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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딸랜드 Jan 06. 2016

네덜란드의 헤이온와이 Bredevoort 책마을

 책마을을 찾아간 글밭 여행에서 공정여행을 품고 배우다

엄마는 빠릿빠릿하고 계산이 능하고 수완이 좋고 이런 것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좀 느리고 약하고 허술하고 허점 투정이 이고 누군가의 도움으로 같이 살아가야 하는 이런 사람에 가깝고 또 이런 사람들과 부대끼는 것이 좋다.

그런 엄마가 너희와 오늘 함께 간 곳은 한적하다 못해 고요하고 케케묵은 흔적이 여기저기 묻어있는 곳.

별다르게 할 일도 없고, 화려한 볼거리도 없고, 밋밋한 일상에 약간의 반짝거림을 준 하루 같은 곳.
소소한 움직임이나 의미가 있는 정적으로 보이나 동적인 요소들이 곳곳에 박혀있던 작은 마을에 갔다.

오래된 고서부터 최근 도록까지 무심한듯 함께 진열되어 있는 풍경이 그저 좋다

네덜란드 동쪽 즉 독일 접경지대에 있는 작은 마을 브레이더포르트(bredevoort)는 여느 도시처럼 장터가 열리는 곳이다. 그런데 우리 동네처럼 야채 과일 고기 햄 치즈 등을 파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헌책들을 파는 곳. 너희들에게 예쁜 책마을에 가자고 했을 때 순순히 따라가면서도 '거기 가서  뭐해'라고 묻던  너희들의 질문에 단숨에 대답하기가 곤란했었지. 예쁜 마을에 가서 오래된 책 중에 맘에 드는 책 사러 가자 하고 대강 얼러서 간 곳이다.

무인판매대,  1유로에 가져갈 수 있는 책들 . 책과 양심을 파는 곳이다.


헌책만 파는 마을, 헌책방 장터가 열리는 곳,

좀 더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하는 말로 표현하면 '책마을' 정도이겠지


헤이온와이  (사진출처 - 구글 이미지)

 영국의 동남부 웨일스 지방에 유명한  오래된 헌책방 마을이 있어. 헤이온와이(Hay - on - Wye)라고 부르지. 원래 이 곳은 탄광촌이었다고 한다. 와이강을  끼고도는 마을이라 헤이온와이라는 마을 이름이 붙었다고 그런다. 마치 우리나라 하회마을 같이.  이 오래되고 쓸모없어진 탄광촌을 세계적인 관광지로 만든 배경에는 남들이 생각지 못한 아이디어로 자신의 인생을 보낸 리처드 부스라는 사람의 열정이 있단다. 옥스퍼드 대학 출신들이 평범하게 향하여 나가던 발걸음을 딴 데로 돌린 것이지. 전 세계를 돌며 수만수천 권의 헌책을 모아 헌책방 책마을을 일구어 낸 것은 블루오션을 개척한 것으로 설명할 수 있겠지.



그런 책마을이 네덜란드에도 있다는 것을 알고 너희들을 데려간 것이란다.  여느 동네와 별다른 것이 없어 보이는 작고 아담한 동네. 너희들의 수다와 웃음소리가 제일 큰 소음이었던 조용한 동네.  이 동네 별칭이 더치 헤이온와이(Dutch Hay -on - wye)란다.  이 중세마을은 1993년에 책마을로 변신했단다. 독일과 협력하여 이루어진 책장터야. 그래서 독일 사람들도 많이 오고, 독일어로 된 책도 많지. 매월 셋째 주 토요일에는 특별한 주제로 책장터가 열리고,  상설적인 헌책방이 열 개 정도 있어.

각 가정의 뒷마당의 모습도 오래된 책을 닮았다.

그중에서 우린 대여섯 군데 들어가보았지. 곳곳에 골동품을 파는 앤틱 가게가 있고... 뭐 중고물품을 모아 파는 곳이지. 우리 동네에서 중고장터를 많이 보아서 그런지 이러한 앤틱 가게를 이 곳에서 보는 것이 낯설지는 않지.


 아뜰리에가 군데군데 있고 사진전도 열리고 전시회도 열리고 책장터가 서는 날에는 책 콘서트나 문화행사가 이루어진단다. 유럽의 책마을 들은 대개 비슷하게 행사를 하는 것 같아. 저자와의 만남이 있고, 토론회가 있고, 문화공연이 있고 기회가 되면 다른 책마을도 가면 좋겠구나. 마을 중심부 큰 나무 앞에 자그마한 광장을 중심으로 헌책방, 영어 책방, 독일어 책방, 고전어 책방 등이 구석구석 있었지?

 
 지나가다가 얼핏 보았던 여자 동상은 램브란트의 두 번째 아내인 헨드리케의 입상이랜다.  헨드리케는 이 곳에서 출생하여 램브란트의 하녀로 들어가면서 헤이그로 갔지.  한 시대의 위대한 화가로 자리매김한 램브란트를 악조건 속에서도 사랑하고 내조한 그녀를 기념하는 것인가 보다.  일종의 주홍글씨 같은 낙인을 받아 생활하면서도 끝까지 램브란트를 후원하고 지켜주고 사랑해 준 위대한 화가에 걸맞은 뮤즈.  그래서 램브란트는 헨드리케를 그림으로 그 사랑을 보답했나 봐.  헌책방 구석구석 램브란트의 책이 많은 것도 그 이유 중의 하나이겠지?

관광안내소 중심으로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위치한 책방 앞에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유유자적하게 이 책 저 책 고르고 있구나. 장터 옆에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도 하거나 차를 마시기도 하고. 여기엔 책만  오래된 것이 아니라 관광안내소에 계신 분들도 할아버지 할머니이셨어. 서점을 운영하시는 분들도 동화책 주인공 같은  할아버지.

 서점 앞에서 문지기 하는 고양이. 여행 가방에 책을  하나둘씩 담던 독일 사람들. 엄마 아빠랑 함께 책을 고르던 꼬맹이들. 호객행위로 시끌벅적한 시장의 모습이 아닌 누가 무엇을 하든, 누가 어떤 책을 사든, 상관없이 진열되어 있는 책들과 장사와 상관없는 사람처럼 보이는 맘 좋은 책 주인들(물론 모두 그렇지는 않지  그중엔 진짜 장사꾼도 있지 이것이 세상이지 ).

겉에서 보면 자그마한 입구인데 들어가면 미로 찾기 하듯 이어져있는 책 코너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다락방에 온통 가득한 책들. 이 다락방에서 너희들은 숨바꼭질 놀이를 했지. 우리 전에 살던 집 계단보다 더 무섭다고 말하며 이 곳 저 곳 내 집 돌아다니듯 구경하던 너희들에게 그저 손주들 바라보는 눈길로 바라보아주신 후덕한 할아버지.  화랑을 운영하시면서 부담 없이 구경하라고 하시고 작품 안내도 하시던 그 친절함. 뭔가를 사도록 하는 주인가게의 무언의 압력도 느낄 수 없는 자유함과 여유로움! 책방과 책 카페를 동시에 운영하는 한 책방에서 우린 화장실도 이용하면서  기분 좋은 잠시 동안의 만남을 허락한 책 주인아저씨도 인상적이었단다.

 뭔가 소장가치가 있는 책이 있을까 하고 엄마는 두리번거리고 너희들은 요즘 관심사 요리에 관한 책을 고르고 있었지. 어쩌다 보니 둘째 너에게만 책을 사주게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엄마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 너희들의 선택에 좀 더 배려해 주었어야 했는데 말이지.

 
소비에 위축되다시피 늘 아껴 쓰는 생활에 젖어서 꼭 사야 할 것이 아니면 안 사는 생활. 이 곳에 오느라 이미 많이 투자한 교통비 때문에 절로 아끼는 마음이 샘솟는 엄마였기에 선뜻 너희들이 고른 모든 책을 사줄 수가 없었다. 너희들의 투정 같은 한마디가 오래도록 울림이 되는구나
 '왜 내가 고른 것은 안 사?'

단지 안 사준 것에 대한 미안함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는 책을 사는 것이 맞겠다 싶었다. 그래 너희들의 심사숙고한 결정을 존중했어야 했나 보다. 첫째 네가 고른 책은 너무 평범하고 도서관에서도 빌려볼 수 있는 것이었고 셋째 넷째 너희들이 사자고 한 책도 집에 있는 그림책과 비슷해서 다음에 사자고 말했구나

공정무역이라고 들어봤지? 그 개념의 평행선상에 공정여행이 있어. 여행하면서 쓰는 돈이 어디로 흘러가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진 여행.
오늘 거기서 책을 사는 것은 책마을을 사는 것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책마을의 가치가 무엇인지 아니? 이는 오래된 책의 가치만을 말하지 않아.


사라져가는 책. 사멸 소멸 또는 잊혀 가는 책을 되살려 놓는데 의미가 있지. 반듯하고 세련되고 편집이 잘 된 요즘의 책에서는 느낄 수 없는 오래된 책 향기에서 발산되는 권위스러운 아우라의 향취가 있지. 지적 허영심보다는 지적 향수를 가지게 하고 고전의 맛을 슬쩍 맛볼 수 있는 발효된 향기를 품은 헌책들. 옛 주인과의 만남을 정리하고 새 주인을 기다리는  책들. 책도 인생인가 봐.

그런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일구어가는 책마을!. 대부분의 유럽의 책마을은 그렇게 생겨났단다. 마을 사람들의 생계이기도 하겠지만 마을 사람들의 자존심이고 자랑인 것이지. 아까 관광안내소에서의 할아버지들 책방에 계시던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서 그런 것을 느낄 수 있었지. 흔히 시장에서 볼 수 있는 싸구려 흥정이 아니라 품격을 가진 거래라고 보면 좋겠다.
 
서로가 서로의 가치를 존중해주는 만남.  그래서 내가 쓰는 돈이 의미 있어지는 활동. 먼지 풀풀 나는 고물상 같은 서점이 아니라 고서를 잘 보관해서 추억과 가치관을 전시하는 책방. 책마을의 정서를 팔고 책마을의 역사를 팔고 책마을의 정신을 팔던.

 

네덜란드 아니 유럽엔 이런 전통이 많지. 마을 사람들이 주인이 되어 축제를 하고, 그 마을의 색깔을 점점 분명하게 만드는 주체의식. 지역색이 아니라 다소 건강한 지역감정. 자기 고장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으로 키워가는 마을들.


우리나라에도 이런 책마을이 있단다. 우리나라 파주에 있는 헤이리 마을도 헤이온와이를  벤치 마킹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 아직 가보지는 못했지만 파주 출판단지, 파주 책마을, 파주 헤이리 마을은 부디 상업적으로만 변질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세상에는 뜻을 가진 사람들이 의외로 많단다. 철거되어 사라져가는 청계천 헌책방을 살리고자 파주 출판 단지를 만들기 시작한 사람들처럼. 엉뚱한 생각처럼 보이는 아이디어로 작은 폐광촌 마을을 세계적인 관광지로 만들었던 리처드 부스처럼.

이곳 시골 마을도- 아마도 대부분 유럽의 책마을들이 그럴지도 모르겠다-  마을을 살리고자 생각해 낸 문화사업의 일환으로 책마을을 가꾸어가고 사라져가는 것의 안타까움을 되살려 놓고자 과거를 현재로 붙잡아 미래를 여는 공간으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책만 살리는 것이 아니라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까지 살려 놓은 것이지.

묵혀두는 과거는 그냥 묵혀진다. 적절한 때에 끄집어내서 새로운 요리법으로 옛맛을 잘 살려야 한다. 무턱대고 오래된 것은 다 골동품으로 보면 안 된다.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오래된 것을 캐내야 하고, 때로는 의미가 묻혀 있던 것을 새롭게 덧입히는 일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몫이다. 이는 우리가 고전을 읽는 이유와도 맛 물린단다.

동네마다 한 두개씩 남아있는 옛모습의 풍차


                                                                  -2015년 5월 어느 날을 추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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