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이들의 은밀하고 감추어진 욕망까지 읽어내게 하는 DOK도서관
아름다운 이야기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다.
그 아름다운 이야기를 나누고 공유하는 것이 핵심이다.
우물에서 길어온 맑고 차가운 냉수 한 사발 들이켰을 때의 감정을 가득 담아낸 모토다.
이런 모토를 내걸고 운영되는 생수 같은 도서관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도시 중의 하나인 델프트에는 아름다운 것들로 넘쳐나는데 그곳에는 아름답기도 하지만 혁신의 아이콘이라 불리는 DOK 중앙도서관이 있다.
찾아가기도 쉽다. 골목을 비껴갈 때마다 나타나는 이정표가 있어 찾기도 쉽다.
하지만 네덜란드를 비롯한 유럽 도시의 공통적인 도심 구조를 이해하면 더더욱 찾기가 쉽다.
아무리 처음 가보는 유럽 도시일지라도 일단 광장 또는 시청 앞에 가면 뭔가가 있을 거야라는 기정사실에 가까운 추측을 하고 가보면 분명히 뭔가가 잔뜩 몰려있다.
도서관 주변 풍경, 영화관과 상가를 마주하고 있다. 곳곳에 있는 자전거 보관소
토요일마다 장터가 열리는 광장에 이르기 직전에 위치한 DOK도서관 앞에는 영화관이 있다.
얼핏 보면 주상복합건물처럼 보이는 도서관. 애초부터 주상복합으로 지은 건물이 아니라 기존의 건물에 덧대어 새로 증축한 도서관이다. 용광로 건물이었던 Hoogoven 건물의 일부가 도서관이 된 것이다.
DOK Architecten 건축회사가 디자인 한 이 도서관 건물은 이전의 모습을 그대로 노출한다. 문화 및 미디어센터와 공공 공간을 구축하고 상점, 레스토랑, 카페, 아파트, 자전거 보관소를 동시에 수용하는 거대 복합 건물로 재탄생되었다. 눈에 띄는 2m 높이의 투명한 유리 외관으로 인해 도서관 입구를 찾는 이에게는 반가운 징표가 되는 동시에 안을 들여다보고 싶은 호기심을 갖게 만드는 외장 데코이다.
도서관 안에 들어서자마자 펼쳐지는 청록빛을 머금은 푸른색의 계단, 난간과 유리벽, 유리 지붕 때문에 그야말로 눈과 마음이 차가운 생수를 마신 것처럼 경쾌해진다. 안내데스크가 있는 1층의 다소 어두 워보이는 벽돌색은 옛 건물의 자취라 여겨진다. 반면 위층의 상큼한 주황색과 대비되는 청록빛 파란색은 세련되었다는 말로도 표현 못할 색감의 어우러짐이다. 한마디로 매력적이다.
左 현관에서 로비로 이어지는 곳에 도서반납대가 있다 右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
도서관 1층(여기서는 0층이라 부름)에는 그림과 사진을 전시하는 공간, WIFI 를 연결하여 사용하는 로비
아이들 책이 꽂혀있는 초록 책장도 인상적이다.
네덜란드에는 별도의 어린이 도서관이 없다. 공공도서관에 이미 어린이 도서 코너가 훌륭하기 때문이다. 한 층 혹은 두 층 전체가 어린이와 청소년 책들을 위한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이 DOK도서관에서도 역시 영아, 어린이, 청소년을 위한 책 공간이 넓다. 심지어 게임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도서관은 책을 매개로 여러 가지 지적 문화생활의 허브 역할을 하는 장소다.
영아부터 청소년을 위한 서적이 있는 공간, 별도의 공간도 있고 장난감이 있는 곳도 있다.
어려서부터 자신과 이웃들의 진솔하고 꾸밈없는 삶의 모습이 책이자 인생 교과서라는 것을 배우는 현장이다. 도서관은 그러한 공간을 자연스럽게 유도하고 있다.
DOK도서관이 지향하는 바다.
그래서 이 도서관에 대한 지침이 남다르게 다가온다. 아름다운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하나하나의 인격을 존중하고 그들이 모여 사는 사회를 긍정한다.
있는 모습 그대로를 노출하는 것에 두려움이 없다. 잘 관리를 하고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노력하지만 겉모습에만 치우친 과한 노력은 하지 않으려 한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행사를 할 때마다 아이들이 준비하는 공연이나 발표를 보러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다.
참 못한다. 속된 표현으로 '에게게~~ 저걸 발표라고 하나?' 연습 안 하고 그냥 발표해도 이 정도 하겠다'
이런 생각이 들 정도이다.
준비 의상도 조금 신경 쓴 정도이지 흔한 표현으로 번쩍번쩍한 압도적인 의상은 별로 없다.
평소의 모습 그대로에 분위기에 맞는 복장을 갖추어 입은 채 발표 거리를 준비하여 보여준다.
중간에 아이들이 실수해도 혹은 어설프게 발표해도
심지어 발표 중간에 어색한 공백이 생겨도
지켜보는 부모와 할머니 할아버지 친척들 어느 누구도 뭐라 하지 않는다.
기다려준다. 바라보아준다. 박수를 쳐주고 격려해준다. 예의상 그러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응원해준다.
존재(being) 자체에 대한 무한 신뢰와 응원이다.
뭔가 해낸 것(doing)에 대한 과도한 관심과 칭찬이 아니다.
그렇기에 결과를 알려주기 위해 누군가에게 보고하기 위해 절실하게 애쓰지 않는다. 이러한 삶의 태도를 절로 배우고 익히고 자기 삶에 적용한다. 부끄럽거나 잘못한 것에 대해 솔직하게 시인하고 책임지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언어와 행동 습관을 갖는 것에 주력한다. 숨기는 것이 오히려 부끄럽고 더 책임이 크다는 것을 배운다.
이러한 삶의 태도가 건축에도 묻어난다는 것이 놀랍다.
전쟁의 상흔, 폐허가 된 흔적, 숨기고 싶은 과거 유물들을 고스란히 전시하고 기록하고 내보여준다.
이 건물의 과거를 보여주는 것에 대해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숨은 의미를 발굴하여 계승하고 기억하고 보존하는 것을 디자인한다. 그것을 설계하여 건축한다.
유럽의 수많은 박물관들의 과거 사용 용도가 얼마나 다양하던가?
방직공장, 기차역, 공장, 탄광시설 이러한 건물들을 폐기 처분하거나 허물어버리지 않고 과거 흔적을 잘 살피고 거기에 새로운 건물의 이미지를 덮어 씌운다. 그러한 박물관들이 유럽 도처에 널려있다.
한창 델프트의 도시개발이 이루어진 무렵인 1900년대 말부터 함께 델프트 시민들은 함께 소통하고 즐거워할 도서관을 건립하는 것에 자발적으로 움직였다. 도서관 직원부터 자원봉사자, 도서관을 이용하는 시민들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한마음으로 좋은 도서관을 만들기에 주력했다. 네덜란드 내에서도 가장 획기적인 도서관이라 불리는 이유는 문화와 미디어의 중심이 되어 교육과 여가를 충족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정착화했다. 영화나 음악을 즐기는 것뿐 아니라 컴퓨터 게임, 전자게임을 도서관에서 할 수 있도록 놀이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지금이야 이러한 체계나 프로그램이 익숙하고 당연시될 수 있지만 1900년대 말에 이러한 획기적인 생각을 한다는 것은 혁명과도 같았을 것이다.
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 아이들은 오락을 하기 위해 오락실을 드나들었다. 결코 밝고 화사한 양지에 위치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음지는 아니지만 모든 이에게 열려있고 환영받는 곳은 아니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들의 발상은 아주 놀라운 것이다.
게임을 공공장소로 이끌어 내어 건전한 게임문화를 주도하겠다는 것이다. 종종 도서관에서 게임 대회를 하여 우승자에게 상금을 주는 이벤트도 열리는 도서관도 있다(예; 로테르담 공공도서관).
이 도서관이 획기적이라고 볼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 과거 나의 학창 시절을 비교해 볼 때 - 개인적이거나 소규모적인 혹은 폐쇄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을 공적인 장소로 끌어내었다는 것이다.
도서관 2층에서 진행되는 미술프로그램, 신청자에 한해서 미술 수업을 한다. 활동한 작품도 전시한다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장소로 격상시켰다. 그것을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부른다.
또한 '사람이 컬렉션이다'라는 철학을 실천하고 실현하는 공공기관으로 존립한다.
(지금은 아니지만) 소규모로 미술학원에 다녔어야 하는 아이들을 위해 도서관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작품 만들기 활동을 주도하고 그 결과물을 전시한다.
디스코텍에서 현란한 싸이키 조명 아래 즐기던 댄스파티가 신성한 도서관에서 대낮에 이루어진다.
엄마 몰래 동전 들고 오락실 가서 게임하는 아이들을 불러내어 아늑하고 깔끔한 도서관에서 공개적으로 게임을 하도록 불러낸다.
조금 확장적이고 비약적으로 바라본다면 마약과 매춘을 합법적으로 운영하는 네덜란드인이기에 더 재미있는 발상이자 정책이다.
上 2층에는 비디오 오디오 자료를 열람하는 공간이 있다. 下 도서관 내에 설치된 장애인을 위한 리프트
사람에게는 선한 것을 추구하고자 하는 거룩한 열망도 있지만 때로는 일탈을 꿈꾸고 변칙을 행하며 야릇한 쾌감 속에 색다른 자유를 꿈꾸는 은밀하고 감추어진 욕망이 있다.
이러한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가 선재되어 있다. 그곳에서 게임을 하는 아이들에게서 게임중독자의 모습을 관찰하기 힘들다. 특별한 이벤트와 프로그램으로 진행되는 댄스파티나 연주회에서 부자연스럽다던지 비뚤어진 유흥적 태도를 발견하기 힘들다. 모두가 내 이웃이고 그 이웃의 친구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웃고 즐긴다. 관람객의 시선으로 서 있기도 하지만 춤을 추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주체자로 서있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세시풍속처럼 네덜란드인들도 연간 축제처럼 즐기는 풍습이 있다. 동네마다 특색을 살린 다채로운 행사이다. 그 행사를 마을 길에서 치르는 것이 아니라 도서관에 잠시 옮겨다 놓은 것 같은 느낌이다.
삶을 즐기고 그 감정을 함께 누리기 위한 것이기에 어떤 경쟁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물론 개인차는 있고 행사나 이벤트의 성격에 따라 경쟁구도가 형성될 수는 있다. 하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선의의 경쟁이자 공존을 위한 경쟁을 하기 때문에 이들에게서 여유로움과 넉넉함이 발견된다.
그들이 선진국 시민이라는 결정적인 증거다.
도서관을 다니면서 단지 도서관의 시스템이나 건축미에만 반하지 않는다. 그 속에 담긴 그들의 철학과 문화와 삶의 태도와 가치관에 진정 감동을 받는다. 타인의 삶에 반응하고 공감할 수 있는 여유를 도서관이라는 공간에서도 취득한다는 것이 진심 부러울 뿐이다.
책을 읽고 생각하는 지적 유희가 이루어지는 정적인 장소에서 온몸으로 표현하고 감지하고 표출할 수 있는 감각적이고 동적인 공간을 겸하는 장소로 만든 그들의 독창적인 시도에 부러움을 넘어서 따라 하고 싶은 강한 열망을 갖는다.
그 독창성과 획기적인 공로와 지역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노력 때문인지 2009년에는 '올해의 도서관'으로 선정되는 영광을 갖게 되었다. 자부심으로 포장되고 혁신으로 내실을 다진 멋진 도서관이다.
도서관 내 아뜰리에에서 그림을 그리고 배우고
도서관 로비에서는 춤을 추고
카페에서는 커피를 마시며 책도 보고
아이들은 게임을 하고
매주마다 색다른 이벤트에 기웃거리게 만드는 도서관 중심의 생활
누구에게는 꿈이지만 그들에게는 일상입니다
이방인인 내가 이 동네에 산다면 매일마다 아이들과 도서관에 드나들면서 필시 이런 대화를 나누게 될 것이다.
너는 그림을 그리거라 나는 책을 읽을 테니
너희들은 책을 읽거라 나는 춤을 출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