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sp(Highly Sensitive Person; 매우 예민한 사람) 선구자인 일레인 아론, 일자 샌드의 책을 읽었을 때(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 센서티브) 고요한 내향형에 더 초점이 맞춰졌구나 싶었다. 그러니까 느리고 신중하며, 외부 자극에 민감하며, 자연을 사랑하는 정적인 사람들. 아무래도 서구적으로는 외향&사교성을 더 중시하니, '내향성의 재발견' 측면에서 서술된 게 아닐까. 하늘 아래 다 같은 사람이 없듯, hsp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자타공인 개복치인 나 또한 전통적인 hsp특성과 맞지 않는 부분이 당연히 있었다. 예를 들면 자연 안에서 큰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편이고, 호젓한 곳으로의 여행도 딱히 선호하지 않는다. 게다가 빠르게 해치우고 없애며 살아와 신중함의 미덕과는 거리감이 크다. 2차 사회화의 영향으로 사교적인 사람으로 가끔 오해받거나(가끔), 아! 흥미나 재미가 선택의 중요한 기준이 되기도 한다. 전통적 hsp와 약간의 엇박자가 있는 거다.
이 엇박자는 성격유형에서도 마찬가지. 내 mbti는 흔히 '씹프피'라 조롱받는 인프피(infp)다. 이 중 p(P, Perceiving; 인식-유연함&개방성 선호) 선호도가 굉장히 뚜렷해 j가 맥을 못 춘다. 전형적인 계획/체계 혐오자라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부터 내 mbti를 맞추는 걸 어려워했다. 특히 p로 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 흔한 다이어리도 안 쓰는데 말이다. '--tj'라는 오해를 받기 시작했다. 실제 인프피보다 덜 상냥하기도 하고 뭐. 좋지도 싫지도 않았다. 역시 선호경향은 실제 기능 수준과 늘 일치하는 건 아닌가 보다. 단지 한 번씩 팔자대로 살고 있지 않나? 잘못 살고 있나? 이런 느낌이 들기는 한다. 전형적인 유형에서 벗어난다는 얘기니까.
비단 mbti만 그런 게 아니다. 전공이 심리학이요 심리상담을 주된 업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평생 같은 일만 해야 한다는 것은 족쇄로 다가온다(물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근속이 길어지고 있지만 일단 넘어가자.). 예를 들어 20년 동안 매일 5 사례씩, 주 5일, '상담'만 하는 삶을 상상하면 호흡부터 가빠진다. 우리 업계에서 얘기하는 '진정한 상담자'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평가나 연구만 주야장천 하라고 해도 숨 막히는 건 매 한 가지. 후학 양성에 뜻이 있는 것도 아니다.
늘 중심에서 조금 비켜 서 있었다. 어떤 그룹에서도 '정답형 인간'으로 안착해본 일이 없다. 기꺼이 마이너를 택한달까. 흔히 말하는 반골 기질인가. 대문자 P는, '마땅히 이래야만 해'라는 당위를 거부하는 데 빛을 발했다. 자칫 반동분자로 찍히기 쉬웠다. 그래서 내색 않고 속으로 난리 부르스를 떠는 기술을 터득했다. 이게 내 개성 입네 하는 뻔뻔함도 갖추진 못했다. 개성을 갖다 붙이는 것도 머쓱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부적절감은 오랜 친구였다. 쉬운 길을 못 가는 팔자인 거다. 메이저의 흐름에 편승하면(그런 척이라도 하면) 사는 게 더 쉽다. 적어도 부적절감을 느낄 일은 적다. 그런데 그게 안 되는 거다. 환경에 맞추려는 노력도 얼마나 해봤겠나. 하지만 타고난 천성을 누르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일단 순하게 사는 거 실패했고, 진정한 상담자로 사는 것도 실패했다(찐 infp가 되려는 노력은 안 했다).
예민함은 부적절감의 한 꼭지였을 뿐이다. 심지어 예민함 안에서도 편안하지 못하다. 결국 나를 오래 지배한 건 경계 위에 서있는 듯한, 그 이상한 자기 감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