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숨을 고를까요. 먼 길 걷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지금까지 공부한 내용을 빠르게 훑어본 뒤, 앞으로 공부할 내용을 간단히 소개해 보겠습니다.
민법은 크게 다섯 구역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총칙, 물권법, 채권법, 친족법, 상속법이 그 다섯이지요. 놀랍게도 우리는 벌써 숲의 많은 부분을 둘러보았습니다. 물권법과 채권법 일부는 민법책 제1권에서, 그 외 나머지 채권법은 방금 직전까지 꼼꼼히 살펴보았지요.
친족과 상속이 나름 큰 과제입니다. 허나 이 둘은 민법 숲에서 차지하는 면적에 비해 초학자인 우리가 구경할 거리는 많지 않습니다. 과감하게 생략하겠습니다. 다만 책 말미에 이혼과 상속에 관하여만 가볍게 알아볼까 합니다.
민법총칙, 그러니까 이제 우리가 살펴볼 구역은 딱 하나 남은 셈입니다.
2. 총칙을 둘러보는 두 갈래 길
총칙을 둘러보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전통적인 길이고, 다른 하나는 적잖은 위험을 수반하는 모험적인 길입니다. 여기까지 따라온 독자라면 충분히 준비가 되었다고 믿습니다. 이번에는 좀 더 도전적인 길을 택해보겠습니다. 다만 이대로 그냥 출발하면 조금 아쉬우니 우리가 포기한 '가지 않는 길'에 대해서 몇 마디 남깁니다.
오래도록 뭇 탐험가에게 사랑을 받은 이 첫 번째 길은 "권리"라는 주제로 엮여 있습니다. 이 길을 택하는 탐험가는 우선 권리가 무엇인지 공부를 하고, 이후 권리의 주체, 권리의 객체, 권리의 변동 순으로 숲 구석구석을 탐험합니다. 여기에 더해 기간과 소멸시효까지 공부를 하면 총칙 일회독이 아주 끝납니다.
오래도록 사랑을 받는 덴 다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이 길은 민법 조문의 순서를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또 총칙 주제를 어느 하나 빠짐없이 고루 다룰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지요. 따라서 진지하게 시험공부를 목표로 하는 수험생이라면 부득불 선택할 수밖에 없는 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 나온 우리가 그 전부를 꼼꼼히 살펴봐야 할 필요는 없겠지요. 본래 목적에 맞게 여장을 가볍게 하고 옆으로 난 샛길로 빠르게 숲을 꿰뚫어 봅시다. 모든 내용을 다 다룰 순 없겠지만 총칙 숲의 가장 어려운 부분을 손아귀에 넣은 쾌감을 맛볼 수 있을 겁니다.
3. 추인(追認) 삼형제
앞으로 탐험할 길에도 거대한 주제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추인"이라는 녀석입니다. 교과서에서는 추인을 '법률행위의 결점을 후에 보충하여 온전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쉽게 말해, 쫓아가서(追) 인정(認)함으로써 그 효력을 온전케 하는 어떤 행위인 것이지요.
[4-1] 추인 삼형제. 그들의 변신을 기대하시라!
총칙에서 등장하는 추인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① 무효의 추인, ② 무권대리의 추인, ③ 취소할 수 있는 법률행위의 추인이 그 셋입니다. 이 셋을 온전히 소화해 내는 게 이번 장의 목표입니다. 어느 하나 만만치 않은 녀석들이지만 두 가지만 잘 기억하고 있으면 크게 헤매지 않고 완주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첫째, 추인 삼형제가 공유하는 큰 그림이 서로 닮아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즉 셋 모두 ⓐ 정상적인 모습으로부터 벗어난 어떤 결함을 가지고 있는데 ⓑ 그 결함 때문에 법률효과가 온전히 꽃을 피우지 못하던 찰나, ⓒ 추인이라는 녀석이 짠 하고 나타나서 새로운 효과를 부여한다는 공통된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득 마법에 걸린 공주님을 풀어주기 위해 먼 길을 떠나는 어느 용맹한 기사 이야기가 떠오르는 대목입니다.
둘째, 추인의 효과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추인이라는 단어에 꽂혀서 삼형제를 "대충" 비슷한 것으로 정리하면 공부를 할수록 길을 헤맬 가능성이 높습니다. 추인 삼형제는 추인이라는 단어만 공통적으로 사용하고 있을 뿐 구체적인 요건과 효과는 몹시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번 장을 읽는 내내 이 사실을 꼭 염두에 두고 각 삼형제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찬찬히 음미해보길 바랍니다.
(*엄밀히는 '무권리자의 처분에 대한 추인'까지 모두 네 가지입니다. 그러나 조문상 규정된 추인은 앞서 소개한 삼형제 뿐입니다. 우리는 조문에 명시된 내용만 다루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