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는 어떤 책인가? 제임스 조이스는 율리시스를 통해서 2가지 강력한 메세지를 던진다.
첫째, 아일랜드는 심각한 문제에 처해있다. 아일랜드를 구할 인물은 스티븐 같은 당대의 천재가 아니라 보통의 삶에서 최선을 다하는 블룸이다.
둘째, 사유하지 않는 인간은 죽은 인간이다. 문학은 인간을 사유하게 만든다. 세상에 정해진 답은 없다. 다양한 생각을 접하고 자신만의 생각을 만들어 내는 것이, 인간으로의 역할을 다 하는 것이다.
제임스 조이스가 살던 시대의 아일랜드는 위기의 시대였다. 영국의 지배하에서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아일랜드의 지식인들과 종교는 사람들을 옭아매고 억압했다. 이 시기에, 제임스 조이스는 어떤 사명을 느꼈을 것이다. 신에게 부여받은 재능을 통해 아일랜드를 고통으로부터 구하고 더 나은 세상을 제시하는 그런 사명말이다.
하지만, 율리시스를 읽다 보면 제임스 조이스를 닮은 스티븐 보다는 블룸이 제임스 조이스의 선택을 받았음이 명확해 보인다. 그렇다면 왜, 스티븐이 아니라 블룸이란 말인가? 그 누구도 쓸 수 없는 문학작품을 통해 세상에 영감과 감동을 주는 천재가 아니라, 아내의 외도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보통사람 블룸이 왜 아일랜드의 해답일까?
그 대답은 명확하다. 국가란, 삶의 총체이기 때문이다. 루소가 처음으로 선언한 “사회계약론”에 따르면, 시민은 국가에게 권한을 부여했고, 그 권한을 가지고 우리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 주는 존재다. 그리고 그 국가를 구성하는 것은 블룸과 같은 보통 사람,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다른 사람을 공감하는 그런 사람인 것이다. 그리고 블룸은 우리 시대의 진정한 어른으로 나타난다. 어려움에 처함 스티븐은 곤경으로부터 구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조언을 아끼지 않는 그런 진정한 어른말이다.
율리시스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우리 인생의 주인공은 우리다. 주변에서 세운 기준은 중요하지 않다. 사회적 성공, 명예, 부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나에게 주어진 삶을 사는 내가 주인공이다. 그리고 내가 나의 삶을 살 때만, 타인에게 공감할 수 있다.
블룸은 항상 우리 곁에 있다. 아침마다 눈을 비비면서 일어나 가족을 챙기고, 만원 버스에 몸을 맡긴다. 버스에서 다리가 불편한 할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직장에서도 회사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처럼 타인의 아픔에 마음을 쓰고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보통 사람들. 세상을 조금씩 나아지게 하는 건, 거창한 영웅이 아니라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그들이다. “율리시스”는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당신의 일상과 삶이야 말로 위대하다고. 그리고 그런 이들의 삶을 그리는 것이 위대한 문학이라고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