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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기노 Oct 09. 2023

욕심(慾心)과 열심(熱心) 사이

나는 무엇을 그리도 붙들고 있는가

도쿄에 단신부임해서 본의 아니게 홀아비 생활한 지 어언 9개월 차에 접어든 지난 주말. 얼큰 북엇국을 끓여 일요일 두 끼를 잘 해결하고, 남은 2-3인분 정도는 용기에 넣어서 냉동실에 보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냉동실에 넣으려는데 용기 뚜껑이 살짝 안 맞아서 그런지 국물이 냉동실 바닥 및 다른 식품들에 흘러 버렸다. 냉동실을 더럽힌 북엇국 국물을 키친타월로 하나씩 닦아내려 냉동되어 있던 내용물들을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 불행은 한꺼번에 온다고 했던가. 설상가상으로, 또 다른 반찬이 들어있던 유리용기가 잠시 올려놓은 탁자에서 떨어져 부엌바닥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일요일 밤 9시를 넘은 시간이었다.


차분하게 한주를 정리하며 생각을 버리고 평온하게 보내야 할 일요일 밤에 일을 벌이고 말았던 것이다. 아직 많이 미숙하던 시기에는 짜증부터 났을 테지만, 덤덤하게 바닥을 치우고 냉동고를 청소하고 꺼내놓은 내용물들을 닦아서 다시 냉동실에 넣는 작업을 묵묵히 수행했다. 부엌 바닥엔 약간의 기름이 배어버린 것 같아서 힘줘서 서너 번 걸레질까지 한 후 쓰레기통 정리하고 나서 씻고 누우니 밤 10시가 되어 있었다.



나이 50 넘어 타지에 와서 혼자 지내다 보니 가족들 걱정 안 끼치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집밥 만들어 먹는데 늘 진심인 편이다. 먹고 싶은 음식에 균형을 맞춰서 먹어야 하는 음식까지 언제나 내 머릿속엔 만들고 먹고 또 만들고 보관했다 먹고 하는 원초적인 행위들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주말에 꽉 채워 넣은 냉장고가 금요일 퇴근 무렵엔 거의 비어버리는 사이클을 수십 번 경험하며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절제와 균형을 추구하는 내 삶의 자세와도 같은 냉장고 운영에 나름 스스로 만족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벌어진 일요일 밤의 작은 해프닝. 나도 모르게 꽉 채워져서 더 이상 많이 넣을 공간이 없어진 냉동고속 내용물들을 하나씩 확인해 보니, 최소 2주 정도는 요리나 테이크아웃 없이도 저녁을 먹을 수 있을 만큼의 반찬류가 얼려져 있었다. 냉동고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 게 말이 되냐며 어머니나 아내에게 잔소리와 타박을 해대던 내가 사실은 비슷한 길을 가고 있었다.


자기 위해 눕고 나서 문득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늘 미니멀한 삶을 추구한다고, 이제 욕심 별로 없다고, 결국 내려놓고 비우는 게 최선의 삶이라고 밖에서 기회 될 때마다 설파하고 다니고 있는 내가 조금 한심하게 느껴졌다. 내가 좋아하고 관심 있는 일이나 관계에 언제나 열심히 임해왔다고 자부하지만, 순수한 열정이 지나쳐 욕심으로 변질되었던 수많은 경험도 해 봤다. 그 과정에서 또 얼마나 상처받고 실패를 겪었던가.


많이 가지면 그만큼 생각이 많아지고 생각이 넘치면 번뇌로 이어지기에, 눈에 보이든 그렇지 않든 ‘무소유’를 주장하신 법정 스님의 말씀이 다시금 생각났다. 그야말로 별것 아닌 아주 작은 불행에 불과했지만, 그날의 더럽혀지고 깨지고 흩어진 내용물들은 열심(熱心)이 지나쳐 욕심(慾心)이 되어버린  내 지난 삶의 파편들이었다. 이런 소소한 부분에서도 깨달음을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하며, 남아 있는 미련과 집착이 씨앗이 되어 어느 순간 커져 버리는 욕심을 버리고 더욱 담백하게 살아야겠다는 작은 다짐을 하려다 보니 어느 순간 스르르 잠이 들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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