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소쉬르는 『일반 언어학 강의』를 통해 구조주의라는 새로운 철학의 문을 연 인물이다. 소쉬르에 따르면, 언어와 대상은 1대 1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다. 언어는 언어 체계 안에서 차이를 통해 의미가 정해진다고 주장했다. 이는 인간이 이성과 지성을 통해 세상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전통적 인식론에서 벗어나, 인간이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은 주어진 체계 안에서 결정된다는 것이다. 소쉬르의 구조주의 언어학은 레비스트로스, 들뢰즈, 푸코 등 다양한 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구조주의 철학자들은 소쉬르의 언어 체계를 무의식으로 대체하고,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이 무의식이라는 구조에 의해 결정된다는 철학적 사상을 전개했다. 그렇다면 소쉬르의 언어학은 어떤 점에서 혁명적이었고, 어떤 점에서 새로운 철학 세계를 열었는지 알아보자.
Langue(언어 체계)와 Parole(발화)
소쉬르의 일반 언어학 강의는 당시 언어학자들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된다. 소쉬르는 당시 언어학자들의 연구 목표와 연구 분야가 잘못되었다고 보았다. 그는 Parole이 아니라 Langue가 언어 연구의 주요 목표 및 분야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Parole은 발화 행위를 의미한다. 이는 개개인이 어떻게 언어를 사용하는지, 혹은 같은 문장이라도 개인의 사용에 따라 어떻게 의미가 달라지는지를 말한다. 반면, Langue는 언어 체계와 규칙을 의미한다. Langue는 문법이나 음운론처럼 변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언어 사용자들의 언어 행위를 규제하는 역할을 한다. Langue가 Parole보다 중요한 이유는 Langue가 사회적으로 공유되고 객관화되어 있어 언어 자체에 영향을 미치는 반면, Parole은 변동성이 크고 체계적이지 않기 때문에 언어 자체에 대한 설명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개인적인 요소보다 사회적 체계인 Langue가 중요한 것일까? 이를 이해하려면 소쉬르가 생각하는 언어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기표와 기의
소쉬르가 보기에 언어는 기호학이다. 여기서 말하는 기호학이란 특정 기호를 사회가 어떻게 해석하는지 연구하는 학문이다. 소쉬르는 사람들이 서로 대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언어는 기호들의 나열이며, 언어는 사회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기호를 해석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소쉬르는 기표와 기의라는 개념을 설명한다.
기표란 특정 사물을 지칭하기 위해 우리가 사용하는 문자나 소리를 말한다. "사과"라는 음성과 문자는 기표에 해당한다. 반면에, 기의는 기표가 나타내는 내용을 의미한다. "사과"라는 기표가 뜻하는 사물로서의 "사과"가 기의이다. 언어는 기표와 기의가 결합되어 나타난 기호로, 이를 통해 구성원 간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소쉬르에 따르면, 인간의 언어활동은 정신적 측면과 물리적 측면이 결합된 현상이다. 발화자는 정신적 활동을 통해 사과라는 물체(기의)를 떠올리고, 이를 전달하기 위해 "사과"라는 문자 혹은 소리라는 물리적 현상을 만들어 낸다. 대화 상대자는 "사과"라는 물리적 현상을 받아들이고, 이후 사과라는 물체를 정신적으로 떠올린다. 따라서, 기호를 해석하고, 만들어내며 체계화하는 것이 기호학의 본질이며, 이로 인해 Langue가 Parole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체계 안에서 개인의 발화는 변할 수 있지만, 체계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만 변화가 가능하다. 기호는 사회적 약속을 기반으로 의미를 갖기 때문에, 체계의 범위를 벗어난 변화는 더 이상 언어로 기능하지 못한다. 따라서, Parole은 변동할 수 있으나, 그 변동은 Langue 안에서 일어난다. 반면, Langue의 변화, 즉 체계의 변화는 Parole 자체의 위치를 변화시키기 때문에 언어를 이해함에 있어 Langue의 중요성은 절대적이다.
소쉬르의 혁명적 발견: 기표와 기의의 자의성
소쉬르의 가장 위대한 발견 중 하나는 기표와 기의의 결합이 자의적이라는 설명이다.
첫째, 기표와 기의의 결합이 자의적이라는 말은 기표와 기의의 결합에 어떠한 자연적 법칙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과’라는 기표가 빨갛고 달콤한 과일을 가리키는 데에는 아무런 자연법칙이 작동하지 않는다. "사과" 대신 "바나나" 또는 "자동차"가 이 과일을 지칭하는 기표가 될 수 있었으며, 실제로는 역사적이고 우연적인 요소에 의해 결합된 것이다. 이러한 결합의 자의성은 언어의 변화를 가능케 한다. 기표와 기의의 결합이 자연법칙에 근거하지 않기에, 사회적 요구에 따라 언어는 변화할 수 있다.
둘째, 기표와 기의의 결합이 자의적이고 자연적 규칙이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기호를 구분할 수 있을까?
a. 우리가 기호를 구분할 수 있는 것은 기표와 기의에 대한 사회적 체계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사과"는 사과를 뜻하는 기표로 약속되어 있기 때문에 "사과"라는 기표를 듣거나 보았을 때 사과라는 기의를 떠올릴 수 있다.
b. 기표와 기의의 구분이 자연적이지 않다는 말은 기표와 기의의 구분이 차이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바나나"라는 기표가 의미를 가지는 것은 바나나가 사과도 아니고 멜론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식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인식론이란, 인간이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에 대해서 기술하는 철학적 방법론을 말한다. 인식론은 크게 경험론과 합리론으로 나뉜다. 경험론은 인간은 경험을 통해 세상을 인식할 수 있다고 하고 합리론은 인간은 세상을 이성과 논리를 통해서 인식할 수 있다고 한다. 경험론의 주장은 자연에는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 있고 인간은 경험을 통해서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돌이라는 것을 만지고 느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돌이라는 사물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리고 돌이라는 사물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알 수 있다는 말이다. 반면에 합리론은 경험이 아니라 우리의 이성이 진리 탐구에 선행된다고 말한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본유관념이라는 것을 가지는데, 본유 관념은 이성을 통해서 우리에게 진리의 길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경험론과 합리론 모두 ‘세계는 객관적으로 존재한다’는 전제를 공유한다. 그것은 바로 세상은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객관적 물체들이 가득하고 우리는 언어 혹은 생각을 통해 객관적 물체를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언어나 인간의 생각은 세계의 본질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소쉬르의 자의성은 이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인간의 정신적 활동인 기의는 세상의 본질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기의간의 차이에 의해서 발생한다. 나방과 나비를 예로 들 수 있다. 나방은 나방 자체로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나비가 아니기 때문에 의미를 가진다. 나방은 나비와 모양이나 날아다니는 시간대 혹은 색이 다를 수 있는데 이러한 차이가 의미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나비 또한 마찬가지다. 나비도 나방과의 차이 때문에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하지만, 나방과 나비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나라에서는 나방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을뿐더러, 나비의 의미는 나방과의 차이가 아니라 잠자리와의 차이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차이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러한 차이는 언어가 사용되는 사회의 문화적 역사적 차이에 의해서 발생한다. 예를 들어, 나방과 나비를 구별하는 것이 일상화되지 않는 사회에서는 나방과 나비의 차이가 의미가 없기 때문에 이러한 전통이 후세에 까지 물려내려 오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자의성의 개념은 인간은 세계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전통적 인식론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다.
연사체와 연합체
소쉬르의 언어학에서 연사체와 연합체는 기표와 기의의 차이를 설명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연사체는 문장의 배열을 말한다. 예를 들어, "나는 사과를 좋아한다"라는 문장은 연사체에 해당한다. 한국어 문법이 규정한 대로 우리는 기호를 배열하고, 약속된 문법을 공유하는 한국어 사용자들은 "나는 사과를 좋아한다"를 이해할 수 있다. "I like apple"이라는 영어 문장은 "나는 사과를 좋아한다"와 다른 연사체의 형태를 가지지만, 영어 문법을 아는 사람들은 이 문장을 이해할 수 있다. 연사체는 기호의 나열에 불과한 언어를 언어활동 참여자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 설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연합체란, 연사체에 나열된 각 기호가 특정 의미를 가지는 유사하거나 대체 가능한 단어들의 묶음을 의미한다. 언어활동에 참여하는 개인은 특정 단어와 유사하거나 다른 의미를 지닌 기호의 묶음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좋아한다", "싫어한다", "사랑한다", "증오한다" 등의 단어는 "좋아한다"의 연합체이다. 이러한 기호의 묶음을 이해하는 언어 사용자들은 연사체 내에서 기호를 대체하여 새로운 의미를 가진 문장을 만들 수 있다. 연사체와 연합체의 존재는 기표와 기의의 차이와 생성에 큰 역할을 한다. 연사체를 통해 특정한 단어의 배열이 완성되면, 연합체에 의해 단어의 교환이 가능해진다. “‘좋아한다’는 ‘사랑한다’로 대체될 수 있지만, ‘나’는 ‘좋아한다’와 교환될 수 없다.. 이와 같은 교환성과 비가환성으로 인해 차이를 나타낼 수 있는 단어는 제한되고, 이는 차이를 통한 의미 생성을 가능하게 한다.
통시적 연구와 공시적 연구
소쉬르는 언어 연구를 통시적 연구와 공시적 연구로 나누었고, 공시적 연구를 더 중요하게 여겼다.
통시적 연구란, 언어의 역사를 추적하며, 언어가 시간에 따라 어떤 변화를 겪었고 어떤 변천 과정을 통해 특정한 법칙이나 기호가 생겨났는지를 연구하는 것이다. 반면에 공시적 연구는 특정 시대에 존재하는 언어 법칙을 연구하며, 역사적 배경을 배제한다. 소쉬르는 Parole과 Langue의 차이를 언급하며 언어의 본질에 대한 설명을 기준으로 공시적 연구의 우월성을 설명했다. 통시적으로 연구되는 것들은 일시적이고 예외적인 현상에 불과하며, 이러한 현상들은 언어의 본질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영어에 묵음이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특정 예외 현상을 설명하지만, 영어 자체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는다. 또한, 통시적 연구는 결국 공시적 연구에 수렴된다. 언어의 특이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언어의 본질과의 차이를 설명해야 하기 때문에, 공시적 연구를 통해서만 언어의 특성을 설명할 수 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소쉬르는 체스의 예시를 사용한다.
체스에서 말이 현재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과정, 특정한 소재로 제작된 이유를 연구해도 체스라는 게임 자체를 설명하지 못한다. 체스는 두 사람 간의 게임 규칙 체계를 통해서만 그 본질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공시적 연구가 더 중요하다. 그러나 소쉬르는 통시적 연구를 완전히 배제하지 않았다. 그는 통시적 연구에서 다루는 예외 상황이 공시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두 연구 모두 중요하다고 보았다.
소쉬르의 일반 언어학 강의의 의의
소쉬르의 일반 언어학 강의는 구조주의의 문을 열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서양 철학사, 특히 근대 프랑스에서 구조주의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에 대한 의문이 커진 가운데, 구조주의 철학은 인간의 비합리성을 설명하는 새로운 틀이 되었다.
또한, 소쉬르의 언어학 이론은 인간과 언어의 관계에 대한 전통적인 사고를 뒤집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소쉬르는 우리의 언어와 사고가 자연의 본질을 탐구할 수 있는 도구가 아니라, 사회적, 역사적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는 기존의 철학적 사고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개념이다.
이로부터 언어 결정론이라는 새로운 사고가 생겨났다. 언어 결정론이란 사람의 생각이 언어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사람의 생각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어에서 다리는 여성 명사로 표현되며 독일어에서는 남성 명사로 표현된다. 프랑스 사람들은 금문교를 묘사할 때 "아름답다", "우아하다" 등의 여성적 표현을 주로 사용하지만, 독일 사람들은 "웅장하다", "멋있다" 등의 남성적 표현을 더 자주 사용한다. 이는 언어 체계에 의해 특정 대상의 특징이 결정되고, 그것이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또한, 눈을 표현하는 단어가 한국어에는 10개도 안 되지만, 에스키모인들은 50개 이상의 눈을 구별할 수 있다는 점도 언어 결정론을 뒷받침하는 사례로 여겨진다. 조지 오웰은 그의 소설 1984에서 언어 결정론을 설명한다. 1984에서 정부는 특정 단어를 없애면 사람들의 생각도 제한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실제로 특정 단어를 없애는 정책을 펼친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존재한다. 스티븐 핑커는 그의 저서 언어 본능에서 언어의 진화론적 특성을 설명하며, 인간은 언어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인간이 보편적 사고 능력을 가지고 있어 언어가 표현하지 않는 개념도 생각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의 뇌는 언어와 독립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특정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도, 그 개념을 머릿속에서 구성하고 떠올릴 수 있다. 둘째로, 우리는 기존 언어 체계에 얽매이지 않고 창의적으로 사고할 수 있다. 새로운 제품이 만들어지거나 새로운 현상이 발생할 때, 사회는 이를 표현하기 위한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낸다. "스마트폰", "컴퓨터" 등이 이러한 예이다. 그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피진어와 크리올어를 예로 든다. 피진어는 서로 다른 언어 체계를 가진 사람들이 간단한 문법과 단어를 조합해 새로운 의사소통 수단으로 만든 언어이며, 크리올어는 피진어를 배운 세대가 자연스럽게 더 복잡하고 정교한 언어로 발전시킨 것이다. 핑커는 이러한 사례를 통해 인간은 언어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언어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나는 언어 결정론이 절대적이지는 않지만, 언어가 사람의 사고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스티븐 핑커의 주장은 언어를 진화론적 입장에서 바라보며, 언어 변화는 절대적 사회적 요구가 있을 때만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소쉬르는 언어가 역사적, 사회적 체계 속에서 형성되었으며 언어는 기호학적 특성상 사회적 약속 아래에서만 유효하다고 보았다. 만약 언어가 사회적 체계로 형성되었다면, 언어 변형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생기기 어렵다. 왜냐하면 언어는 특정 사회적 어려움이 커다란 변화를 초래할 때만 변화가 촉진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어는 변화할 수 있으나, 쉬운 일이 아니며, 우리의 사고는 과거로 인해 일정 부분 제한된다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소쉬르의 자의성 개념과 구조주의는 인간 이성에 대한 맹신을 비판하는 지성적 반론이었다. 1, 2차 세계대전은 이성과 합리성에 대한 의구심을 키웠고, 구조주의는 그러한 의문에 대한 반응이었다. 인간의 합리성이 우리에게 약속된 미래로 이끌 것이라는 자만심은 구조주의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제 우리는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맹목적인 믿음보다는 우리의 발자취와 행동을 면밀히 검토하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한 시기이다. 반항하는 인간에서 알베르 카뮈는 맹목적인 결과를 위해 달려가는 인류의 모든 행동을 비판했다. 그는 "어떠한 목표도 어린아이의 죽음을 정당화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합리성을 따르기에 모든 희생을 감수하고 목표를 달성하려 하기보다는, 우리의 행동과 사고는 언제든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하며,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는 사고가 더욱 인간적이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