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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드레아 Jan 13. 2016

해님이 숨바꼭질하던
미후네야마라쿠엔

 혼자 전세 낸 겨울 화원과 귀갓길 AM 라디오 방송 '섹시'

  삼일 연휴의 첫날 아침이었다. 틈만 나면 테니스치러 가기 바빴던 나는 하루만 여행에 쓰자고 생각했다. 삼일 연휴의 첫날 아침이었다. 틈만 나면 테니스치러 가기 바빴던 나는 하루만 여행에 쓰자고 생각했다. 포털사이트를 여기저기 발품을 팔아 뒤진 끝에 큐슈지방 추천지 중 하나로 이곳을 찾아냈다.   


  내가 살고 있는 후쿠오카현에서 남쪽으로 140km 떨어져 있는 사가현의 타케오시에 위치한 ‘미후네 야마 라쿠엔’이라는 화원이었다. 140km를 고속도로로 달려가는 데는 약  2시간가량 소요되었다. 집에서 조금은 멀리 떨어진 곳이고 꽤 유명한 곳이라 기대가 되었고 겨울이지만 관광객들도 제법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목적지에 거의 다 와가는데도 뭔가 한산한 시골 논밭과 같은 풍경만 펼쳐져 있고 이 유명하다던 관광지를 알려주는 표지판도 거의 볼 수가 없어 조금 불안해졌다. 하지만 이미  내친걸음. 네비가 안내하는 대로 충실히 목적지까지 다다랐다.  


 도착한 곳 정문 앞에 주차장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넓지 않았다. 인터넷으로 본 자료에는 150대 차량이 주차할 수 있다고 되어 있는데 정문 앞쪽의 주차장 크기로 볼 때 거기에 150대가 다 들어갈 수는 없어 보였다. 어쩌면 근처에 다른 주차장이 더 있었을는지도 모르겠다.    


  400엔짜리 표를 끊고 화원 안으로 첫발을 디뎠다. 정문 바로 안쪽에서 인부 아저씨들이 작업을 하고 있었다. 한가한 겨울 비수기를 이용해 개보수 작업을 하는 것일 터. 나는 간만에 홀로 멀리까지 나온 홀가분하고 명랑한 기분으로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작업자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오하이오고자이마쓰~~~~^^”  


“오하요고자이마쓰~~~^.^”  


  작업 중인 곳을 지나며 바로 자그마한 호수가 나타났다. 호수의 색은 아마도 녹색말 때문에 안이 들여다 보이는 맑은 빛깔을 아니었지만 주변의 조경과 어우러져 차분하고 정갈한 운치를 자아내고 있었다.  

 

  호수  오른편 순로를 따라 아주 천천히 걸으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어느 각도에서 대충 찍어도 사진은 그림같이 아름답게 나오는 듯 보였다. 내 생각에. ㅎㅎ.



  호수 건너편으로 연인인 듯 보이는 커플 하나가 미소를 지으며 출구 쪽으로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이제 막 들어왔으므로 안쪽의 화원을 향해 천천히 주변을 구경하며 걸어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별로 없어 정말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여유 있게 거닐고 있다가 문득 깨달았다.    


‘아하하. 아까 그 반대편으로 걸어나가던 커플이 마지막이었구나!’  


  그렇다. 주위를 둘러봐도 보이는 건 정문 근처의 두셋 인부들 뿐. 손님은 이제 이 넓은 곳에 나 혼자만 남았던 것이다.   


  순간 정말 행복했다. 그리고 일종의 해방감과도 같은 느낌이 살짝 등줄기를 스치고 지나는 듯했다. 호수가 있고 화단이 넓게 드리워져 있고 뒤편에는 자그마한 야산이 병풍처럼 서있는 이곳에 난 오늘 하루 전세를 낸 것이다. 어느 친구 말마따나 재벌들이 한다는 ‘통째로 빌리기’를 함 셈이었다.



  오르막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일부러 숲이 우거진 곳으로 발길을 옮겨 보았다. 사람 하나 겨우 지나갈 만한 오솔길이 나 있었고 안쪽에는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는 것을 뿌듯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이날 날씨가 참 독특했다.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이었는데 해가 자꾸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해가 숨어있을 때면 화원이 온통 흐리고 서늘한 느낌이 들었고, 해가 갑자기 나오면 나무와 잎새의 초록빛이 햇빛에 닿아 찬란하고 싱그러운 초록으로 다시 태어나곤 했다.



  겨울도 이렇게 좋은데 꽃이 활짝 피는 봄은 어떨까. 그리고 여기저기 설치된 조명 기구를 보니 야간개장에서의 경치도 얼마나 환상적일지 기대가 되었다.   


  슬슬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다. 들어온 시각이 오전 11시 47분. 천천히 걷다 야산 아래까지 도달하니 1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한 바퀴를 완전히 다 돌고 아까 들어왔던 길 반대편으로 나와 정문에 다다르니 1시 15분이 되었다. 아까 정문 근처에서 보았던 레스토랑에서 뭔가 먹어볼까 하고 가보니 문이 닫혀 있다. 하긴 이렇게 손님이 없는데 문을 여는 게 무리겠지.   


  주차해놓은 차 안에 샌드위치를 사두었던 걸 기억해내고는 반가운 마음에 맛있게 얌냠. 비록 근사한 점심은 아니지만 아름다운 자연을 거닐며 폐 속에 산소를 가득 충전하고 난 다음이라 기분이 한없이 상쾌하고 살짝 들떠 있었으며 뿌듯했고 샌드위치는 더없이 맛나게 느껴졌다.



  돌아오는 길에 심심해서 라디오를 켰다. FM보다는 왜인지 AM 라디오가 듣고 싶어졌다. 운전을 하다 보면 라디오를 듣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아마 경험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FM과 AM 라디오 방송의 차이를.   


  일반적으로 AM 라디오는 FM보다는 음질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평소 FM을 자주 듣다가 AM 라디오 방송을 켜면 뭐랄까 아스라한 추억의 음질이 느껴진다고 할까. FM 라디오도 TV에 비하면 아날로그이지만 AM 라디오는 FM에 비해 더 아날로그라고 할까.   


  아무튼 다르다. 느낌이 확 다르다.

  

  두 여자 디제이가 나와서 뭔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물론 일본 사람들이다. 한 여자의 음성은 가볍고 호리호리한 느낌의 비교적 흔히 접할 수 있는 음색이었다. 그런데 다른 여자의 음성은 특이했다. 마치 재즈 음악과도 같은 음색이랄까. 그리고 조금 끈적거렸다.   


  잠시 후 이 프로그램의 제목을 알 수 있었는데 웃음이 나왔다.   


  프로그램 제목은 ‘세쿠시’,  우리말로 하면 ‘섹시’였다.   


  아마도 두 여자 디제이는 기모노를 입었을 때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청취자들의 사연도 기모노에 얽힌 이야기였던 것 같다. 아직 일어가 서툴러 정확히 무슨 내용인지 다 이해는 못했지만 그 저음의 굵직하면서도 살짝살짝 흘리는 듯한 목소리의 여자 디제이 목소리가 흥미로왔다.   


  섹시라는 프로에 딱 어울리는 진행자를 섭외한 거라 할 수 있을까. 하하. 우리나라에서 이런 식의 프로그램 이름을 만든 적이 있나 싶었다. 좀 유치하게 들리기도 하고 귀에 찰싹 갖다 붙는 것도 같고.   


  아무튼 조금 지루한 고속도로 운전길에 이 처음 접하는 요상한 프로그램과 독특한 음색의 라디오 디제이 목소리 때문에 재미있게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사가현의 타케오시. 미후네야마라쿠엔. 꽃피는 봄이 오면 다시 꼭 찾고 싶다.



<미후네야마라쿠엔 여행 Tip>

주소 : 武雄市武雄町武雄4100
교통 : JR 다케오온천역(武雄温泉駅)에서 차로 약 5분, 나가사키도로 다케오 북방 IC에서 약 15 분        

       ※ JR 다케오온천역에서 무료 셔틀 버스 운행
 주차장 : 있음 (무료 150대)

영업시간: 연중무휴 8:00~17:30
시 설: 레스토랑, 기념품 가게
이벤트:

 꽃 축제(4월 상순~5월 상순)
 여름 피서~대나무 축제(7월 중순~8월 중순)
 단풍 축제/야간 스포트 라이트(11월 상순~12월 상순)

문의 : 미후네야마 관광호텔 TEL 0954-23-3131

미후네야마라쿠엔 홈페이지  http://www.mifuneyamarakuen.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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