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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국의 가난은 문화 탓일까? 산업혁명을 다시 읽는다

산업혁명은 인류 역사상 가장 중대한 사건 중 하나다. 인간이 자연의 섭리를 극복하고 지금의 번영을 이루게 된 가장 결정적인 계기였다. 프로메테우스가 인류에게 불을 가져다준 신화처럼, 산업혁명은 인간에게 새로운 힘을 부여했다. 하지만, 인류의 삶을 송두리 채 바꾸어 놓은 가장 중요한 사건인 “산업혁명”의 발생원인에 대해서 우리는 확실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왜 “산업 혁명”이 1800년에 영국에서 일어났는지 여러 다양한 가설과 주장이 존재하지만 어느 것도 확실한 답을 내리지 못한다는 것이 그레고리 클라크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왜 “산업혁명”의 발생 원인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 중요할까?? “산업혁명”의 원인을 알 수 있다면 “산업혁명”의 달콤한 열매를 같이 누리지 못하고 있는 빈국의 발전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열쇠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레고리 클라크는 “맬서스, 산업혁명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신세계”를 3가지 챕터로 나누어 “산업혁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첫 번째 챕터는 맬서스 트랩의 영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고

두 번째 챕터는 산업혁명에 대해

마지막으로 대분기 즉 산업혁명 이후에 경제발전이 소수의 나라에 집중되는 원인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첫 번째 챕터인 맬서스 트랩은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 사회는 맬서스의 악령이 인류를 지배하고 있었다. 맬서스는 인구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생산단위의 산출량이 줄어들기 때문에 인구 증가는 인류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그레고리 클라크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 맬서스의 악령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맬서스 트랩에 갇혀있던 인류에게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부정적인 사건들은 사실 축복이 되었다. 예를 들어, 유럽에서 발생한 흑사병이 유럽의 절대적 인구수를 줄여 종래에는 유럽인구의 삶의 질의 향상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줄어든 인구는 토지단위당 생산량의 향상을 가져왔고 이는 살아남은 개인의 영양 및 임금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또한, 1601년에 영국에서 시행된 구빈법은 영국의 인구를 증가시켜 정책의 의도와는 다르게 영국시민들의 삶의 질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맬서스 트렙에 갇힌 인류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벽에 갇혀있는 상황이었고 자연의 거대한 힘 앞에 인류는 무기력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레고리 클라크는 맬서스 트랩에서 인류를 구원한 사건이 “산업혁명”이라고

주장한다. “산업혁명”의 시기에는 인구의 증가와 단위당 생산량의 증가가 동시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지금의 번영을 이루어 낼 수 있었다.


두 번째 챕터는 “산업혁명”이 1800년대 영국에서 이루어진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레고리 클라크는 이전에 통용되어 오던 여러 가지 가설들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첫째, 산업혁명이 개인의 능력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제도에서 비롯되었다는 시각에 대한 비판이다. 그레고리 클라크는 산업혁명 이전에 영국은 이미 낮은 세금, 정부 지출의 제한, 기업의 민영화 조장, 자유로운 제품 및 자본 시장,

재산권, 사회적 이동성 등이 보장되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산업혁명은 유인동기의 출현으로 비롯되었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고 한다. 또한, 산업혁명 당시에도 기술의 보유자들 특히 방직기 관련 기술을 가진 사람들의 특허권을 보호해 주는 제도가 영국에는 없었고 그 때문에 오히려 기술개발자들이 부자가 되는 경우는 드물다고 했다. 그리고 그레고리 클라크는 영국에서 발생한 명예혁명 훨씬 이전에 영국은 맬서스 트랩을 벗어나고 있었기 때문에 명예혁명이 촉발한 제도적 장치가 산업혁명의 원인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둘째, 산업혁명은 기술발전으로 비롯되었다는 시각에 대한 비판이다. 그에 따르면, 기술발전이 산업혁명에서 중요한 역할은 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만으로는 산업혁명을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산업혁명 이전에도 기술 그 자체는 서서히 발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술은 영국을 제외한 타국에서도 발전했고 1800년 전에도 기술은 발전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술발전에 의한 설명은 왜 1800년대에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났는지? 에 대한 설명은 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그레고리 클라크가 생각하는 산업혁명의 원인은 무엇인가?? 그레고리 클라크는 인구학적 변화와 문화적 변화에서 산업혁명의 원인을 찾는다. 특히 그레고리 클라크는 산업혁명은 1800년대에 갑자기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매우 긴 시간 동안, 인구변화와 기술의 발전이 쌓이다가 1800년대에 영국에서 폭발적으로 인구가 성장하면서 생긴 사건이라고 주장한다. 먼저, 그레고리 클라크는 1800년 이전에 많은 기술이 발전되었지만, 이러한 기술이 산업혁명은 일으키지 못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그 시기에 발명된 기술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았기 때문에 폭발적인 경제성장을 이끌어 내지 못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인쇄술은 책을 생산하고 지식을 전파하는데 매우 큰 작용을 하지만, 문제는 책이 나라 전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계속해서 이러한 기술의 발전이 축적되고 있었고 이러한 기술의 발전은 1인당 생산량 또한 상승시키고 있었다고 기술한다.


이러한 기술의 축적이 더욱 용이해진 이유는 사회전반에 경제성장에 필요한 문화를 가진 인구가 늘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맬서스 트랩 시기에, 부자들은 더 많은 자식을 낳았지만, 중산층과 저소득층은 경제적인 문제로 많은 아이를 가지지 않았다. 따라서, 맬서스 트랩의 작동으로 인구가 줄어들면서 본래 고소득층의 아이들이 더 많아지고 이들이 중산층의 인구를 대체하게 되었고 이는 사회전반적으로 고소득층의 문화를 가진 인구가 주를 이루게 되었다. 이러한 인구학적 변화가 종전 기술 발전과 함께 사회변화를 이룩했다는 것이다.


영국과 비슷한 경제제도와 경제구조를 가지던 일본과 중국은 고소득층의 자녀들이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인구를 대체하는 현상이 발생하지 않았고 이러한 문화의 차이가 산업 혁명의 발생을 막았다고 주장한다. 또한, 1800년대에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난 이유는 그 시기에 영국의 농업생산력은 늘어났고, 식량을 미국으로부터 수입해 올 수 있었기 때문에 (미국은 계속해서 새로운 대륙으로 확장하고 있어 맬서스 트랩에 얽매이지 않았다), 기술을 이용하는 인구의 숫자가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폭발적 인구 성장으로 국가 경제의 성장으로 이어졌다. 이는 산업혁명 이후에 영국의 경제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지만, 일인당 생산성은 완만하고 성장하는 것이 그 증거라고 주장한다.


마지막 챕터는 왜 빈국이 산업혁명의 혜택을 받지 못했는지에 대해 설명해 준다. 국가 발전을 위해서는 자본에 대한 생산력과 노동자의 생산성이 성장해야 한다. 산업혁명 이후 자유로운 자본시장의 확산으로 인해 자본과 기술의 이동이 자유로웠다. 실제로 빈국과 대영제국에 속한 많은 식민지들이 자본과 기술의 유입을 경험했지만, 폭발적 경제성장은 경험하지 못했다. 그 이유를 그레고리 클라크는 문화에서 찾고 있다. 빈국은 자본과 기술이 도입된 후에도 나태한 노동자들 때문에 경제성장이 더뎠고 이는 악순환을 만들어 냈다. 자본은 성장을 쫓고 성장은 효율적인 국가에서 일어난다. 빈국은 비효율적인 국가가 되었고 이는 자본으로부터 멀어지는 결과를 낳았기에, 시간이 지나면서 지금과 같은 차이를 발생시켰다는 것이다.


그레고리 클라크의 책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첫째, 인간은 과연 맬서스의 트랩으로 대표되는 대자연의 함정에서 완전히 벗어났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명확히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자연의 함정에 아직도 갇혀있고 오히려 자연의 함정이 우리를 맬서스 트랩으로 다시 밀어 넣고 있다. 우리는 지구온난화라는 거대한 자연적 현상에 직면하고 실제로 지구온난화는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맬서스 트랩은 인구가 문제였다면, 지금의 문제는 풍요로움을 누리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능이 문제이다. 풍요로움을 추구하기 위해 우리는 더 많은 자원을 소비하고 있고 이는 지구온난화를 일으킨다. 이는 인구의 증가가 인류에게 위협으로 다가가는 맬서스 트랩과 묘하게 닮아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한번 산업혁명과 같은 도약을 통해 자연의 함정에서 탈출해야 하는가?? 아니면 자연의 함정을 인정하고 풍요로움을 덜 추구해야 하는가?? 전자를 추구하는 쪽은 그린에너지,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시로 다시 한번 도약을 꿈꾸고 있다. 하지만 후자를 추구하는 쪽은 무엇이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가? 에 대한 심각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물질적 풍요가 인간을 더욱 불행하게 만든다면 함정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함정을 안락한 환경으로 꾸미는데 더욱 힘써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물질적 발전보다 정신적인 발전을 꿈꾸고 있다.


둘째, 문화적 차이가 빈국의 가난의 원인이라면 빈국의 가난에 대한 해결책은 과연 무엇인가??

둘째, 빈국의 가난을 해결하기 위해 IMF와 World Bank 등은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그레고리 클라크의 생각이 맞다면 단순히 제도나 기술의 보급은 빈국 가난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2000년대 초반까지도 아프리카 나라들에 민주주의가 정착되고 있다며 다시 한번 민주주의의 승리를 외쳤지만, 지금의 현실은 반대가 돼 가고 있다. 민주주의 후퇴에 대해 여러 가지 주장이 있지만, 경제발전의 후퇴가 정치발전의 후퇴의 원인이라는 주장도 존재한다. 따라서,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고 경제발전을 이룩해야 한다.


셋째, 문화적 차이가 빈국의 가난이라는 narrative는 빈국에 대한 인종차별이 더욱 심해지는 결과를 낳지 않을까?

만약 그렇다면, 이게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숨겨야 하는 사실일까?? 아니면 드러내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가?

만약 그레고리 클라크의 주장이 맞다면 지금 빈국이 가난한 이유는 전체주의 때문이 아니라 빈국의 국민들 자신들이 초래한 문제이다. 이러한 narrative는 빈국에 대한 원조를 철회하고 빈국의 국민들에 대한 차별이 정당화될 수 있다. 만약, 빈국 사람들의 문화가 문제라면 우리는 왜 그들의 이민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만약 전체주의가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면 우리는 왜 그들을 도와야 하는가?? 모든 문제 해결의 시작은 정확한 원인파악이다. 하지만 정확한 원인 파악이 문제해결로 가는 정확한 길을 제시하지 않고 오히려 편견과 차별의 도화선이 되기도 한다. 그레고리 클라크의 주장처럼 문화적 요인이 문제의 원인이라고 하더라도 편견과 차별의 길로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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