찌할 수 없다. 하지만, 운이 어느 방향으로 작용할지 모르기 때문에 매사에 최선을 다하고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을 붙잡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는 테넷과 메멘토에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제시한 인간관계와 흡사하다.(유튜브 “요런 시점”님의 유튜브를 참고) 테넷에서 닐은 자신들의 작전이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진다. 그는 “일어날 일은 일어날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작전을 실행한다. 하지만, 마지막에 자신의 목숨을 희생해 문을 닫으러 가는 상황에서 운명이 일어나는 것을 수동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자신이 직접 문을 닫으려고 사지로 들어가는 것이다. 메멘토의 레너드는 단기 기억상실증으로 자신의 몸에 주어진 정보만으로 일어났던 사건을 파악하려고 한다. 주변 사람들은 레너드가 가지고 있지 않은 정보를 이용해 지속적으로 그를 기만한다. 레너드가 행동하지 않아도 세상은 흘러가겠지만, 그는 기억의 한계를 딛고 끊임없이 운명을 개척하려 애쓴다. 따라서, 마키아벨리는 “스스로의 군대를 가지는 것, 자기보다 강한 자는 멸망시키고 약한 자에게 베푸는 것, 너그럽기보다는 인색할 것”처럼 운명에 순응하되, 군주가 할 수 있는 한에서는 운명의 영향을 최소화하라는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마키아벨리에게 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민중이었다. 체사레 보르자의 사례처럼 모든 것을 준비한 군주도 불운 앞에 무너질 수 있지만, 민중의 지지를 얻은 군주는 위기를 넘어설 힘을 가질 수 있다. 그는 운과 함께 군주가 되고 강력한 역량을 통해 자신을 실현시키지만, 위기의 순간 병에 걸려 그가 준비한 것을 실현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하지만, 마키아벨리는 적에 둘러싸여 있을 때도, 귀족들의 모함에도 그리고 스스로 병에 걸려도 민중의 강력한 지지를 받으면 그의 운명을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마키아벨리를 민중의 삶을 구원해 줄 강력한 지도자를 찾는 공화주의 즉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마키아벨리가 강조하는 비열함과 권모술수는 민중에게 향하라고 한 적이 없다. 이는 민중을 구할 수 있는 지도자가 자기의 권력을 얻으려고 할 때, 비슷한 욕망을 가진 경쟁자에 향한 조언이다. 그리고 그는 민중에게 잔인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법을 세우고 범죄자에게 잔인할 것을 요구한다. 마키아벨리는 민중 자체를 억압하라고 한 적이 없다. 오히려 착취하는 귀족과 범죄자를 단호히 처벌하고, 민중이 안정적으로 생업에 종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강력한 국가의 핵심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5. 군주의 가장 중요한 역량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자신의 유한성을 인정하고, 고정된 사고에서 벗어나 목적을 달성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역량으로 보았다. 마키아벨리의 시대에는 두 가지 인간관이 공존했다. 하나는 인간을 신의 대리물로 보고 도덕성을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중세적 관념이었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이성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 르네상스적 관념이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의 분석은 오히려 현대의 행동경제학과 닮아 있다. 행동경제학은 인간을 합리적 경제인으로 전제한 고전경제학과 달리, 인간은 비합리적이고 예측 불가능하다고 본다.. 대표적으로 ‘손실회피’, ‘현상유지 편향’, ‘소유효과’, ‘프레이밍 효과’ 같은 편향들이 인간의 비합리성을 만들어낸다.
가. 손실회피: 민중은 얻는 것보다 빼앗기는 데 훨씬 큰 분노를 느낀다.
나. 현상유지 편향: 민중은 새로운 제도보다 기존 질서를 선호한다.
다. 공정성 선호: 군주가 재정적으로 인색하더라도, 법을 공정하게 적용한다면 민중은 지지한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새로운 분석을 제시했듯, 군주 역시 고정관념에 매이지 않고 새로운 시각을 발견하는 역량을 가져야 한다고 간접적으로 강조한다. 파면당한 처지에서 직접적으로 체제를 비판할 수 없었던 그는 과거 사례를 통해 새로운 관점을 드러내며, 군주가 스스로 깨닫기를 바랐다. 결국 그는, 운에 흔들리지 않고 새로운 시각으로 민중을 보호하는 군주가 되기를 바란 것이다.
6. 결론
“군주론”은 다시 읽혀야 한다. “군주론”은 악마의 책이 아니라 혁신의 책이다. “군주론”은 인간관계에 대한 책이 아니라 군주의 책임에 대한 책이다. 그리고 운명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그림자가 책임 있는 자를 덮쳐 올 때, 그것을 헤쳐나가는 방법에 대한 책이다. “군주론”에 나온 사례들은 역사적 사실을 알고 있지 않고는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역사적 사례에 대한 이해가 “군주론”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예시에 지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의 민중에 대한 열망과 타자의 고통에 대한 섬세함 그리고 군주라는 지위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 군주에 대한 분노라고 생각한다. 마키아벨리는 누구보다 휴머니스트다. 자신의 안위보다는 고통받는 민중을 위해 자신의 마지막 힘을 책 한 권에 담아냈다. 불행히도 피렌체는 그의 민중에 대한 열망을 차갑게 거부했고, 이후 이탈리아는 세계사에서 중요한 강대국으로 다시는 부상하지 못했다는 평가도 있다. 이는 본질을 잃어버린 군주에 대해 운명의 여신이 내린 형벌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