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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북 Feb 29. 2024

요조에게

#인간실격

정말 힘들었습니다. 당신이 남긴 수기를 읽으면서 저는 정말이지 폭포가 단단한 바위를 깎아내듯, 제 마음의 어떤 무언가가 거칠게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었습니다. 인간사에 적응하지 못하고 세상의 끝에 홀로 선 당신에게 느껴지는 가여움과 측은함에  중독되었던 것입니다. 한 번은 역겨운 기운이 올라와 토할 거 같은 기분도 들었습니다. 이상했습니다. 당신의 나약한 모습을 저의 내면에서 비추어 보았던 걸까요. 저 또한 당신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내가 만약 호리키를 만났다면?' 이런 생각들이 저를 두렵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다가도 뭐랄까 그저 저에게 주어진 상황에 대한 안도감 같은 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당신이 스스로의 선택으로 세상을 떠나려 하였을 때 제가 옆에 있었다면 감히 당신을 뜯어말릴 수 있었을까요? 당신의 일생을 이미 알아버린 저로서는 도저히 확신할 수 없습니다. 저는 당신이 인간의  형태를 실격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성을 극도로 숨기고 살아가야 하는 사회에서 당신만이 너무나도 인간다웠기 때문에 숨을 쉬며 살아가기 힘들었던 것입니다. 정말 너무나도 힘들었을 것입니다. 겁 많고 눈치만 보던 당신이었지만 그럼에도 느꼈을 조그마한 행복들을 한올한올 모아 떠나셨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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