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른이 훌쩍 넘어도 다투는 모양새는 여전히 유치하고, 화해를 시도하는 건 더욱 어렵다. 그래도 마음이 좋지 않아 친구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초등학교 때 배웠던 것 그대로 아쉬운 마음은 잠깐 꾹 누른 채, 내가 무엇을 잘못했고, 그래서 네가 무척 속상했겠다, 정말로 미안하다는 말을 정성껏 입으로 적어 내었다.
조심스러운 마음이 통한 것일까, 상대도 조금은 누그러진 상태에서 말을 이어 붙였다. 그런데 그 뒤가 문제였다. ‘아니야, 나도 미안해’까지는 바라지 않았다. 그저 머쓱하게나마 지나갔으면 좋으련만 ‘그래, 네가 그렇게 해서 나는 이런 부분에서 기분이 나빴어’라며 첫 운을 뗐다.
기분이 썩 유쾌하지 않았다. 나름 용기 내서 이야기를 꺼낸 것인데 굳이 첫 마디를 그렇게 시작해야 하는 것인지! 그래도 애써 마음을 다스리며 웃는 얼굴로 소주잔을 건넸다. 좋은 분위기로 대화를 마치기 위해 계속 더 문을 두드렸는데, 내가 아쉬웠던 부분을 언급하다가 기어이 마음이 상하고 말았다.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는 그랬으려나? 음, 하지만 난 여전히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아.’
마음의 눈을 한번 찔끔 감았다. 철렁 무언가 내려앉는 마음이 들었다가, 손에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오늘은 이만하면 됐다. 이후에는 나도 달리 할 말이 없어 어설프게 대화 주제를 바꾸었다. 몇 번의 술잔이 오간 뒤 우리는 각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2.
사람이 어렵다. 잘못을 시인하는 데 인색한 사람이라면 더욱 어렵다. 서로 다른 두 인격체가 살갗을 맞대다 보면 이런저런 말다툼은 불가피할 터인데, 자기 잘못을 시인하지 않는 사람과는 이를 해결하는 게 유달리 더 곤욕스럽기 때문이다.
갈등을 해결하는 건 마치 두 평행선을 만나게 하는 일과 같다. 양쪽 모두 뻣뻣하게 직진만 해서는 도무지 만날 수가 없다. 이론상 양쪽 모두 각을 틀어야 하는 건 아니다. 어느 한쪽만 아주 살짝, 단 1도의 구부림만 허용해도 두 직선은 반드시 만나고야 말 것이다. 허나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을 소모해야 한단 말인가. 서로 몇 도씩만 구부리면 금세 만나게 할 것을 한쪽 직선의 대쪽 같은 고집으로 기어이 먼 길로 돌아가야 한다.
혹은 한쪽 직선에서 화끈하게 각도를 트는 방법도 있겠다. 이왕 꺾는 거, 한 45도 꺾어주면 충분하려나. 그러나 아서라, 사람 마음은 직선의 각도를 조율하는 일보다는 조금 더 섬세하고 어려운 일이다. 마음을 구부리는 일에는 문맥이 남고, 야속함이 남는다. 따라서 화해의 업을 관계의 어느 한쪽이 전담하는 건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아주 사소한 것도 오래 쌓이면 돌이킬 수 없이 큰 벽을 만들어내곤 하므로.
3.
돌아오는 길 내내 마음이 좋지 않았다. 어쩌다 이런 사람을 곁에 두게 되었을까 푸념 섞인 자조를 하다가, 결국 경멸 섞인 비방에까지 도달하고 말았다. 그래, 전부 다 난쟁이다. 겉은 번지르르해 보이는, 그러나 속으로는 못다 큰 난쟁이들뿐이다. 한껏 욕을 퍼부어도 마음이 가벼워지질 않는다. 이어폰으로 대충 아무 노래나 틀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집에 들아와 불도 켜지 않은 채 소파에 털썩 내려앉았다. 창밖에서 들어오는 빛은 거실 안 실루엣을 어슴푸레 그려내고 있었고, 나는 그저 멍하니 그곳에 놓여 있었다. 동공이 점차 어둠에 익숙해지더니 무언가를 초점에 잡았다. 텅 빈 TV 화면에 비친 어느 남성의 모습이 퍽이나 못나 보였다. 그것은 잔뜩 얼굴을 찡그린 채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영락없는 난쟁이의 모습이었다.
너무 격하게 반응한다, 내가. 잘못을 시인하는 데 인색한 자들이 잘했다는 게 아니다. 그들의 화법과 태도는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부류를 만났을 때 ‘어휴, 또 방어적으로 구는 사람이네’하고 끝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용납할 수 없는 불의를 목격한 것만 마냥 온몸을 부르르 떠는 사람이 있다. 나는 후자다. 아니, 거기에 더해 식은땀도 흘리고 며칠 가슴앓이까지 하니까 후자 중에서도 좀 심한 경우라고 해야 정확하려나.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TV 속 난쟁이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아버지는 여러모로 훌륭한 분이셨다. 나이가 들수록 그런 생각이 더욱 많이 든다. 다만 나의 초인(超人)도 어디까지나 인간이었던 고로, 부득불 몇 가지 결점을 가지고 있었다. 잘못을 시인하는 게 그렇게나 어려웠나 보다, 나의 초인이.
어린 소년이 오래 쌓아둔 속상한 마음을 쭈볏쭈볏 꺼내 들면 그는 심히 역정을 내곤 하였다. 갈 길을 잃은 소년의 불덩이는 아래로만 타들어가 은밀한 복수심을 키우는 한편, 다른 한편으론 스스로를 괴롭혔다. 그래, 내가 무언가 잘못한 게 있는 것일 테지. 내가 아직 철이 없고, 이해하지 못한 게 있어서 여전히 이런 배부른 소리를 하는 것이라며 한쪽 구석에 웅크려 앉아 공회전만 하였다.
나는 더 이상 과거의 초인을 미워하지 않는다. 어떠한 야속함도, 두려움도 그를 향해 남겨두지 않았다. 그저 거대한 연민이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이다. 그에게 여타 부정적 감정을 느끼기엔 그는 너무 늙었고 야위었다. 그런데 습관이란 게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실제 상처를 남긴 자의 육체는 그 초인성을 잃은 채 나날이 작아져만 가는데, 실체 없는 그의 그림자는 여전히 나를 괴롭히고 있다.
단단한 바닥에 닿지 못해 서글픈 어느 난쟁이의 다리가 오늘따라 더 불안해 보인다.
4.
한 못난이가 다른 못난이를 안아줄 수 있을까. 분명 그리할 수 있으리라. 한편으론 마음 한구석의 그림자를 부단히 지워내고, 또 다른 한편으론 종지보다 작은 내 마음을 감당하느라 고생했을 상대를 동정하다 보면 어떤 형태로든지 분명 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아팠기 때문에 불가한 것이 아니라, 아팠기 때문에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소파에서 내려와 두 발을 바닥 위에 딛는다. 허리를 곧추 세우니 평소보다 한 뼘 정도 더 커진 것만 같다. 잠들기 전에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야겠다 어딘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