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율리시스를 읽고(12장 ~ 17장) - 2부

by 사회철학에서 묻다

12장 사이클롭스

블룸은 술집에서 국수주의자와 다른 친구들을 만난다. 블룸은 술을 마시지 않기에 동석하고 싶어 하지 않지만, 동석하지 않고 술을 거부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고 판단해 술을 마신다. 술을 마시는 도중, 블룸은 국수주의자와 시비가 붙고 큰 말다툼을 한다. 말다툼을 하다 블룸은 술집을 나서는데, 화가 난 국수주의자는 블룸에게 단단한 비스킷 통을 던지려고 한다. 비스킷 통에 맞으면 크게 부상을 당할 수도 있었지만, 국수주의자에 눈에 햇빛이 내리고 비스킷 통은 빗나간다.


12장 분석

a. 12장의 제목 사이클롭스: 사이클롭스는 오디세우스에 나오는 외눈박이 괴물이다. 외눈박이 괴물은 국수주의자를 뜻한다. 눈이 하나밖에 없는 괴물은 여러 가지 입장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편협한 국수주의자를 뜻한다. 국수주의자는 다양성은 없고 오직 자기의 의견만이 올바른 의견이 되기 때문이다. 오디세우스가 사이클롭스로부터 탈출에 성공한 방법은 괴물에 대항하는 폭력이 아니라, 꾀만 말솜씨였다. 괴물에게 자기의 이름을 “노바디”라고 알려주고, 다른 괴물이 누가 너의 눈을 찔렀어?라고 물었을 때, “노바디”로 대답하게 함으로써 괴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따라서, 제목은 국수주의자의 편협함 그리고 국수주의자와의 대결하는 방법을 이야기하려고 사이클롭스로 이름을 지은 것이다.


b. 과장된 챕터: 12장은 과장으로 시작해서 과장으로 끝난다. 12장이 과장적 표현이 주를 이루는 이유는 우리가 과장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현실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 같다. 뿐만 아니라, 블룸은 예수로 묘사하는 마지막 장면은 예수 즉 구원자의 재림은 과장이 아니라 현실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율리시스에서 민족의 영웅이 될 법한 두뇌를 가진 스티븐이 아니라,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블룸이야 말로 아일랜드를 구할 예수라는 것이다.


c. 인종차별주의: 블룸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인종차별을 당한다. 작가는 자기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사람을 모욕하는 국수주의자 그리고 거기에 동조하는 아일랜드인들이 아일랜드를 위기에 빠뜨렸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이는 영국을 비난하지만, 그들과 같은 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런 것들이 아일랜드의 발전을 저해한 다는 것을 보여준다.


d. 술: 블룸은 보는 방향에 따라 이상적 아버지 혹은 이상적 어른으로 그려진다. 특히 블룸은 술을 마시지 않고 자기가 할 수 있는 한에서 최선을 다해서 하루를 살아간다. 아일랜드는 술을 많이 소비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작가는 블룸과 스티븐의 아버지를 대조하면서 술이 왜 아일랜드를 병들게 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13장 나우시카

술집을 나선 블룸은 정체 없이 걷다가 해변에 도착한다. 해변에서 그는 거티를 만난다. 다리가 불편하지만, 전형적인 아일랜드 미인은 거티는 블룸에게 호감을 느낀다. 블룸은 거티에게 성적인 매력을 느끼고 불꽃놀이를 보면서 자위행위를 한다. 자위행위를 하고 나서 블룸은 어린 소녀에게 몹쓸 짓을 한 것 같아 죄책감을 느낀다. 그리고 자신의 아내를 떠올린다.


13장 분석

a. 제목: 나우시카는 오디세우스를 도와주는 조력자 역할을 한다. 오디세우스에서 나우시카와 그는 육체적 관계를 맺지 않는다. 반면에, 율리시스에서 거티는 블룸을 유혹하고 블룸은 큰 죄책감을 느끼는 자위행위를 하게 된다.


a-1) 여성의 행동은 남성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거티가 블룸을 의도적으로 유혹한 것이 아니라, 당시 사회가 요구하는 행동을 했을 뿐이고 이에 블룸이 반응한 것이다. 이는 여성들이 자율성이 시대의 체제에 억압당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블룸이 다른 아일랜드인들에 비해 더 나은 점은 본능에 굴복한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런 죄책감은 아일랜드가 바뀔 수 있는 희망의 끈이 될 수 있다.


a-2) 블룸은 아들을 잃었다는 죄책감 때문에 아내와 잠자리를 가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성적 욕망은 그의 무의식에 억눌려있고 이는 언제든지 분출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억압된 욕망이 돌아오는 방향은 순수하거나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따라서, 가톨릭 교리에 의해 억압된 당시 아일랜드 사회의 문제를 보여주고 있다.


b. 거티에 대한 묘사가 전형적인 여성잡지를 따르는 것은 여성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특히 거티를 절름발이로 표현한 이유는 이처럼 사회체제에 순응하는 여성들은 절름발이처럼, 타인과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절름발이인 거티가 동생들을 돌봐야 함은 사회가 여성들에게 과도한 짐을 지우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c. 불꽃놀이: 불꽃놀이는 욕망이란, 한없이 타오르지만 부질없음을 보여준다. 욕망에 충실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들으라는 작가의 간절한 소망을 보여준다. 블룸이 자위행위가 끝나고 아내를 생각하며 죄책감에 시달리는 것처럼, 진정한 자유란 본능에서 벗어나 자기의 내면의 소리를 듣는 것임을 알려주고 있다.


14장: 태양신과 황소들

해변을 떠난 블룸은 퓨어포이 부인이 있는 산부인과로 향한다. 산부인과에서 그는 퓨어포이 부인이 곧 출산한다는 소식을 듣고 술을 마시고 있는 스티븐과 그의 일행을 만난다. 스티븐과 그의 일행은 잔뜩 취해있었다. 그들과 블룸은 출산에 대해 여러 가지 의견을 주고받는다. 잔뜩 취한 스티븐은 예전에 죽은 자기의 아들을 생각하며 측은하게 바라본다. 그러던 도중 퓨어포이 부인은 출산을 하고 블룸과 스티븐 일행은 다시 술을 마시기 위해 밖으로 뛰쳐나온다.


14장 분석

a. 제목: 오디세우스의 일행은 신들의 황소를 건드린 죄로 모두 죽고 오디세우스만 집으로 향한다. 이는 금기를 어긴 인간의 어리석음과 그에 따른 책임을 보여준다. 14장에서는 금기를 어긴 블룸이라는 점에서 유사하지만, 블룸에게 벌하는 것은 신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는 점에서 다르다. 인문주의, 인간중심주의 철학으로 인해 신은 개인으로 대체되었고 인간의 도덕성을 벌할 수 있는 것은 제도가 아니라 개인임을 보여준다.


b. 출산과 여성: 출산과 여성에 대해 블룸과 스티븐 일행은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특히 어머니와 아이가 모두 위험에 빠졌을 때, 누구를 구해야 하는지에서 설전은 절정에 이른다. 블룸은 율리시스 전체를 관통하는 생각, 즉 여성의 권리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여성은 도구나 애를 낳는 기계가 아니라, 인간의 종을 위해 희생하는 존재로 생각되고 그녀들을 보호하는 것이 아일랜드를 구할 수 있다는 제임스 조이스의 생각을 더욱 강하게 내비친다. 블룸은 신이 사라진 시대에 스스로 도덕의 기준이 되는 인물로, 고통받는 여성의 입장을 상상하고 배려하며, 자기 내면의 윤리적 목소리를 따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c. 스티븐: 블룸은 스티븐은 매우 측은하게 바라본다. 스티븐은 시대의 천재로 그려지는데, 어떻게 블룸이 스티븐의 멘토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대답이 여기서 마침내 나온다. 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냉철한 이성뿐만 아니라 인간을 그 자체로 이해해 주고 보듬어 줄 수 있는 다른 인간이라는 것이다. 블룸은 스티븐의 과거를 이해하고 측은하게 여기면서 그를 안아주리라 결심한다. 이는 블룸의 배경이 아니라 그의 마음과 인간성이 중요함을 보여준다.


d. 디오니소스: 그리스 시대, 바쿠스 신을 섬기는 무리들은 인간은 본능적으로 행동할 때 더욱 성스러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그들을 억압하는 체제를 거부하고 술 마시고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것으로 체제에 반항했다. 스티븐 일행이 산부인과에서 술을 마시는 행위는 바쿠스 신을 모시는 무리를 보여주는 것 같아. 성스러운 출산을 더욱 성스럽게 만드는 것은 아일랜드의 억압적 풍습이 아니라 본능에 따라 진정으로 축하해 주는 것이라고 보인다.


15장: 키르케

산부인과를 떠난 블룸과 스티븐 일행은 매춘굴로 향한다. 매춘굴로 향하는 도중, 스티븐은 여러 가지 환상을 겪는데 법정에도 죄인으로 불려 갔다가 국왕으로 변한다. 환상에서 돌아가신 부모님을 만나고 자신의 변태적 성향을 드러내는 꿈도 꾼다. 많은 환상을 경험하고 매춘굴에 들어선 블룸은 스티븐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술집주인을 보고 스티븐을 구해준다. 밖으로 나온 블룸과 스티븐은 영국군인들 그리고 아일랜드 경찰과 시비가 붙지만, 블룸의 지인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블룸은 스티븐을 보호하겠다고 다짐하고 카페로 향한다.


15장 분석

a. 환상: 프로이트에 의하면, 사람의 자아는 원초아, 자아 그리고 초자아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자아는 무결한 도덕성을 추구하는 초자아와 욕망을 추구하는 원초아와 균형을 이루면서 살아간다. 욕망 그리고 사회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기억들은 원초아에 저장되고 이는 꿈 혹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순간 나타난다. 이런 의미에서 블룸과 스티븐이 겪는 환상을 분석하면 이해할 수 있다.


b. 재판에 서는 블룸: 블룸은 몰리와 성관계를 맺지 않고 여기저기 다른 여성들에게 자신의 성욕을 풀려고 하는 욕망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러한 부끄러움의 정서가 재판에서 처벌받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c. 왕이 되는 블룸: 블룸은 몰리가 바람피우는 상대가 돈과 권력이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다. 또한 신문사에서 그리고 길거리에서 자기가 받는 대우가 형편없다고 하지만, 자신은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이에 그는 꿈에서 다양한 판결을 내리고 정책을 만드는 존경받는 왕이 된다.


d. 죽은 아들을 만나는 블룸: 하지만, 블룸의 마음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죽은 아들에 대한 사랑이다. 죽은 아들이 11살쯤 되었을 모습이 화상에 나타나고 이는 죽은 아들에게 주지 못한 사랑과 보호를 스티븐에게 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e. 스티븐과 어머니: 스티븐은 어머니의 임종 시에 어머니를 위해 기도하지 않아, 어머니 살해자라는 무시무시한 별명을 얻었다. 스티븐은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지만, 그의 내면에서 느끼는 죄책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스티븐을 더욱 괴롭히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아니라 어머니가 자신을 미워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에 그는 어머니에게 사랑한다고 말해달라고 애원하지만 거절당한다. 이 또한 스티븐의 생각을 반영한다. 스티븐은 어머니를 사랑하지만, 진정으로 종교를 믿지 않으면서 기도하는 것은 사랑하는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이에 기도를 거부했다. 또한, 이는 단순한 사랑이 아니라 부모가 자식을 단독자로 세우고 세상에 나아가게 하는 의무를 다하게 함이다. 그는 신으로부터 해방되고 내가 되는 행동을 통해 부모를 더욱 부모스럽게 만들려는 시도를 한 것이다. 스티븐의 어머니도 스티븐을 사랑하지만, 기도를 해주지 않아 종교적으로 다름을 인식했고 이에 사랑한다는 말은 하지 않고 스티븐의 잘 살았으면 한다고 말한다.



16장: 에우마이우스

스티븐과 블룸이 역마차의 오두막이라는 카페로 향한다. 블룸은 스티븐의 낭비와 음주 그리고 주변 친구의 부정적 영향에 대해 이야기한다. 카페에 도착한 스티븐과 블룸은 늙은 선원과 이야기를 한다. 늙은 선원은 이제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지만, “그녀의 아내가 외도하고 있지는 않을까?” 걱정한다. 여러 가지 대화하던 도중, 스티븐은 블룸에게 몰리의 사진을 보여주고 집으로 같이 향한다.


16장 분석

a. 스티븐의 “불행을 찾기 위해서”: 스티븐은 어머니를 잃은 슬픔과 가족을 버린 자신의 모습 그리고 아일랜드의 상황에 한탄한다. 그는 혼자만 행복한 것은 견딜 수가 없다. 위선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블룸은 “왜 그렇게 돈을 낭비하고 음주를 하는가?”라는 스티븐의 질문에 “불행을 찾기 위해서”라고 이야기한다. 여기에는 2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첫째, “혼자 행복한 것은 견딜 수 없는 수치”라는 의미 둘째, “불행으로 자신을 망가뜨리면 새로운 존재로 태어날 수 있다”라는 의미다. 이에 블룸은 두 가지 모두에 답을 준다. 첫째 블룸은 스티븐의 새로운 아버지 모델로 스티븐이 모든 불행을 짊어지기에는 아직 어리다고 설득하면서 새로운 탄생은 파괴나 망가짐이 아니라 좋은 사람들과의 연대라고 한다.


b. 물에 넣으면 펼쳐지는 알약: 선원이 이야기하는 물에 넣으면 펼쳐지는 알약은 스티븐의 미래를 이야기한다. 스티븐 또한 아직 제대로 된 물을 만나지 못한 알약으로 엄청난 미래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다만, 제대로 된 어른을 만나지 못했을 뿐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이는 아일랜드와 그 안에서 고통받는 아일랜드 시민을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한다. 아일랜드 시민들도 억압적인 종교와 정부라는 잘못된 물에 떠다니고 있을 뿐, 제대로 된 기반을 만나면 어떤 나라보다 더 빛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c. 토마스 아퀴나스의 말: 스티븐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말을 인용한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타락은 모순이 있는 곳에서만 발견될 수 있다. 인간은 영혼이 없는 순수한 물질이라 신에 의해 파괴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타락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는 제임스 조이스의 종교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드러낸다. 종교는 현실에서의 삶을 삶대로 인식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이 나 성경 같은 형이상학적인 존재로 삶을 해석하려고 한다. 이는 이미 아일랜드의 삶이 망가져 있는데 아일랜드 종교가 억압적인 교리만을 설파하려고 하는데에 대한 비판이다. 인간의 영혼은 파괴될 수 없다고 하기에는 아일랜드가 직면한 세상은 너무 우울하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말이 옳다면, 신은 이미 아일랜드를 버린 것이거나 혹은 종교의 말이 틀렸음을 암시한다.


d. 내가 아일랜드에 속해있는 것이 아니라 아일랜드가 나의 마음속에 속해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와 대조적으로 삶의 철학이 내포된 문장이다. 아일랜드가 나에게 속해있다는 것은 나의 인식은 아일랜드인으로서의 역사와 시간에 의해 결정된다는 의식의 지평을 이야기한다. 제임스 조이스는 이를 통해, 아일랜드인은 문제에서 도피할 수 없고 새로운 아일랜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17장 이타카

스티븐과 블룸은 블룸의 집으로 향하면서 여러 대화를 나눈다. 그들은 대화를 통해 공통점과 차이점을 확인한다. 상복을 입은 블룸은 열쇠를 가지고 있지 않아 자기 집 담을 넘고 들어간다. 블룸은 문을 열고 스티븐을 집으로 들인다. 블룸은 스티븐에게 코코아를 권하고 편하게 쉴 수 있게 배려한다. 여러 대화를 하던 중, 블룸은 스티븐에게 집에서 같이 지내자고 말하지만, 스티븐은 이를 거절한다. 블룸은 스티븐에게 남은 돈을 돌려주고 계속해서 교류할 것을 약속한다. 스티븐과 헤어진 블룸은 집으로 돌아온다. 블룸은 집에 남아있는 보일런의 흔적을 정리한다.


17장 분석

a. 역사는 영웅이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보통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것: 역사의 유물론적 관점과 관념적 관점의 차이를 보여주는 문장이다. 역사의 관념적 관점은 영웅의 생각이 영웅을 행동하게 만들고 그들의 행동이 역사를 이끌어 간다고 말한다. 반면에, 역사는 사회의 상황이 사람들의 생각을 형성한다고 말한다. 사회 상황에 의해 형성된 생각은 특정 사람을 활동하게 만들고 그것이 역사를 만들어 간다. 보통사람들이 만들어 간다는 것은, 역사적 행동을 하게 만든 사회상황을 살고 고통받고 생각하는 보통사람들의 그 삶이 없이는 어떤 변화도 없다는 것을 말한다. 이는 주인이 아니라 노예가 역사변화의 주인이라는 헤겔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과 궤를 같이 한다. 이 책을 통해서 평범한 스티븐이 주인공이 되고 당대의 천재라는 블룸의 멘토가 되는 것은 제임스 조이스의 생각을 반영하는 것이다.


b. 스티븐의 노래: 스티븐은 아이가 공을 가지고 놀다가 어느 유태인의 유리창을 깨뜨렸는데, 녹색옷을 입은 유태인의 딸이 아이의 목을 잘라버렸다는 내용의 노래를 부른다. 이 노래가 상징하는 바는, 아일랜드를 좀 먹는 민족주의 그리고 종교와 같은 아이 같은 사상은 아일랜드 사회가 억압하는 여성과 유태인을 받아들임으로써 없앨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남을 무시하고 편협한 아이와도 같은 사상의 목을 쳐서 없애는 것이 새로운 아일랜드를 만드는 길이 되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론

드디어 율리시스 17장까지 리뷰가 끝이 났다. 소설 구조의 난해함, 다양한 철학적 내용 그리고 의식의 흐름은 율리시스를 읽기 어렵게 만들었다. 하지만, 롤랑 바르트가 작가의 죽음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읽기 어려운 책은 살아 있다. 생생하게 살아 있는 그 텍스트는 다른 전이해를 가진 독자들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간다. 이는 독서란 과거를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독서의 기본에 충실한 것이다. 우리는 율리시스를 통해 다양한 해석을 한다. 제임스 조이스는 우리의 독서에서 죽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나름의 흐름으로 율리시스를 이해한다. 책을 덮는다는 행위는 고전이 주는 선물이다. 책을 덮고 책으로부터 멀리 떨어지면서 우리는 작가가 아니라 독자로 그리고 나만의 자아를 통해 책을 해석한다. 그리고 새로운 해석은 우리를 살찌우는 것이다. 이런 행동은 죽었던 제임스 조이스를 다시 살아나게 만든다. 제임스 조이스는 율리시스를 통해 영원히 살아남는다. 독자 앞에서 죽고 책을 덮는 순간 다시 살아난다. 그리고 우리는 율리시스를 통해 세상을 새로 이해할 수 있다. 율리시스를 다 이해했다고 할 수 없다. 아니 절대 다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5년 뒤 10년 뒤 다시 율리시스를 들었을 때 새로운 지평을 통해 나의 자아에 더욱 가까운 이해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도전과 매혹사이 율리시스 - 1부(1장 ~ 11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