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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성극 아카이브 Nov 03. 2019

뮤지컬 아가사 - 1

이해랑 극장에서 홍익대 아트센터로, 넓어진 장소 만큼 복잡해진 서사.





  중년여성이 주인공을 맡는 뮤지컬이 몇 개나 될까? 그중에서 창작 뮤지컬은 몇 개나 있을까? 단언컨대 전체 뮤지컬 비율의 5%도 차지하지 못할 것이다. 중년 여성의 고뇌와 성장을 볼 수 있는 공연, 특히 뮤지컬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여성극 중에서도 가장 작은 파이를 차지하는 종류 중 하나이다. 덕분에 중년여성이 주연인 뮤지컬은 사실 올라만 온다면 극의 상태와 상관없이 감지덕지해야 할 수준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중년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고 어느 정도의 서사적 완성도와 좋은 넘버까지 겸비했던 뮤지컬이 있다. 바로 <아가사>이다.

소극장 <아가사>는 분명 힘이 있는 뮤지컬이었다.

  뮤지컬 <아가사>는 아시아브릿지컨텐츠의 “김수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14년 동국대 이해랑 예술극장에서 첫선을 보였다. 실제 아가사의 실종사건을 소재로 한 이야기 구성을 보여준다. 중년 여성 작가인 아가사를 압박하는 주위의 인물들과 아가사의 내적 고민을 11일간의 실종이라는 사건을 통해 설명한다.

  등장인물 레이몬드가 아가사를 추적하며 진실을 파헤치는 진행 구조는 추리소설의 기법과도 유사한 점이 있어 소재를 잘 드러내는 선택이었다. 또한 록적인 스타일의 음악에 탱고의 느낌을 더해 모든 장면 장면을 힘 있게 강조했다. 작은 공연장 안을 꽉 채우는 넘버와 강렬한 장면들은 관객들을 매혹시키기에 충분했다. 매력적인 넘버 또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소극장 <아가사>는 분명 힘이 있는 뮤지컬이었다. 단점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아가사의 독특한 색깔과 공연 자체에서 느껴지는 힘 때문에 많은 사랑을 받았다.


  소극장 <아가사>의 대부분의 문제점은 서사와 구성에 있었다. 분명 공연 자체에 관객을 압도시키는 힘이 있었다. 하지만 제대로 정돈되지 않은 서사 때문에 오는 모순이나 혼란이 공연의 대부분의 장면에 존재했다. 예를 들어, 베스가 낸시와 아치볼드의 불륜을 도와주기 위해 아가사에게 일정한 시간에 수면제가 담긴 홍차를 준다는 설정은 사실 흥미롭지도 않으며 신빙성도 없다. 로이의 정체 또한 의미가 하나로 모이지 않아 혼란스러웠다. 라비린토스와 독도 아가사를 기점으로 어느 정도 모이기는 했으나 느낌으로 알아차릴 정도의 수준이었다. 소극장 아가사는 좋게 말하면 여러 가능성을 열어둔 시작이었고 비판적으로 말하면 날것에 기댄 강렬함이었다.


  사실 아가사의 놀라운 점은 이 부분에 있다. 이미 초연에서 어느 정도 주목을 받은 뮤지컬임에도 대대적인 수정과 개편을 진행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가사>의 문제점이 대부분 사라졌다는 것이다.

 



대극장 아가사에서 가장 큰 변화를 보인 건 역시 서사 부분이다.

  2015년 홍익대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올라온 재연 <아가사>는 소극장 <아가사>와는 많은 부분이 달라져 있었다. 록 음악을 토대로 했던 넘버들은 기존의 색깔이 많이 지워졌다. 대신 더 많은 악기가 풍부하게 등장하면서 ‘대극장용 넘버’로 변신했지만, 넘버에 대한 호불호가 갈렸다. 특히 아가사의 시그니처였던 「독」넘버의 탱고장면이 빠지면서 아쉬움을 말하는 관객이 많았다. 무대장치와 세트도 새로 바뀌었다. 프레스콜리 끝나기 전 까지 무대의 구조와 소품이 계속해서 추가되거나 삭제 됐다. 그러면서 잦은 암전이 있었던 극의 진행도 최대한 암전이 없는 방향으로 변했다. 대극장 아가사에서 가장 큰 변화를 보인 건 역시 서사 부분이다. 가장 애매한 부분이었던 로이의 의미가 정확하게 정해졌고 아가사를 기준으로 레이몬드와 로이가 각각 붉은 실과 독으로 정확히 배치되어 균형을 이루었다.


<아가사>는 복잡한 시간순서와 서사로도 유명했는데, 간단하게 정리해보면 이렇다.


아가사는 주변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티타임 시간에 독을 타 주변 사람들을 독살할 계획을 세운다. 아가사와 아가사 주변인들이 본명 그대로 등장하는 아가사의 미발표 원고, 미궁 속의 티타임처럼 말이다. 그런데 평소 아가사가 원고를 미리 보여줄 정도로 아가사와 친하게 지내던 옆집 소년 레이몬드는 결말이 적혀있지 않은 미궁속의 티타임을 보고, 이 소설 속 티타임 사건의 범인이 아가사 크리스티라는 걸 맞춰버린다. 아가사의 완벽 범죄는 실행도 전에 레이몬드에 의해 들켜버렸다. 그 후에 아가사는 자신의 차를 몰고 나가 실종된다.
레이몬드는 아가사를 찾기 위해 추리를 한다. 곧 아가사를 괴롭혔던 인물들과 아가사의 실종의 원인에 다가간다. 그 후에 아가사의 뒤를 쫓아 아가사가 묵고 있는 호텔까지 갔지만, 레이몬드는 그곳에서 아가사의 미완성 원고 ‘미궁 속의 티타임’ 뒷부분을 읽는다. 레이몬드는 원고의 뒷부분을 읽은 뒤 자신 또한 아가사를 괴롭히는 일에 동조했고, 아가사가 자신을 원망한다고 생각한다. 레이몬드는 그 사실에 충격을 먹고 기억을 잃는다. 아가사 또한 남편도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로 돌아온다. 그렇게 둘은 멀어진다.
시간이 흘러 약 이십 년 뒤, 레이몬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악몽을 계속 꾼다. 그 악몽의 원인이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레이몬드는 이십 년 만에 아가사에게 편지를 쓴다. 그들은 그렇게 다시 조우한다. 노년의 아가사는 레이몬드에게 그날의 일에 대해서, 그리고 자신과 로이에 대해서 말해준다.


  당시의 아가사는 지속적인 압박에 시달렸다. 결국 아가사의 엄마가 죽고 아가사가 약해진 틈을 타 아가사 내면 속 괴물, 즉 로이가 아가사의 눈앞에 나타난다. 결국 아가사는 로이에게 자신을 좀 먹히고 괴물이 되기 직전까지 간다. 그렇기 때문에 아가사는 모두를 독살할 계획을 세우게 된 것이다. 하지만 레이몬드가 의도치 않게 아가사의 완전범죄를 알아차리면서 다시 아가사의 범죄를 막고 로이를 제지한다. 하지만 아가사는 자신 안의 괴물, 즉 자기 자신의 이면을 이미 마주했다. 때문에 그것과 결판을 지어야 했다. 결국 아가사는 로이를 다시 미궁 속으로 돌려보내는 데에 성공한다.

  아가사는 이 모든 것들을 추슬러야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차를 몰고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난 것이다. 아가사는 완전범죄가 실패한 뒤에 차를 몰고 떠나 로이와 결판을 짓고 로이를 ‘죽이고’ 돌아왔다.극 중에서는 아가사 실종 이후 호텔에서 로이가 만난 것처럼 연출된다.


  뮤지컬 <아가사>에는 크게 두 개의 타임라인이 있다. 하나는 아가사의 시점에서 호텔에서 벌어지는 로이와의 만남이고, 다른 하나는 실종된 아가사를 찾는 레이몬드가 아가사의 주변 인물을 탐색하며 진실을 밝히는 과정이다. 공연, 특히 넘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뮤지컬에서 복잡한 서사구조를 배치 하는 건 굉장히 어렵고 도전적인 일이다. <아가사>는 뮤지컬이라는 장르 기준으로 상당히 복잡한 서사구조를 띄게 됐다. 덕분에 두어 번 보는 것만으로는 관객은 <아가사> 전체의 스토리 라인을 따라가지 못한다. 이건 대극장 <아가사>의 최대 단점이었다. 하지만 이 서사구조를 이용해 극은 아가사가 받고 있는 여러 압박을 효율적으로 묘사했다.

  극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아가사에게 타인과의 대화란 유쾌한 일이 아니다. 아가사는 자신의 소설 속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지만 아가사의 말을 진심으로 들어주는 사람은 옆집 꼬마아이 레이몬드 정도다. ‘정의와 평화라는 그런 말들 영원한 사랑처럼 너무 멀지만 그래도 난 소중하다 생각해.’‘여자가 추리소설을 쓰다니 정신이 나간 것 아니야’ ‘혹시 알아요? 정말 죽여봤을지.’ ‘좀 더 잔혹해야 볼 맛이 나죠.’ 같은 말들을 피해 아가사는 떠난다. 꿈속으로 떠나고 싶다고 한다. 현실의 압박에서 아가사는 완벽히 벗어나길 갈구한다. 아가사가 독을 이용해 스스로의 목숨을 끊으려 한 순간, 로이가 아가사의 앞에 나타난다.


  로이는 아가사 안에 내재된 이면이다. 아가사가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삶을 끝내려 한 순간, 아가사는 자기 자신에 대한 방어기재로 내면 속 괴물을 자신의 눈앞까지 꺼내버렸다. 아가사의 슬픔과 분노를 먹고 자란 로이는 그렇게 아가사의 앞에 나타난다.




로이는 그냥 아가사 내면 어딘가에 있는 게 아니다. 아가사의 미궁 속에 있다.


아가사가 숨겨둔 미노타우로스, 로이.

 

 극 중에서 로이는 독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아가사는 독을 이중적 의미로 정의한다. ‘적게 쓰이면 약, 많이 쓰이면 독’. 그게 아가사가 독이라는 물질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이처럼 로이라는 존재는 아가사에게 부정적이기만한 존재는 아니다. 아가사를 살 게 하고, 숨 쉬게 하며, 아가사를 지탱시킨 마음속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아가사가 다룰 수만 있다면 로이는 아가사에게 아주 좋은 각성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아가사가 받는 압박이 최고조에 달하자, 결국 아가사가 주는 압박과 스트레스, 그리고 우울을 영양분 삼아 성장한 로이는 아가사가 감당할 수 없는 만큼 커져 버렸다.

  ‘평범한 사람이 왜 살인자가 되나. 복수를 꿈꾸는 순간 모든 게 변하니까. 고통 받는 자들의 천국은 아마 암흑일 거야.’ 이 말에서 복수를 꿈꾸는 자는 아가사가 아니다. 아가사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 타인에 대한 원망 대신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처럼 보였던 아가사는 사실 내면 깊숙한 곳에서 모든 분노와 원망을 차곡차곡 쌓아 로이에게 던져주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로이는 아가사는 꿈꾸지 않았던 복수를 꿈꾼다.

  아가사는 로이를 끊임없이 부정해왔다. 아가사의 ‘행복한 꿈 속’에 로이가 찾아올 때마다 아가사는 ‘도망갔다.’라고 로이는 말한다. 로이는 그냥 아가사 내면 어딘가에 있는 게 아니다. 아가사의 미궁 속에 있다. 아가사조차 한 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깊은 미궁에 아가사는 자신이 가장 보고 싶지 않은 자기 자신의 모습을 숨겼다. 하지만 괴물이 너무 커지고 아가사가 약해졌을 때, 마치 무의식이 불규칙적으로 수면 위로 튀어나오듯 괴물은 미궁을 넘어 아가사 앞에 섰다. 괴물이 나오자 아가사와 괴물이 있는 곳 전체가 하나의 미궁이 되었다. 아가사는 자신이 키워둔 미궁과 괴물에 갇히고 만다.


  로이는 아가사를 극 중 내내 끊임없이 자극한다. 아가사의 원고를 마치 편집장처럼 마음대로 뜯어고치고, 사랑에 대한 의미를 곡해한다. 그 과정에서 아가사는 내면의 고통과 마주한다. ‘넌 작가로도 여자로도 완전히 끝났어.’ 그 말에 아가사는 결국 자기 자신 안에도 독이 있었음을, 복수를 원했다는 걸 인정한다.  자기 자신이 내면 안에서 키워왔던 괴물의 존재조차 몰랐던 아가사는, 그 ‘독’을 인정하고 복수를 꿈꾸게 된 것이다. 로이가 자기 자신 안에 있던 괴물, 즉 자신이란 걸 깨닫고 나서 아가사는 결국 로이를 수용한다. 그리고 모두를 잠들게 할 티타임을 계획한다. 괴물은 아가사의 삶에 긍정적 원동력을 하기도 했지만 결국 아가사는 자신의 내면이라는 미궁 안에서 길을 잃었다. 그 미궁에서 아가사의 해답점이 된 레이몬드가 없었다면 아가사는 로이, 즉 자신의 내면이 바라는 대로 모두를 죽여버렸을지도 모른다.


로이는 아가사의 깊은 내면, 즉 미궁으로 다시 들어갈뿐 절대 없어지는 존재가 아니다.

  아가사는 로이와 정면으로 대치한다. 그 후 로이가 아가사에게서 떠나 다시 미궁속으로 들어가면서 하는 말이 있다. ‘나는 언제나 네 안에 있어.’ 로이는 아가사의 깊은 내면, 즉 미궁으로 다시 들어갈뿐 절대 없어지는 존재가 아니다. 하지만 그 과정마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아가사는 로이, 즉 괴물에게 잠식당한 상태였다. 그 상황에서 아가사는 괴물을 찌르고 붉은 실을 따라 미궁 속에서 나와야 했다. 아가사는 괴물 대신 자기 자신을 겨눈다. 괴물 또한 아가사의 내면이니 본체인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괴물을 저지하겠다는 뜻이다. 아가사를 누구보다 사랑한(로이가 곧 아가사이면서, 로이는 아가사 안에서 태어난 피조물의 위치에 있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로이의 사랑은 맹목적이면서 자기애의 성격을 띈다.) 로이는 아가사를 지켜내기 위해 스스로 칼을 잡고 미궁 속으로 들어간다. 처음 아가사 앞에 나타난 이유가 아가사를 살리기 위해서였던 것처럼 다시 한 번 아가사를 살리기 위해 선택을 한다.


그렇게 아가사는 괴물을 찔렀다. 그리고 레이몬드, 즉 붉은 실을 잡고 미궁 밖으로 나온다.





관객은 레이몬드와 함께 <아가사>를 따라 미궁 속으로 들어간다. 사진은 소극장 아가사.


모든 연결고리이자 <아가사>의 붉은 실, 레이몬드.

 

 레이몬드는 라비린토스에서 아가사를 나오게 해주는 붉은 실이다. 아가사와 로이를 향해 다가가는 여정은 곧 추리소설의 추리 방식과 같다. 하나의 사건, 즉 아가사의 살인-그게 자기 자신을 죽이는 일이던 남을 죽이는 일이던-을 향해 모이는 인물들과 그 동기를 추적하는 레이몬드의 여정은 아가사를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레이몬드 자체가 붉은 실이다. 아가사를 미궁에서 나오게 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단서이기 때문에 레이몬드는 극중 모든 등장인물을 통틀어 아가사에게 가장 우호적이다. 심지어 아가사 자기 자신인 로이보다 말이다. (로이가 아가사에게 보이는 사랑은 복합적이다. 그리고 그 안에 집착과 갈구도 존재한다. 반면 레이몬드가 아가사에 보이는 애정은 올곧은 믿음에 가깝다.)

  결국 극 중 두개의 타임라인중 하나, 레이몬드가 아가사를 찾아가는 과정은 곧 레이몬드가 미궁 속의 티타임을 추리해가는(읽어나가는)과정이다. 그리고 관객은 레이몬드와 함께 <아가사>를 따라 미궁 속으로 들어간다. 극이 진행 될수록 레이몬드와 함께 관객 또한 이야기의 가장 중심으로 다가간다.

  이를 통해 관객은 아가사의 동기, 즉 아가사를 압박하고 몰아붙이던 주변 인물과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아가사를 누구보다 위하는 척하지만 사실 아가사보다 친딸인 낸시가 더 중요했던 하녀 베스, 아가사를 질투해서 아가사의 뒤를 캐고 레이몬드를 이용해 아가사의 소설을 빼돌리던 기자 폴, 아가사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자극적인 살인으로 판매 부수가 높아지길 바라는 뉴먼, 마지막으로 불륜을 저지르던 아치볼드. 각자의 상황을 설명하고 이들이 숨기는 게 있다는 걸 우리는 레이몬드의 시선으로 관람하게 된다. 아가사가 로이 때문에 상기하게 되는 이들의 모습과, 레이몬드의 눈으로 바라보는 주변인의 시선이 병치 되면서 모든 등장인물이 작은 스토리를 갖게 되기도 하다.

  이처럼 레이몬드가 맡은 역할은 굉장히 다양하다. 관객이 극의 살인사건, 즉 아가사에게 다가가게 하는 붉은 실이면서, 극 안에서 아가사를 미궁에서 빠져나오게 해주는 붉은 실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레이몬드 자신이 미궁에 갇히게 되는 사건이 된다. 이 때문에 뮤지컬 아가사의 초반과 후반, 성인이 된 레이몬드가 아가사를 찾아가 사건의 전말을 듣는다는 가장 바깥의 이야기를 구축하는 역할을 한다.

아가사는 미궁 속에서 길을 잃은 레이몬드에게 다시 손을 뻗는다.

  아가사는 레이몬드에게 추리소설을 미궁 속에서 나오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하나의 살인을 향해 다가가 는 소설의 서사, 그리고 중심에 다가갔다 다시 나오기 위해 중요한 단서와 살인의 동기를 붉은 실에 비유했다. 추리소설을 쓰는 것은 곧 미궁, 라비린토스와 같다. 그리고 그 라비린토스는 곧 우리의 내면을 탐색하는 일과 같다. 중심에 모두 자신의 내면, 즉 괴물을 가둬둔다. 그 괴물은 아가사의 로이처럼 살인충동이나 분노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숨겨야하는 기억이나 트라우마일 수도 있으며, 자기 자신도 모르는 비밀일 수도 있다.

  그게 뭔지는 미궁 속으로 들어가 봐야 알 수 있다. 우리는 미궁 속을 꾸준히 지속적해서 들여다봐야 한다. 아가사의 로이처럼 그 괴물이 언제 커져서 우리를 집어삼키려 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괴물을 긍정하고 그것을 나 자신으로 받아들이고, 그 괴물을 다룰 줄 아는 것, 그걸 위해 우리들은 우리의 내면을 계속해서 바라보고, 혹시 침전물이 있는지, 괴물이 어떤 상태인지 엿보기 위해 계속해서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붉은 실이 필요하다. 나를 지탱해주고 다시 출구로 이끌어줄 작은 단서 말이다. 뮤지컬 <아가사>는 복잡한 서사구조를 통해 자기 내면을 탐색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의미 있는 주제를 던진다.




  <아가사>의 스토리라인이 흥미로운 이유는 미궁 속에 갇힌 게 아가사 한 명만이 아니라는 부분에 있다. 여기서 우리는 뮤지컬 아가사의 첫 장면을 떠올려 봐야 한다. 레이몬드는 악몽에 시달린다. 그 악몽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으려 한다. 그게 아가사에게 연락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아가사의 실종이 아가사 자신에게는 내면의 괴물을 조우하고 그걸 다루는 방법을 알게 된 시간이었다면 레이몬드에게는 자신의 미궁 안에 사실을 꽁꽁 숨기는 다른 괴물을 만든 사건이었다. 결국 레이몬드는 아가사를 만나 그 모든 얘기를 듣고 자신이 왜 기억을 잃었는지, 자신이 미궁 안에 숨겨두었던 게 뭔지 알게 된다.

  아가사의 비밀을 의도치 않게 팔아넘기고 자신이 가장 믿었던 아가사를 스스로의 손으로 곤란에 처하게 한 건 당시의 레이몬드에겐 감당할 수 없는 충격이었다. 하지만 충격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아가사가 로이에게 잠식당했을 때 레이몬드는 아가사를 찾아 호텔에 와서 미완성 원고 미궁속의 티타임 결말을 읽고 만 것이다. 아가사가 아닌 로이가 쓴 소설의 결말에서 레이몬드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끔찍하게 살해당한다. 레이몬드는 자기 자신이 괴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레이몬드는 죄책과 충격에 기억을 잃는다. 레이몬드의 맞지 않는 기억과 반복되는 악몽의 원인은 이것이다.

  아가사는 극 후반부에서 레이몬드에게 말한다. 이젠 내가 너의 붉은 실이 되어주겠다고. 레이몬드의 행동이 아가사를 미궁 안에서 빠져나오게 했듯, 아가사는 미궁 속에서 길을 잃은 레이몬드에게 다시 손을 뻗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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