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노래 (36) - 마츠다 세이코의 행복한 삶을 기원하며
마츠다 세이코(松田聖子). 아직도 일본의 50대 이상 세대에게는 ‘영원한 아이돌’로 남아 있는 이름이다. 이제는 그 존재 자체가 일본 음악사 및 연예계의 한 페이지가 되었다.
팬으로서 열성적으로 그녀를 추앙한 적은 없지만, 일본어를 처음 배우기 시작했던 1993년 이후 그녀는 늘 내 삶의 근처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었다. 10대 후반에 데뷔한 이후 45년 이상 무대에 서며, 여전히 특유의 소녀 같은 목소리와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한국에서 첫 단독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그녀의 수많은 노래 가운데 내가 꼽는 숨은 명곡이 바로 '赤い靴の バレリーナ (붉은 슈즈의 발레리나)'다. 술 한잔하고 나면 가끔씩 다시 찾아 듣게 되는 노래다. 바닷가를 여행하다 문득 떠오르기도 하고, 깊은 밤 집으로 향하는 바쁜 걸음 속에서 생각나기도 한다. 사랑하는 이를 떠올리듯 설렘이 가득 담긴 노래이지만, 듣다 보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먹먹해지기도 한다.
내가 이 노래를 처음 들은 것은 1993년 11월 어느 날이었다. 벌써 30년도 더 지난 이야기다. 세월이 이렇게 흘렀다는 사실이 새삼 믿기지 않는다.
그 당시 나는 대학 3학년을 마친 뒤 휴학을 하고 있었다. 또래들보다 학교에 1년 일찍 들어가서였을까, 대학 생활 내내 어딘가 겉도는 느낌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 받았던 기흉 수술로 군 면제 판정을 받고 나니 괜히 마음이 위축되었고, 세상의 주변부에 서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괜히 사람들을 피하게 되었고 마음도 어딘가 방향을 잃은 채 흔들리고 있었다.
고민을 나눌 친구도 많지 않았고 학점도 바닥에 가까웠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특별한 계획 없이 휴학을 했던 것도 아마 그런 이유였을 것이다. 막연하게나마 대학 생활을 한 번쯤 리셋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도쿄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전문학교에 다니고 있던 사촌형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형은 가볍게 “도쿄에 잠깐 다녀가 보는 게 어때?”라고 말했다.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그래서 종로 3가에 있던 파고다 어학원에 등록해 일본어 기초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7~8개월이 흘렀을 무렵, 과외를 하며 모아 두었던 돈에 어머니의 도움을 조금 보태 3개월 정도 도쿄 어학원에서 단기 연수를 받기로 했다. 그때까지 제주도조차 가 본 적이 없던 나는 그렇게 인생 첫 비행기를 타고 도쿄로 향하게 되었다.
사촌형 집에 기숙하며 보낸 100일 남짓한 기간은 내 인생에서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시간이었다. 아침 8시 30분부터 정오 무렵까지 학원에서 수업을 듣고 나면, 다시 전차를 세 번 갈아타고 한 시간 남짓 걸려 지바(千葉)에 있는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아직도 도쿄에서 지바로 넘어오는 철교 위를 달리던 전철 창밖 풍경이 희미하게 기억난다.
간단히 점심을 챙겨 먹고 나면 청소를 하거나 장보기를 하는 등 형이 시킨 간단한 심부름을 다녀오곤 했다. 그 외는 주로 동네 산책을 하기도 하고, 청취 능력을 조금이라도 늘려 보겠다고 TV를 보거나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촌형이 가지고 있던 CD들 속에서 우연히 마츠다 세이코의 베스트 앨범을 발견했다. 그 앨범에서 처음 듣게 된 노래가 바로 ‘赤い靴の バレリーナ’였다. 며칠 동안 거의 이 노래만 반복해서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그녀의 맑은 목소리는 참 서글펐다.
이 곡을 만든 사람은 70~80년대 인기 록 밴드 甲斐バンド(카이 밴드)의 리더였던 甲斐よしひろ(카이 요시히로)다. 거칠고 남성적인 록 스타일로 잘 알려진 싱어송라이터였던 그가 아이돌 가수였던 세이코에게 곡을 제공했다는 사실이 당시로서는 꽤 흥미로운 화제였다고 한다.
이 노래에는, 마츠다 세이코 특유의 맑고 섬세한 보컬 뒤에 어딘가 쓸쓸하고 허전한 정서가 스며 있다. 어쩌면 그 느낌은 카이 요시히로의 감성이 은근히 베어든 결과인지도 모른다.
前髪1mm 切りすぎた午後
앞머리를 1미리 정도 많이 잘라버린 오후
あなたに逢うのがちょっぴりこわい
당신을 만나는 게 조금은 두려워
...
街を歩けば 風もはしゃぐわ
거리를 걷다 보면 바람마저 들떠 보여
私恋してるのよ
난 지금 사랑에 빠졌거든
...
見知らぬ電車で 見知らぬ海へ
낯선 전차를 타고 처음 가보는 바다로
見知らぬ駅まで 切符を買ったわ
모르는 역까지 가는 표를 사버렸어
...
海からあなたに 電話をかけて
바닷가에서 당신에게 전화를 걸어
今すぐ来てよと わがまま言おう
지금 당장 와 달라고 조금은 어리광을 부려볼까
車を飛ばして 来てくれるかな
차를 몰아 정말 달려와 줄까
それともやさしく 叱られるかしら
아니면 다정하게 나를 혼내줄까
우울하고 힘들었던 그 시절, 그녀의 노래 덕분에 귀가 열리고 마음도 위로를 받았다. 일본어를 시작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귀가 트였던 그때의 경험은 두고두고 내 인생의 큰 동력이 되었다. 나도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작은 자신감은 30년 가까운 직장 생활을 버텨 오는 동안 보이지 않게 큰 힘이 되어 주었다.
한때 마츠다 세이코는 ‘마성의 여자’라는 수식어로 자주 불리곤 했다. 화려한 연애사와 결혼, 이혼이 반복되면서 언론은 한 인간으로서의 그녀의 삶을 소비하기 바빴다. 대중이 기억하는 것은 늘 자극적인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그 이야기들 뒤에 어떤 시간과 사정이 있었는지는 사실 아무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녀를 둘러싼 이야기들 가운데에는 오해와 왜곡도 적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무엇보다 마음이 아픈 것은 그녀의 외동딸 이야기다.
배우이자 가수로 활동하던 딸 칸다 사야카가 몇 년 전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 사랑하는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다는 것은 어떤 말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슬픔일 것이다.
당시 고개를 숙인 채 주변의 부축을 받으며 서 있던 마츠다 세이코의 모습을 담은 영상을 보며 괜스레 나까지 마음이 무너졌던 기억이 난다. 무대 위에서는 늘 밝게 노래하던 사람이 삶에서는 그런 깊은 슬픔을 겪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도 가혹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몇 년 전 그녀가 활동을 재개해 전국 투어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무척 반가웠다. 앞으로의 그녀의 삶을 응원하며, 부디 남은 인생에는 좋은 일들이 훨씬 더 많기를 조용히 기도해 본다. 오늘도 ‘赤い靴の バレリーナ (붉은 슈즈의 발레리나)’를 들으면서 그여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https://youtu.be/XXOGj_dFG28?si=y9LjQqlJWN7VvZM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