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예민한 상담자인데요

by 단아

문득 에세이를 읽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왜 읽지? 그냥 읽어왔기 때문에 이유를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아무래도 자본주의 부적응자라 효용이나 쓸모에 꽂혀있다 보니 독서의 근원까지 가버린 듯한데. 어물쩍 넘어가도 그만이지만 마음에 걸려버린 걸 지나치는 재주는 없다. 그러니 스스로에게 다시 묻는다. 에세이는 왜 읽는 것일까. 기꺼이 문학을 읽는 이유는 안전하게 타인의 삶과 감정을 체험하기 위함이라 믿는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등장인물과 동행하고 있으니 말이다. 에세이는 어떤가. 이야기보다는 화자의 시각이나 일상이 전면에 드러나있다. 실용과는 거리가 멀지만 읽는 사람들이 있다(나 포함).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다 최근 읽던 에세이 두 권을 뒤적거린다. 어떤 문장을 만난다. 찌르르하다. 아, 이런 문장을 만나기 위함이구나. 하나의 문장은 한 사람을 온전히 담고 있거나, 내 마음이 딱 이런데! 하는 만남을 중재한다. 이 것 하나만으로 에세이를 읽을 이유는 차고 넘친다.


그러니까 마음이 어떤지 잘 몰라서, 마음을 닮은 문장을 만나길 바라는 욕구가 있나 보다. 스스로를 설명할 언어를 찾을 때 변화가 시작된다 믿는다. 나 역시 그랬고, 상담실에서 함께한 많은 사람들도 그랬다. 심리상담이라는 건 어떤 측면에서 찾지 못한 언어를 만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마음을, 감정을, 생각을 조금 더 정확하게 표현하길 돕는다. 상담 서비스라는 것이 '상담자'가 매개하는 행위여서 각자 상담에 대한 시선, 가치관, 신념이 다양하다. 내 경우 너른 품이나 다정함 보다는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데 좀 더 집중한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어떤 감정이나 경험 때문에 힘든지 잘 모른다(나도 그랬다). 그러니 고유한 경험을 고유한 언어로 정리하는 건 반드시 필요하다.


함께한 내담자들은 '정확한 헤아림'에 만족을 표했다. 대화를 통해 어떤 감정과 생각을 자주 느끼고, 어떤 결을 가진 사람이구나를 면밀하게 살폈다. 그러다 보면 길이 보인다. 아, 여기엔 예민함이 큰 몫을 했다. 이왕 상담하는 사람으로 사는 거 쓸모 있고 싶었는데, 다정함의 품이나 그릇이 큰 편이 아니다 보니 대안이 필요했다. 그렇다면 정확하고 안전하게 표현해 주자. '마음이 힘들었겠네요.'도 좋지만 '늘 경계선에 머무른 느낌이라 힘들었겠어요.'가 더 좋겠다. 무엇이 힘들었는지를 정확히 읽어주고, 잘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야지. 좋은 에세이에서 딱 맞는 문장을 만나 감응하듯. 감응의 순간을 함께하는 일은 생각 보다 더 귀하고 의미 있는 일이었다. 한 사람은 하나의 세계를 갖고 있으니, 세계를 만나는 기쁨인 거다.


짐스러운 예민함이 쓸모의 자리를 찾아 보람을 선사하다니. 오래 살고 볼 일인걸. 이래서 일장일단이라는 말을 하는 건가. 예민함과 언저리의 감각에서 오래 헤매다 보니 나름의 짬바가 생긴 것일지도. 약점이라 여긴 게 약점이 아니게 돼버렸다. 예민함이 누군가의 세계를 넓히는 데 쓰일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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