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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딸랜드 Nov 21. 2018

내 이름은 2018 올해 세계 최고의 공공도서관

기억 속으로 사라진 학교를 유쾌하게 우아하게  불러내다

어떤 음악이나 노래만 듣게 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어떤 곳만 가면 절로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다.

어떤 향을 맡을 때마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풍경이 있다.

어떤 말만 들으면 솟구쳐 오는 감정이 있다.

어떤 것만 보면 당장 떠나고 싶어 진다.

어떤 음식(음료)만 먹게 되면 부여잡고 싶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행복한 기억이 떠오른다.  


음악, 장소, 노래, 문장, 음식....

이들은 모두 기억을 불러내는 일상 속 시간 여행의 촉매제이자 매개체이다. 누군가 톡 건드려 주면 기억 저장소에서 옴팡지게 터져 나오는 좋았던 때론 힘들었던 기억조차 추억으로 포장되어 나오는 인생의 조각들이 있다. 알게 모르게 자신의 인생에서 조건반사로 시작하여 무조건 반사로 변이 되어 자리 잡은 굵직한 자기 삶의 나이테들이다. 그 나이테를 잘 보존하고 가꾸는 것이 존재의 이유이자 보람일 수도 있겠다.


이러한 사람들의 은밀한 뇌 습관이 아름다운 재생 건축물(upcycling architecture)로 펼쳐진 작품이 있다.

학교7 도서관의 메인로비에서 2층으로 이어주는 계단(@volkskrant.nl)


덴 헬더르(Den Helder)는 거의 네덜란드 최북단에 위치한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담은 세계 최대 습지가 있는 깨끗한 섬 테설(Texel)로 들어가는 배를 타는 선착장이 있는 도시이자 주요 해군기지가 있는 항구도시다. 이 곳 지역주민들의 온고지신(溫故知新) 놀이터이자 '도시의 거실'로 자리매김된 학교 7(School 7) 도서관에 얽힌 추억을 따라가 본다.




2018년  8월 30일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국제도서관협회 연맹(International Federation of Library Associations and Institutions, IFLA) 총회에서 네덜란드 덴 헬더르(Den helder)에 소재한 '학교 7 (School 7)' 도서관을 올해의 최고 공공도서관으로 공표하였다. 학교 7(School 7) 도서관은 평생토록 기쁘게 간직할 어마어마한 추억거리를 선물 받은 셈이다. 19개국의 35개 도서관 중 최종 후보로 오른  5곳 중에서 올해의 도서관으로 학교7 도서관을 선정했다. 새롭게 건축되거나 이전에 도서관이 아니었던 건물을 사용한 도시재생으로서의 도서관 중에서 최고에게 수여하는 영예로운 상이다.


새롭고 혁신적이고 진취적인 도서관을 올해의 도서관으로 선정하는 IFLA의 학교 7(School 7) 도서관에 대한 감탄의 말들을 들어본다.


도시의 거실

역사적인 요소를 갖춘 오래되고 정적인 학교 건물이  현대 도서관으로 변신

주변 환경 및 지역 문화와 상호작용을 하는 소통 공간

도시와 항구를 이어주는 디딤돌

개방적 디자인, 기능적인 공간

어린이, 성인, 노인, 이민자 등의 다양한 이용자층이 도서관을 집으로 느낌

다양한 활동을 하는 제3의 장소 : 일하고 읽고 강의를 듣고 워크숍에 참여하고 언어를 배우고 신문 보고  커피를 마시고 자원봉사자들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곳

아름다운 빛이 들어오는 아름다운 건물

결혼식 장소, 생일파티장, 카페로서의 도서관

방대하고 훌륭한 장서 보유

지역사회(지역주택협회 外)와의 협력

기차역과 대형주차장이 모두 도보 거리에 위치

현지 역사와 계보, 도시 영웅들의 자료와 영상, 영화 자료 수집 및 보존

전망 좋은 곳 ; 항구와 해양테마파크(Willemsoord)가 보이는 커다란 창


도서관은 지역사회의 언어카페이다(@volkskrant.nl)

네덜란드에서도 이미 '학교 7' 도서관을 2017년 올해의 최고 도서관으로 선정했다. 100년 이상된 학교 건물을 폐교하지 않고 도시재생사업 일환으로 지역주택협회와 협치 하여 도서관을 세우면서 마주한 기쁜 순간들의 연속이다.  

그러나 이 학교 7 도서관의 전직 신분은  폐교된 학교였을 뿐이다.  그 학교 졸업생들은 이 앞을 지나칠 때마다 새하얀 머리카락 속에 씁쓸한 감상을 숨겼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아쉬움을 달래려는 움직임이었을까?


1900년대와 지금의 학교(학교7 도서관)건물 (左 사진출처 도서관 홈페이지)

1905년 이 곳 덴 헬더르의 베스트스트라트(Westraat)에 한 초등학교가 세워졌다. 이후 초등학교는 여러 모양새를 갖추게 된다.  중간에 르호봇이라는 기독교학교로 바뀌었다가 이후에 해상 학교로도 변신했다.  1956년 학교 7에 다니던 마지막 학생들은 쏘르베크(Thorbeck) 학교로 옮겨 수업을 받게 된다. 1960년대에 이르러서는 학교는 서서히  조정 절차를 밟게 되고 문을 닫는 상황까지 이르게 된다. 1970년대 말에 시청에서 학교 건물을 철거하려고 하기까지 이 학교 건물은 클럽으로도 사용되었고 예술가들의 스튜디오로도 쓰였다.  시의회에서 학교 건물을 폐교하려고 하자 지역주민들은 반발했다. 60000여 명의 조합원들이 건물을 보수하려고  노력했다. 이들은 이 건물을 영구적으로 영화관으로 사용하고 싶어 했다. 학교는 영화관으로도 사용된다. 결국 덴 헬더르 시(Den Helder 市)에서 2012년 학교 건물을 매입한다. 그리고 도서관으로 전환하는 대대적인 사업을 펼친다.


학교7 도서관 건축가와 디자이너가 영감을 얻었다는 모리스 레스모어의 환상적인 날아다니는 책(사진출처@인터파크 책표지)

건축가 에이블린 판 베인(Evelien van veen)과 디자이너 마르셀 판 더 비어(Marcel van der veer)의 협작품이 새로운 학교 7 도서관인 것이다. 이들은 오래된 학교의 모습을 보존하면서도 공공 도서관이 갖추어야 할 요소를 새 건물 속에 구현해낸다. 두 건축가와 디자이너는 아름다운 영상에 매료된다. 일생동안 책을 돌보다가 인생 말년에 책들의 돌봄을 받는 감동적인 모리스 레스모어에 관한 짧은 영화(모리스 레스모어의 환상적인  날아다니는 책)를 보고 영감을 얻어 도서관을 새롭게 디자인하여 짓는다. 그들은 도서관은 더 이상 책을 빌리는 장소가 아니며 새로 온 사람들을 위한 언어 카페이자 나이 든 사람들이 아이패드를 들고 마실 나올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였을까? 학교의 옛 건물과 새롭게 이어 건축한 건물은 복도와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다. 1층 로비는 그야말로 전망 좋은 거실이다. 항구와 해양테마파크와 영화관이 보이는 길목에 위치하기에 더욱 그렇다.

그야말로 도시의 거실이다. 창밖에 펼쳐진 내항과 운하의 모습(@volkskrant.nl)

원래 덴 헬더르(Den Helder)는 해양조선소가 있던 전략적인 항구도시였다. 주요 해군기지가 있으며 방어선과 요새가 들어서기에  좋은 입지를 갖춘 곳이다. 테설(Texel) 섬으로 들어가기 위한 내륙의 끝이다. 일찍이 1811년 보나파르트 나폴레옹(Napoleon Bonaparte)이 네덜란드의 최북단 도시인 덴 헬더르(Den Helder)에 시찰하러 방문했을 때  이 곳에 방어선을 구축하고자 했던 주요 도시였었다. 나폴레옹 군대가 실각하면서 이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으나 네덜란드의 최초 총독인 오렌지공 빌럼(Willem 1, Prince of Orange)의 명으로 특별한 건축과 공간 디자인으로 설계된 방어선이 완성되었다.  이것이 바로 그의 이름을 딴 빌럼스오르트(Willemsoord;국립조선소)이다.  빌럼스오르트(Willemsoord)는  중앙 도크, 창고, 작업장, 노동자를 위한 주택들이 모여 군락을 형성하고 있는 단지다.  오늘날의 복합단지와 같다. 쉽게 말해 일종의 해양테마파크로 명색을 이어가고 있다. 박물관, 역사 전시관, 체험관 등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학교 7 도서관 어느 층에서나 바라볼 수 있는 전망을 형성하고 있는 주요 부분이다. 학교가 폐교의 위기에 처할 때 지역주택협회가 협치 할 수 있었던 배경적 사건들이 있다. 빌럼스오르트(Willemsoord)로 변모 발전되기 전 해양조선소와 해군기지가 사라지면서 많은 실업자들이 생긴 당시 상황을 살펴보아야 한다. 학교 7을 도서관으로 재건하면서 그들의 일자리가 어느 정도 보장이 되고 과거 해양기지는 새로운 해양테마파크로 형성되면서 지역의 경제활동이 활성화되었다. 서로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그러기에 학교 7 도서관 창문에서 이 일대를 바라보며 조망하는 것 자체가 감격스러운 사건이 될 수 있기에 충분하다.  

도서관 앞 운하 위 다리에 그려진 그림

이러저러한 세월의 흔적으로 깎여진 건물이 다시 도서관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주민들의  역사적인 긍지를 높여주는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도서관에는 작은 영웅들의 이야기가 보관되어 있다. 그리고 2017년 2018년 연속으로 큰 상을 받는 것으로 지난한 과거에 대한 크나큰 보상을 받게 된다.






도서관 곳곳마다 아름다움이 흘러넘친다.

운하를 가로질러 가면 길모퉁이에 떡하니 학교 7(School 7) 글자가 박힌 벽돌색 건물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바닥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나와 셋째, 막내딸은 도서관에 들어가기 전부터 이 그림 앞에서 한동안 놀았다. 운하를 가로지르는 다리 위에 그려진 그림이라 근경을 앞세운 원경이 펼쳐지는 운하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나룻배가 그려진 길바닥 그림 위에서 수다를 떨기도 했다.  도서관 들어가기까지의 시간을 즐긴다.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독특한 반개방 공간을 보고 그저 이쁘다 멋있다란 말만 내뱉었다. 빨리 가서 그 공간을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 크게 작용하는 만큼 뒤로 내빼서 천천히 조심스럽게 다가가고 싶은 역작용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그 흥분감을 무엇이라 표현할까?


반개방적인 공간이자 탁 트임이 두드러진 계단과 그 옆 책장


로미오와 줄리엣 발코니(@volkskrant.nl)

여기를 '로미오와 줄리엣 발코니'라고 부른다. 도서관에서 결혼을 하는 신랑 신부가 웨딩촬영을 하거나 결혼식을 할 때 이 계단에서 신랑이 로미오가 되어 신부 줄리엣에게 세레나데를 부르는 특별한 공간이다.  


결혼식 장소 예약을 안내하는 광고판,  결혼식 장면(右 사진출처 kopgroepbibliotheken.nl)

계단 벽면에는 산뜻한 책꽂이가 있어 운치 있는 책 벽장이 된다. 계단 하나하나 오르다가 끝까지 오르면 조각품 같은 등이 있어 은은한 조명의 근원지가 이것이구나를 인정하게 된다.  더 올라가면 차를 마실 수 있는 카페 공간이 나온다. 도서관이 아니라 앤틱 카페다. 거기서 차 한 잔 마시며 내려다보는 것도 상당히 분위기 있을 것 같다. 계단 끝에서 오른쪽으로 가든지 왼쪽으로 가든지. ㅁ자 모양의 구조라서 어느 곳에서 출발하든 한 바퀴 돌다 보면 어느새 도서관 일주를 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1층부터 꼭대기 층까지 통째로 이어진 벽면에는 할아버지가 책을 읽는 사진이 세로로 붙인 띠벽지처럼 부착되어 있다. 정말 대단한 작품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동일한 할아버지가 다른 책을 펼치고 있는 모습이.


2층, 3층에는 다양한 공간이 있다. 문학, 과학, 비소설, 예술 등 다양한 장르의 책들이  꽂혀 있다.  그리고 아이들이 한 명씩 들어가서 책을 보거나 태블릿이 마련된 곳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난 별생각 없이 아이들을 위해 이러한 공간을 마련했구나 싶었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구석진 자기만의 공간을 가지고 싶어 하기 때문에 영리한 디자이너가 이렇게 공간을 만들어냈나보다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은 대번에 '저거 화장실이잖아' 그런다.

이 아이들은 직관적으로 그 공간이 무엇이었는지 알아차린다. 그리고 커다란 쿠션 위에 철퍼덕 앉아서 뒹굴거리기도 하고  옆 칸으로 옮겨서 태블릿으로 게임을 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그 옆 칸에 가서 퍼즐을 맞추기도 한다.

공간의 재탄생이다. 아이들이 재생건축의 의미를 몸으로 체득하는 훌륭한 공간이다.  


과거 이 건물이 학교였을때 이 공간이 복도에  있는 화장실이었음을 알 수 있다


과거 복도였을 공간은 뛰어난 인테리어 덕분에 마법의 옷장이 되기도 하고  작품을 전시하는 전시공간이 되기도 한다.  백 년 전에 이 공간의 용도는 무엇이었을까라고 절로 질문을 하게 된다. 하지만 정답을 맞혀야 할 의무도 없고 정답을 찾는 과정에서 또 다른 기발한 생각이 꼬리를 물게 되니 마치 나도 모리스 레스모어와 같은 책 비행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재밌는 상상을 하게 된다.


어린이 책 코너(@volkskrant.nl)

어린이책 코너가 제일 흥미롭다. 뜬금없이 보이는 LP와 전축들이 책장 중간중간에 무심하게 놓여 있고 여느 어린이책 코너처럼 러그가 깔려 있으며 장난감이 있다. 아이들이 오르내리도록 만든 작은 계단 때문에 구석진 이 공간은 복층으로 된 책방이 되어버린다. 흥미로운 것은 계단 하나 오르내릴 때마다 음악 소리가 난다는 것이다.  계단 피아노인 셈이다. 통영의 서피랑 마을에 설치되어 있는 피아노 계단처럼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내릴 때마다 들리는 동물 소리, 자연 소리, 음악소리가 나기 때문에 아이들이 정말 좋아할 것 같다. 음이 흘러나오는 구멍 옆에는 흘러나오는 소리의 내용이 담긴 유아용 책이 있기에 자연스럽게 아이들은 통합적인 독서를 할 수 있게 된다.

복층의 책공간으로 꾸며졌다.  피아노 계단을 오르면 각종 효과음과 음악이 나온다.

윗 층으로 올라가 본다. 전망이 너무 좋은 거실 같은 공간이 나타난다.  멍 때리고 싶을 때마다 오고 싶도록 꾸며 놓았다. 벽면 가득한 창 밖으로 펼쳐진 마을과 너머의 항구 모습이... 때마침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니 제대로 감상적이 되어 버린다. 방금 전까지 맑은 하늘이었는데.


도서관이지만 이 도서관의 모토인 '도시의 거실'처럼 음향기기와 분위기 있는 인테리어, 사색하기 좋은 분위기의 흔들의자, 아늑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조명, 그리고 햇빛이 마음껏 들어올 수 있는 커다란 창문.

그 옛날 백작부인의 품위를 가지고 차 한 잔 마시며 안락한 소파에 앉아 창 밖을 바라보는 것이 너무나 어울릴 것 같은 풍경이 도서관에서 가능하다는 것이 그저 감격스럽다.



도서관 어느 공간은 아예 대저택의 응접실 같은 곳이 있다. 도서관 내에 있는 카페다. 여기는 어느 궁전에 들어온 것 같은 분위기다. 짙은 체리 색상의 원목 가구들과 앤틱 디자인의 벽장과 의자와 조명이 한껏 숙연함을 더해준다.  


카페같은 도서관, 거실 같은 도서관
도서관과 집의 경계를 허무는 공간 디자인


이사 간 친구네 집을 샅샅이 돌아다니며 구경하듯 도서관 전체를 돌아다녀 보았다. 물론 아이들은 자기들이 보고 싶은 책을 보느라 어린이책 코너에 있었다.

맨 꼭대기층은 과거 학교 옥상이었기에 그 흔적이 조금 남아 있었다. 깨끗하게만 단장하고 자물쇠로 잠가 버린 공간들이 더러 있었다.

과거 학교건물이었던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다시 1층으로 내려왔다. 도서관 로비에는 안내데스크가 있다. 그 옆에는 학교 7 도서관의 과거를 보여주는 작은 역사 전시 공간이 있다. 한참을 그곳에서 사진과 안내글을 보며 이 도서관의 일생을 탐미했다.

도서관 1층 로비. 여기에 도서관 역사를 전시하는 공간이 있다(@dearchitect.nl)




누군가가 자신을 기억해준다는 것은 짜릿하고 감사한 일이다.  어떻게 어떤 이미지로 기억할지는 온전히 추억하는 자만의 몫은 아닐 게다.

재생 건축물을 짓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현실적으로 건물을 폐기하는 비용이 새로 짓는 비용보다 크다거나 폐기물이 환경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 등을 고려하게 되면 친환경적인 건축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함께 하는 동시대인들의 요구사항에 귀를 기울이는 과정이 분명 존재한다.  그러다 보니 수많은 재생 건축물 중에서 학교가 도서관으로 변신하는 과정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던져주는 가르침이 유별날 수도 있을 것 같다.   


건축가 승효상은 도시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존하고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 재생건축이라고 보았다.
이야기가 있는 장소와 작품이 만나 특별한 시너지 효과를 낸다고 하였다.
낡고 오래된 것에 대한 편안함과 매력을 잃지 않은 눈 맞춤이 있는 것이다.


낡아서 폐교할 운명에 처했던 학교에 대한 편안함과 매력을 불러낸 동인은 무엇이었을까?

학교와 도서관이 품은 고유한 정체성은 도시 속에 어떤 역사적 바람을 일으키려고 했던 것일까?

어떤 노래가 어떤 향기가 어떤 이야기가 과거를 부활시키는 매개가 되었을까?

아스라이 사라질 추억을 소환해 낸 초혼 같은 이 건물은 결국 세계 최고의 공공도서관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역사 속에 재등장하기에 이른 것이다.    



먼 훗날 아이들과 내가 다시 이 도서관을 방문한다면 무엇을 추억할까?

도서관에서 나오면서 비 쫄딱 맞은 일?

도서관 앞 운하 위 그림 보고 한참 놀았던 일?

갈매기 켕카와 무리들의 비행경로였던 덴 헬더르에 있는 도서관에서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 준 고양이라는 책을 떠올린 것?

영화 노킹온 헤븐스 도어(knockin on heaven’s door)의 두 주인공 마틴과 루디가 죽기 전에 보고 싶어했던 바다, 그 바다의 영화촬영 배경지인 테설(Texel) 섬에 놀러가기 위해 배 타러 들렸던 도시 덴 헬더르에 대한 통째의 기억?

기억할 수 있는 추억을  재생할 수 있는 계기를 준 것?



그 도서관을 거실로 여기는 덴 헬더르 시민들이 그 지역의 영웅 같다. 해 아래 새 것이 없다는 것을 체험적으로 아는 이 곳 시민들은 이전 것에서 새로운 것을 창출해내는 그 기묘한  온고지신의 역량을 발휘한 남다른 사람 같다. 현재를 통해서 과거를, 과거를 통해서 미래를 만나는 특별한 시공간 여행을 도서관에서 일상으로 경험하는 이들이다. 모리스 레스모어 같은 인생을 산 이들이다. 책을 돌보았더니 책이 그들을 돌보아 준 인생.   


그들이 새로 일구어낸 도서관은 역사적 정체성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기억하고 있는 도서관이다.

그 이름은 자랑스러운 학교 7 도서관이다. 럭키 세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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