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생명과 자유 사이에서: 금지보다 필요한 건 변화

by 사회철학에서 묻다

서론: 논쟁의 중심에 선 낙태 문제

낙태는 개인의 자유와 생명의 가치가 충돌하는 대표적인 윤리적, 사회적 쟁점이다. 여성의 신체 결정권, 태아의 생명권, 사회의 책임 사이에서 우리는 어느 하나를 쉽게 선택할 수 없다. 오늘날 낙태를 둘러싼 논쟁은 단순한 법적 허용 여부를 넘어,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지에 대한 깊은 물음을 던진다. 이 글은 낙태에 대한 찬반 양쪽의 입장을 구조적으로 정리하고, 각각의 논거와 한계를 살펴보며 독자 스스로 균형 잡힌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


낙태 찬성 논거

1) 여성의 신체 결정권은 존중받아야 한다

낙태를 찬성하는 가장 강력한 근거 중 하나는 여성의 신체 결정권이다. 개인은 자신의 신체를 통제할 권리를 가지며, 이는 자유 사회의 핵심 가치이기도 하다. 이 원칙은 대부분의 경우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만, 낙태의 경우에는 태아라는 제삼자의 존재가 개입되면서 논란이 발생한다. 자유는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에서 보장된다는 ‘해악 원칙(harm principle)’을 고려할 때, 낙태는 태아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이므로 예외적 고려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그러나 법적으로 태아는 완전한 시민권을 부여받지 않는다. 임산부가 술이나 담배를 섭취하는 것이 법적으로 금지되지 않는 것처럼, 사회는 산모의 권리를 우선시한다. 특히 강간이나 산모의 생명이 위협받는 경우, 대부분의 국가들은 산모에게 낙태를 허용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법이 신체적 피해뿐 아니라 정신적 피해도 동등하게 취급한다는 사실이다. 언어적 폭력이나 협박이 형법상 처벌 대상이 되는 이유는 정신적 위해 또한 개인의 존엄성을 침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낙태로 인해 미래의 삶이 좌절되고, 정신적으로 극심한 고통을 받는 여성에게도 그 선택권은 보장되어야 한다.


2) 태아는 산모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존재다

태아의 권리와 산모의 권리가 충돌할 때, 산모의 권리를 우선시해야 하는 이유는 태아가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한 가지 사고실험을 떠올려보자. 만약 어느 날 눈을 떴는데, 동의도 없이 당신의 몸에 어떤 생명체가 붙어 있고, 이 존재는 당신의 건강을 해치며 삶을 제한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 생명체가 장차 인간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당신이 그 존재를 제거할 권리조차 갖지 못한다면, 이는 부당하다. 이는 원치 않는 임신 상황과 본질적으로 유사하다. 산모는 임신을 명시적으로 동의하지 않았으며(이는 논의의 여지가 있으나), 태아는 산모의 몸에 의존하여 그녀의 현재와 미래에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산모에게 그 의존적 존재를 제거할 권리를 부여해야 하지 않겠는가?


3) 낙태 금지는 오히려 태아에게 더 큰 피해를 준다

낙태를 법적으로 금지해도 현실에서는 낙태가 계속 이루어진다. 그 이유는 금지가 낙태의 근본적 원인을 해결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낙인, 경력 단절에 대한 두려움, 경제적 어려움 등은 여전히 산모들을 절박한 선택으로 내몰고 있다. 낙태를 금지하더라도 많은 여성들은 불법적인 방식으로 낙태를 시도하게 되고, 이는 심각한 안전 문제를 초래한다.


첫째, 불법 시술은 충분한 상담과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합법적인 의료 환경에서는 의사와의 상담을 통해 낙태의 신체적·심리적 영향에 대해 충분히 숙고할 수 있다. 둘째, 불법 시술소는 기본적인 위생과 안전조차 보장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산모 사망 원인의 약 3분의 1이 불법 낙태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이는 산모뿐 아니라 태아에게도 해로운 결과를 낳는다.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시술 환경은 산모의 생명을 위협하며, 결과적으로 생명에 대한 존중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4) 낳기만 하면 끝이 아니다: 적절한 양육 환경의 부재

낙태는 결코 가벼운 결정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모가 낙태를 선택했다면, 그 결정은 극도로 절박한 상황 속에서 내려졌을 가능성이 높다. 낙태를 금지해 강제로 출산하게 만들 경우, 부모는 원하지 않는 아이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제공하기 어려울 수 있다. 특히 산모가 본인의 꿈과 삶을 포기해야 했다면, 그 자녀에 대한 정서적 결핍이나 방임이 나타날 수 있다. 더군다나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산모가 혼자 아이를 양육해야 할 경우, 아이는 적절한 보살핌을 받지 못할 위험에 노출된다. 아이의 권리를 생각한다면, 단지 ‘태어나게 하는 것’만이 답이 아님을 이해해야 한다.


5) 낙태를 줄이려면 ‘금지’가 아니라 ‘변화’가 필요하다

낙태는 사회적 문제이지 단지 개인의 윤리적 문제로 환원될 수 없다. 낙태를 줄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순한 법적 금지가 아니라, 여성들이 낙태를 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지원, 경력 단절에 대한 제도적 대책, 육아 인프라 확충 등이 병행되어야 한다. 정부가 이러한 사회적 기반을 마련한다면, 낙태를 허용하더라도 실제 낙태율은 낮아질 수 있다. 이는 여성의 선택을 보장하면서도 생명을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접근이다.


낙태 반대 입장

1) 국가는 생명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국가는 모든 국민의 권리를 보장해야 하는 존재이며, 그 가장 근본적인 권리는 바로 생명권이다. 생명이 없으면 자유도, 행복도, 권리도 존재할 수 없다. 그렇기에 생명이 다른 권리와 충돌할 때, 국가는 생명을 우선해야 한다. 낙태는 태아의 생명을 의도적으로 중단시키는 행위이며, 이는 단순히 여성의 선택 문제로 축소될 수 없다.


찬성 측은 태아가 법적으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생명으로 간주할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이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과학적으로도 태아가 언제부터 생명으로 간주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종교적 입장, 의학적 기준, 국가별 기준 모두 다르다. 이처럼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우리가 태아를 생명이 아니라고 단정하고 낙태를 허용할 경우, 실제로는 생명을 죽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둘째, 태아가 비록 아직 사람은 아닐지라도, 명백한 생명의 가능성을 가진 존재라는 점에서 도덕적 보호를 받아야 한다. 우리는 식물인간처럼 당장은 인지능력이 없더라도 미래에 회복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보호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태아도 생명의 가능성을 가진 존재로서 함부로 제거되어서는 안 된다.


2) 낙태는 진정한 자유의지에 기반한 선택이라 보기 어렵다

낙태는 여성의 자유로운 선택이라고 주장되지만, 실제로는 외부 환경에 의해 강요되는 경우가 많다. 여성들은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미래에 대한 불안, 사회적 낙인, 경제적 압박 등 다양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이로 인해 내린 결정이 과연 진정한 자유의지에 의한 것인지 의문이다.


또한 많은 여성들이 낙태 후에 심각한 심리적 고통을 겪는다. 죄책감, 상실감, 꿈에 나타나는 태아, 극심한 우울 등은 결코 드문 일이 아니다. 진정한 자유로운 선택이란, 잘못된 선택일 경우 이를 되돌릴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될 때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낙태는 한 번의 선택으로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너무도 큰 책임을 개인에게만 전가하는 위험한 결정일 수 있다.


결론: 선택을 가능하게 하되, 사회는 그 선택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낙태 문제는 단순한 찬반의 문제가 아니다. 여성의 권리를 보호하려는 입장과 생명의 가치를 우선하려는 입장은 모두 타당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낙태를 전면적으로 금지함으로써 여성을 위험에 빠뜨려서는 안 되며, 동시에 생명을 가볍게 여겨서도 안 된다. 따라서 해결의 핵심은 “선택권은 보장하되, 낙태를 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드는 데 있다.


정부는 제도적 장치를 통해 미혼모가 차별받지 않고 경력 단절 없이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책임이 있다. 또한 성교육과 피임 정보, 복지 시스템 등을 통해 원치 않는 임신 자체를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낙태는 윤리적 회색지대에 위치한 복합적 문제이기에, 우리 사회는 단순한 이분법이 아닌 숙의와 공감의 토대 위에서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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