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대학에서 상담을 하다 보니 예술가나 예비 예술인을 주로 만나게 됩니다. 그들의 마음을 듣는 일은 언제나 조심스럽고, 동시에 애틋한 경험이에요. 대개 높은 밀도의 이야기를 나누게 되더라고요. 이야기 속의 아픔이나 상처가 생생하게 그려지고 전달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자연스럽게 생각이 이어졌지요. 어떤 이유로 더 깊이, 크게, 오래 흔들리게 되는 걸까. 감수성이 높다는 말로 치부하기엔 충분하지 않았어요. 만나면 만날수록, 그들만의 마음 구조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상담사이자 예술가들을 애정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들의 심리적 특징을 한 번 이야기해 볼까 해요. 누군가를 규정짓기 위해서가 아닌 조금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사람들
예술가들은 흔히 예민하다는 말로 묶이곤 합니다. 하지만 제가 만난 이들은 예민하다기 보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사람들'이었어요. 길가에 버려진 낡은 가구의 질감, 아주 미세하게 떨리는 타인의 눈빛, 사회의 구석진 곳에서 들려오는 소외된 목소리. 대부분 바쁘고 힘들다는 이유로 외면하거나 아예 감지조차 못 하는 장면들을 기어이 마음 한편에 담아둡니다.
아마 선택의 문제가 아닐 겁니다. 눈으로 보고 내 마음에 담은 걸 없었던 일로 하지 못하기 때문일 거예요. 외면할 수 없는 천성이랄까요. 피하고 싶은 것들까지 불가피하게 받아내는 것 같았어요. 결국 쉼 없이 밀려오는 정보를 처리하고 의미를 곱씹느라 뇌가 지치고, 쉽게 소진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거죠.
게다가 효율과 이윤, 빠른 망각이 미덕인 지금의 시대에서 이러한 특성은 종종 독이 되기도 합니다.'적당히 좀 해', '너무 예민하게 구는 거 아냐?' 같은 주변의 말들이 부적절감과 자기 검열로 이어질 때가 많았습니다.
사라질 것을 사랑하는
현재는 과거가 되고, 살아있는 것들은 물리적 실체를 잃어요. 이처럼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은 변하거나 사라집니다. 하지만 예술가들은 당연한 것에 순응하기보다 사라질 것을 사랑하는 것을 선택하는 편이었습니다.
유한함은 슬프지만 그로 인해 우리 삶의 많은 부분들이 애틋하고 아름답게 여겨지기도 하니까요. 찰나의 빛이 머무른 풍경을 캔버스에 담고,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영상으로 남깁니다. 창작을 통해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내요. 사라질 것이 분명한 것들을 조금이라도 붙잡아 담아놓으려 하는 것. 삶에 대한 예술가들의 애착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만 이 태도는 필연적으로 고단함을 동반합니다. 찰나의 감정, 무대 조명이 꺼진 뒤의 공허함, 심지어 가장 찬란했거나 가장 아팠던 시기의 기억까지 안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수용할 수 있는 범위를 훌쩍 넘어 정보를 받아들이고 감정을 느끼기도 하죠. 그러다보니 감정 조절의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많습니다.
불확실성을 살아내기
졸업을 앞둔 예술 전공생들의 경우, 상담 시간에 '계속 이 일을 해도 괜찮을까요?'라고 많이들 물어봤습니다.하지만 대화를 이어나가다 보면 질문에 스스로 답을 하더라고요.
"힘든데, 다른 거 하면서는 못 살 거 같아요."
예술가들은 불확실함의 잔혹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 긴 준비 기간, 경제적인 불안정, 데뷔나 입봉이 곧바로 안정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 바닥의 생리까지도요. 안정을 선택할 능력이 없는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똑똑하고 현실적 감각이 있는 분들도 정말 많으니까요.ㅍ하지만 안정만으로는 '나'라는 존재감과 살아있다는 감각을 느끼기는 힘든 거겠지요.
어떻게든 다시 예술과 닿더라고요. 불확실함을 기꺼이 감내하며 그 안에서 자존을 지키고 무언가를 빚어내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낭만도, 무모함도 아닌 기질에 가까운 선택이구나 싶을 때가 많습니다.
제가 만난 예술가들은 세상을 다르게 감각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이었어요. 때로는 이런 부분들이 스스로를 힘들게 할 때도 있지만, 그 고유함이 있기에 모든 작품에서 각자만의 색과 깊이가 드러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예술인 상담에서는 지금 겪는 어려움을 문제로만 바라보거나, 예민한 성향을 교정하려고 하지 않아요. 대신, 예리한 시선과 감각처럼 창작활동에서 나만의 무기가 되는 부분을 함께 찾고 발견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나로 조금 덜 아프게,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함께 찾고 있어요.
한 사람의 예술가를 돕는 일은, 언젠가 그 작품으로 위로받을 누군가의 마음을 함께 살피는 일이라 생각해요.제게 여러모로 의미가 크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임상심리전문가 단아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