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의 시작, 도쿄

내 인생의 노래 (34) - 이문세의 <끝의 시작>

by 두기노

인생이란 결국 뫼비우스의 띠와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끝없이 이어진 길처럼 보이지만, 시작은 언제나 끝을 향해 가고, 지나고 나면 끝은 다시 시작이 된다. 영원히 오르기만 하는 산은 없고, 해가 지면 다시 해가 뜨듯 삶은 그렇게 시작과 끝을 반복하며 이어진다. 그 무한루프와 같은 순환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조금씩 성장하려 애쓰는 태도야말로 우리가 삶을 대하는 방식이 아닐까 싶다.


나이 오십이 넘어 다시 오게 된 도쿄에서의 지난 3년간의 직장 생활도 이제 올해 말로 막을 내린다. 15년 전, 30대 중반이던 시절의 4년간의 경험을 더하면 도합 7년간의 일본 근무가 마무리되는 셈이다. 여기에 20대 초반의 3개월 어학연수, 신입사원 시절 파격적으로 주어졌던 1개월간의 일본 보험시장 연수, 그리고 현 직장 이전 글로벌 스타트업 소속으로 1년여간의 원격근무 기간까지 합치면, 단순한 여행을 제외하고도 9년 가까이 일본이라는 나라와 인연을 맺어온 셈이다.


50대 중반을 향해 가는 지금의 나이를 감안하면, 일과 연관된 일본과의 인연은 아마 여기서 마침표를 찍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더 아쉽고, 만감이 교차한다.


역사와 정치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결코 양보할 수 없지만, 내게 두 번이나 일할 기회를 준 일본이라는 나라에는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이 있다. 별것 아닌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자주 느끼게 해 주었고, 자발적 고독의 가치를 온전히 체득하게 해 주었다. 가족과 떨어져 홀로 생활하며 몸은 분명 힘들었지만, 그만큼 가족의 소중함을 더 깊이 깨닫게 해 준 시간이기도 했다. 마음이 많이 지친 상태로 와서 자신감을 회복하고, 다시 무언가를 시작하는 설렘을 안은 채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음을 또한 축복으로 여긴다.


보잘것없는 애국심일지도 모르지만, ‘한국 사람 욕은 먹지 말게 하자’는 심정으로 회사 생활에는 나름 최선을 다했다. 그 과정에서 누구와도 비교되지 않고, 비교할 필요도 없이 오롯이 내 일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쓸데없는 인간관계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고, 의미 없는 식사 자리나 회식을 줄이는 대신 내 시간을 훨씬 알차게 쓸 수 있었다. 한국에서 수년간 임원까지 지냈던 사람이 한참 어린 일본 고객사 직원에게 고개를 숙여야 할 때 멘탈이 흔들리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 정도로는 크게 동요하지 않을 만큼 마음의 근육도 단단해졌다. 일본 특유의 비효율과 느린 관행 덕분에—아이러니하게도—조급했던 성격은 많이 중화되고, 삶의 속도도 한결 여유로워진 것 같다.


요리하고, 운동하고, 책을 읽고, 기도하며 여행하듯 여기저기 안 가본 곳들을 달리고 산책하던 모든 순간들이 벌써부터 그리워진다. 로컬 사람들이 오가던 상점가, 자신의 가게에 대한 애착이 진하게 느껴지던 식당이나 술집,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을 사진에 담고 벤치에 앉아 멍하니 평화로운 풍경을 바라보던 공원, 다치노미와 아기자기한 식당들이 모여 있던 뒷골목, 여행과 식도락 잡지를 보러 들르곤 했던 도서관, 그리고 둘이 들어가면 만원이 되는 냉탕이 있는 동네 목욕탕까지 모두 그리울 것이다.


이제 나는 새로운 시작을 위해 떠난다. 지금은 비록 일본을, 도쿄를 떠나지만 언젠가는 여행자로서 다시 돌아올 것이다. 여행 같은 일상을 선물해 주었던 도쿄에서의 지난 3년과는 작별하지만, 또 다른 일상 같은 여행을 찾아 다시 올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끝이지만 끝이 아니다. 또 다른 시작이며, 또 하나의 끝의 시작이다.


https://youtu.be/NZLaRu2SYaQ?si=_Haxk-5pMkRkxGh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