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오동전투 후기
모든 게 타이밍이라면
이보다 더 극적인 타이밍이 있을까.
바로 영화 봉오동 전투의 개봉이다.
이 영화의 개봉 시기는 신의 한 수가 분명하다.
때마침(?) 일본에 대한 보이콧이 뜨거운 요즘,
불매운동과 불볕더위만큼 치열한 역사의 현장을 스크린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됐다.
과한 감정적 동요를 피하고자 혼자 대낮 상영시간을 택했고, 영화를 보러 가는 내내 '지나치게 감정적이지 말아야지.'라고 되뇌었다. 역시 이런 다짐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동조할 누구 없이도 혼자서 충분히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경험했다. 심지어 같은 장면에서 일면식 없는 관객끼리 합심하여 분노하고 안타까워했다.
류준열(장하), 그의 총소리가 사방을 꽉 매우던 순간,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러닝타임 내내, 집 소파보다 편안한 영화관 의자에서 잔뜩 각 잡힌 자세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눈을 가릴 만큼 잔인한 장면도 더러 있었다. 소설에나 나올법한 문장들, 이를테면 '머리가 굴러다녔다.'라던가 '서슬 퍼런 쇠칼이 적의 목에 꽂히고 피를 솟구쳤다.'라는 문장이 눈앞에서 극적인 음향과 영상으로 생생히 펼쳐진다.
다만, 이제 하나는 확실히 안다. 영화가 이 정도라면 진실은, 당시는 더 참혹하고 잔인했을 거라는 것을 말이다.
감독의 전작 <살인자의 기억법>이 떠오르는 카메라 기법은 이 영화만의 자연 활용법을 한 번 더 증명한다. 어딘지 스산하고, 비장함이 감도는 산을 공중에서 보여준다. 영화 속 시퍼런 것은 칼뿐이 아니다. 나무 빽빽한 이 숲도 '푸르다'가 아닌 '시퍼렇다'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산 능선에서 시작해 가파른 꼭대기에 이르는 카메라 달리기는, 마치 독립군들과 함께 달리는 듯한 생생함을 느낄 수 있고, 프레임 가득 꽉 찬 배우들의 연기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 역사를 다룬 영화가 그렇듯 이야기의 결말은 정해져 있다. 어쩌면 뻔한 장면의 반복이라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봉오동 전투>가 가진 설득력은,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 확실한 역사라는 데 있다. 한 줄의 기록에 살을 붙여 그럴듯하게 꾸며낸 '짝퉁 역사'가 아니라, 역사에 기록된 독립군의 첫 승리의 고증이다.
한일전만 해도 팔을 걷어붙이고 애국심을 불태우는 우리이기에, 이 영화는 한국인이라면 여지없이 불편하고 괴롭고 슬프다. 영화 속 일본이 우리를 조롱하고 무참히 칼을 휘두를 때면 나 역시 몇 번이나 옷을 꽉 쥐고, 두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제법 클리셰스러운 장면에서도 울컥했으며, 눈물이 맺혔다. 그것이 울분의 역사이고 우리의 과거이기 때문에.
영화가 끝나고 스크롤이 올라오기 전 한자가 가득 적힌 옛 신문이 떠오르자 비로소 이 모든 것이 1920년, 약 100년 전 이 땅의 일이었다는 것이 실감 난다. 밖을 나서자 대낮의 땡볕이 날카롭게 내리쬔다. 마침 한 가족이 영화관에 들어서고 횡단보도에는 시원한 음료를 든 내 또래 여자들이 보인다. 불이 바뀌고 길을 건너자 유모차를 끌고 나온 엄마들이 서 있고, 그 건너편엔 건물 신축 공사가 한창이다. 이 모든 장면이 아주 비일상적으로 느껴지고, 이 평온함이 새삼스럽다.
참 시의적절한 영화를 모두 직접 느껴보시길.
영화는 영화였다-가 영화가 아니었다가-를 반복할 것이다. 두 시간 동안 충분히 그들과 함께 달리시고 분노하시길.
그리고 그 끝에
기록에 그치는 역사가 아니라,
기억에 남는 역사가 되기를.
ρડ,⠀영화 촬영 시 생태보존지역이 훼손된 일은 안타깝다. 제지를 받았으나 다음 날 촬영을 강행했다는 사실은 더욱. '기억할만한 역사'를 영화로 남기는 그들이 그곳의 자연환경 역시 '보존할만한 역사'라는 사실을 모를 리 없을 텐데. (+ 훼손된 곳은 동강할미꽃 서식지는 아니며, 훼손(겨울)은 사실이지만 복구(현재) 되고 있다고.)
https://m.blog.naver.com/jmilujute/221609809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