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

천지창조

by 반병현

11/9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 위에 움직이고 계셨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 하시니, 빛이 생겼다. 그 빛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셔서, 빛을 낮이라고 하시고, 어둠을 밤이라고 하셨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하루가 지났다.

창세기 1:1‭-‬5 RNKSV


드디어 창세기를 시작합니다. 창조의 내러티브를 이해하여야 합니다.


당신들이 태어나기 전에, 하나님이 이 땅 위에 사람을 창조하신 날부터 이제까지, 지나간 때를 깊이 생각하여 보십시오. 하늘 이 끝에서 저 끝에 이르기까지, 온 세계를 깊이 생각하여 보십시오. 그리고 이런 큰 일을 본 적이 있는지, 들은 적이 있는지 물어 보십시오.

신명기 4:32 RNKSV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다. 그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으니, 그가 없이 창조된 것은 하나도 없다. 창조된 것은 그에게서 생명을 얻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의 빛이었다.

요한복음서 1:1‭-‬4 RNKSV


하늘을 창조하신 주, 땅을 창조하시고 조성하신 하나님, 땅을 견고하게 하신 분이 말씀하신다. 그분은 땅을 혼돈 상태로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살 수 있게 만드신 분이다. “나는 주다. 나 밖에 다른 신은 없다.

이사야서 45:18 RNKSV


그들을 창조하신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어두운 때에도 희망을 주시는 그 창조주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욥기 35:10 RNKSV


만물이 그분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 왕권이나 주권이나 권력이나 권세나 할 것 없이, 모든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그분을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골로새서 1:16 RNKSV


“우리의 주님이신 하나님, 주님은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주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셨으며, 만물은 주님의 뜻을 따라 생겨났고, 또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하고 외쳤습니다.

요한계시록 4:11 RNKSV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고, 창조주 대신에 피조물을 숭배하고 섬겼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찬송을 받으실 분이십니다. 아멘.

로마서 1:25 RNKSV


너무 많네요. 이 정도만 하겠습니다. 기독교 세계관에서 창조란 절대적인 진리이며 실재하는 사건입니다.

저는 창조와 관련해 요한복음의 로고스 이야기를 가장 좋아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다. 그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으니, 그가 없이 창조된 것은 하나도 없다. 창조된 것은 그에게서 생명을 얻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의 빛이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니, 어둠이 그 빛을 이기지 못하였다.

요한복음서 1:1‭-‬5 RNKSV


주님께서 일을 시작하시던 그 태초에, 주님께서 모든 것을 지으시기 전에, 이미 주님께서는 나를 데리고 계셨다. 영원 전, 아득한 그 옛날, 땅도 생기기 전에, 나는 이미 세움을 받았다. 아직 깊은 바다가 생기기도 전에, 물이 가득한 샘이 생기기도 전에, 나는 이미 태어났다. 아직 산의 기초가 생기기 전에, 언덕이 생기기 전에, 나는 이미 태어났다. 주님께서 아직 땅도 들도 만들지 않으시고, 세상의 첫 흙덩이도 만들지 않으신 때이다. 주님께서 하늘을 제자리에 두시며, 깊은 바다 둘레에 경계선을 그으실 때에도, 내가 거기에 있었다. 주님께서 구름 떠도는 창공을 저 위 높이 달아매시고, 깊은 샘물을 솟구치게 하셨을 때에, 바다의 경계를 정하시고, 물이 그분의 명을 거스르지 못하게 하시고, 땅의 기초를 세우셨을 때에, 나는 그분 곁에서 창조의 명공이 되어, 날마다 그분을 즐겁게 하여 드리고, 나 또한 그분 앞에서 늘 기뻐하였다. 그분이 지으신 땅을 즐거워하며, 그분이 지으신 사람들을 내 기쁨으로 삼았다.

잠언 8:22‭-‬31 RNKSV


잠언의 지혜는 창조 이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하였고, 창조의 원리가 되었습니다. 요한복음의 로고스는 잠언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로고스는 언어로써 표현하고 분해 가능한 대상을 폭넓게 포함하는 단어입니다. 지혜는 언어로써 표현 가능하므로 지혜는 로고스 또는 그 일부입니다. 로고스는 하나님입니다.


따라서 창조의 원리인 지혜는 하나님 또는 그의 일부입니다.


이게 제가 이해한 지혜론입니다. 창조의 내러티브와 함께 이해하면 더 풍성합니다. 지혜란 곧 하나님이므로 인간이 수양으로써 쌓는 존재가 아니며, 지혜가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닮은 삶을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 하시니, 빛이 생겼다.

창세기 1:3 RNKSV


하나님은 가장 먼저 빛을 창조하십니다.


공학적으로 보자면 빛은 전자기파거든요. 광자를 창조하시려면 맥스웰 4방정식과 양자역학을 모두 설계하셔야 합니다. 그런데 그게 사실상 물리학의 전부거든요. 저는 그래서 빛의 창조를 물리법칙의 창조로 봅니다.


세상을 운행하기 위한 질서를 세우신 것입니다. 이 상태에서 계 내부에 질량만 부여하면 빅뱅도 일어나고 미립자가 합쳐져서 수소도 생기고 수소끼리 합쳐져서 핵융합도 생기고 행성도 생기고 하겠죠.


물리법칙 -> 질량 부여


창조를 위한 단계는 저 두 개로 사실상 끝입니다. 그 이후에 일어날 일은 사람은 예측이 불가능합니다. 인간은 정보를 관측할 때 광자를 쬐어야만 하므로 대상이 가진 정보가 측정 직후 변하거든요. 이게 무슨 뜻이냐면, 인간은 무수히 존재하는 미래 중 어떤 미래가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창조를 위한 섬세한 설계를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초월자시니까 가능하셨겠지요.


여하튼 하나님께서 처음 세우신 질서는 물리법칙이라고 저는 봅니다. 그 안에서 세상의 작동원리는 모두 설명이 가능합니다.



11/9 저녁 묵상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물 한가운데 창공이 생겨, 물과 물 사이가 갈라져라” 하셨다. 하나님이 이처럼 창공을 만드시고서, 물을 창공 아래에 있는 물과 창공 위에 있는 물로 나누시니, 그대로 되었다. 하나님이 창공을 하늘이라고 하셨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튿날이 지났다.

창세기 1:6‭-‬8 RNKSV


첫째 날 하느님께서는 빛을 만드셨고 둘째 날에는 물과 물을 분리하여 하늘을 창조하십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하늘 아래에 있는 물은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은 드러나거라” 하시니, 그대로 되었다.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고 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고 하셨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땅은 푸른 움을 돋아나게 하여라. 씨를 맺는 식물과 씨 있는 열매를 맺는 나무가 그 종류대로 땅 위에서 돋아나게 하여라” 하시니, 그대로 되었다. 땅은 푸른 움을 돋아나게 하고, 씨를 맺는 식물을 그 종류대로 나게 하고, 씨 있는 열매를 맺는 나무를 그 종류대로 돋아나게 하였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사흗날이 지났다.

창세기 1:9‭-‬13 RNKSV


셋째 날에는 육지와 바다를 분리하시고, 육지에서 식물을 돋아나게 하십니다.


창조의 순서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창조의 순서 자체를 창세기 이후에서 접해본 적이 있었나 기억이 안 나네요. 순서 자체의 내러티브도 시간이 나면 봐야겠습니다.


창조의 순서는 하나님의 뜻이므로 로고스의 작동원리이며, 창조의 원리는 지혜이므로 지혜의 순리입니다.


창조를 요한복음 1장과 잠언 8장과 함께 엮어 해석해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진도를 나가보면 깨닫는 바가 있겠지요?



11/10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하늘 창공에 빛나는 것들이 생겨서, 낮과 밤을 가르고, 계절과 날과 해를 나타내는 표가 되어라. 또 하늘 창공에 있는 빛나는 것들은 땅을 환히 비추어라” 하시니, 그대로 되었다. 하나님이 두 큰 빛을 만드시고, 둘 가운데서 큰 빛으로는 낮을 다스리게 하시고, 작은 빛으로는 밤을 다스리게 하셨다. 또 별들도 만드셨다. 하나님이 빛나는 것들을 하늘 창공에 두시고 땅을 비추게 하시고, 낮과 밤을 다스리게 하시며, 빛과 어둠을 가르게 하셨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나흗날이 지났다.

창세기 1:14‭-‬19 RNKSV


빛 -> 하늘 -> 뭍과 물의 분리 및 식물 -> 천체


순서로 창조를 이어가십니다.


창세기 편집 당시 유대인들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세상의 구성 원리들을 엿볼 기회입니다.


토라(5경)는 유대교의 정체성 그 자체이며, 정돈된 민족성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11/17


드디어 큐티로 복귀합니다. 성서해석학은 정말이지 화수분과 같이 재미가 쏟아지는 책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논리적인 사람이 성경을 읽는 방법."을 체계화한 것입니다. 제가 성경을 읽는 사고방식을 모든 비평 기법에서 전부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학문적 체계를 세우는 것은 학자가 일평생을 바쳐야 하는 것이므로 학자마다 기여한 해석기법에서 차이가 생기고, 이전 기법의 한계를 메우기 위해 새로운 기법이 제안되면서 발전해 왔습니다. 한 권의 책을 두고, 해석기법이 갈리는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서,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 그리고 그가,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 사는 온갖 들짐승과 땅 위를 기어 다니는 모든 길짐승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창세기 1:26 RNKSV


1장 26절 말씀에서 하나님이 "우리"라는 복수형 명사로 등장합니다. 번역본이 이상한가 싶어 다른 역본들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고서 하나님은 “우리의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어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어 다니는 모든 생물을 지배하게 하자” 하시고

창세기 1:26 KLB


Then God said, “Let us make mankind in our image, in our likeness, so that they may rule over the fish in the sea and the birds in the sky, over the livestock and all the wild animals, and over all the creatures that move along the ground.”

Genesis 1:26 NIV


And God said, Let us make man in our image, after our likeness: and let them have dominion over the fish of the sea, and over the fowl of the air, and over the cattle, and over all the earth, and over every creeping thing that creepeth upon the earth.

Genesis 1:26 KJV


서로 다른 판본들에서 모두 복수형 명사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번역 오류라기보다는 처음부터 복수형 명사가 사용되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코이네 그리스어를 읽을 수 있으면 조금 더 넓고 깊은 생각을 할 수 있었을 텐데요.


조금 더 찾아보니 E문서의 전형적인 특징이며 신학계에서 천 년 이상 식지 않은 떡밥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엘로임)을 복수형 명사로 받는 것이 성경에서 굉장히 빈번히 등장하며, 때로는 복수형이지만 단수형 서술어를 받는 경우도 등장한답니다. 이런 부분들은 한국어 번역본에서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 표현을 근거로 하나님을 복수의 존재로 인식하는 경우 이단이 되겠죠.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을 의미하여 복수형 명사를 사용했을 가능성도 있을 것 같고.


그렇지만 구약 시기에 아직 삼위일체 개념이 없었을 테니 이러한 해석 또한 문제가 생깁니다.


토라의 편집 시점을 포로기 후기라고 본다면 가능한 해석이 있기는 합니다. 더 오래전에 작성되어 같은 시기에 편집되었을 잠언 8장 후반부입니다.


주님께서 일을 시작하시던 그 태초에, 주님께서 모든 것을 지으시기 전에, 이미 주님께서는 나를 데리고 계셨다.

잠언 8:22 RNKSV


적어도 솔로몬은 지혜를 하나님과 분리된 객체이지만 하나님의 일부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요한복음까지 끌어와 보겠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다. 그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요한복음서 1:1‭-‬2 RNKSV


사도 요한 또한 하나님과 로고스를 분리된 객체로 보면서도 동일시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삼위일체라는 사상도 그렇고, 일종의 유대인 고유의 사고방식이 아닐까 합니다.


하나님의 초월적인 권능을 강조하기 위하여 그 권능들을 신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입니다. 해리된 권능 하나하나는 창조의 열쇠가 될 만큼 강력합니다. 이방신과는 비교가 안 되는 절대적 권위가, 하나님이 보유하신 수많은 권능 중에서는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할 수 있지 않을까요.


5경의 편집자가 하나님의 높으신 권능을 강조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문법을 파괴한 것으로 해석하면 교리를 파괴하지 않으면서도 비교적 실용적인 해석의 길을 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단수로 표현된 말씀에 비해 복수로 표현된 말씀이, 조금 더 하나님의 초월성을 강조하기 위한 시도가 가미된 말씀이라 생각하면 족할 것 같습니다.


아직도 창세기 1장을 다 못 읽었네요. 이런 부분까지 고려하며 읽으면 더 깊은 함의를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11/17 저녁 묵상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 이러하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경작할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창세기 2:4‭-‬9 KRV


창세기 1장과 2장에서의 창조의 순서가 다릅니다. 1장 본문은 그 자체로 기승전결 구조가 완결되는 것으로 보아 원래 내용은 2장이 맞는데, 1장은 후대에 재편집되어 추가된 정황으로 보입니다.


모든 백성이 한꺼번에 수문 앞 광장에 모였다. 그들은 학자 에스라에게, 주님께서 이스라엘 에게 명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지고 오라고 청하였다. 일곱째 달 초하루에 에스라 제사장은 율법책을 가지고 회중 앞에 나왔다. 거기에는, 남자든 여자든, 알아들을 만한 사람은 모두 나와 있었다. 그는 수문 앞 광장에서, 남자든 여자든,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에게 새벽부터 정오까지, 큰소리로 율법책을 읽어 주었다. 백성은 모두 율법책 읽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느헤미야기 8:1‭-‬3 RNKSV


포로기 후기에 에스라에 의해, 또는 에스라 이전에 토라(모세 5경)가 완성된 정황이 보입니다. 이 시기에 재편집되며 1장 내용이 추가된 것이 아닐까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생활로 지쳐 있었으며, 국가의 멸망을 목도하였던 세대의 아랫세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살펴 주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하고, 신앙으로써 뭉쳐 일어나도록 할 필요가 있던 시기입니다.


따라서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뒤 가장 귀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창조하였다는 1장의 내용이 이 시기에 삽입된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2장에서의 창조 순서와 다르므로 서로 모순된다고 해석하기보다는, 2장에서는 창조 절차에서 절정에 해당하는 인간의 창조를 강조하기 위한 기술구조라고 생각하는 것이 맞겠습니다.


결과적으로 당시 지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이 인간을 가장 귀하게 창조하였고, 이스라엘 민족을 지켜주신다는 사실이 큰 위안이 되었을 것입니다.


1장에서 빛을 먼저 만들고 큰 곳에서부터 작은 곳으로 질서를 뻗어나가는 이유는 당시 혼란하고 체계가 없던 이스라엘 사회에 질서가 필요했음을 반영하는 것이 아닐까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창세기 1장과 2장을 통해 하나님의 위대하신 계획과, 우리가 얼마나 귀하게 창조된 존재인지를 깨닫는 기회를 잡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우리를 사랑하고 아껴야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단순히 창세기를 설화적으로 받아들이고 말 것이 아니라 성경을 읽으며 신앙생활의 길잡이가 될 깨달음을 조금이나마 얻어가기를 바랍니다.



11/18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 인데, 구스 온 땅을 돌아서 흘렀다. 셋째 강의 이름은 티그리스 인데, 앗시리아 의 동쪽으로 흘렀다. 넷째 강은 유프라테스 이다.

창세기 2:13‭-‬14 RNKSV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사이면 중동 지역 어딘가에 에덴동산이 있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초등학교 때 본 책에서 에덴동산의 위치를 바그다드 인근이라 언급했던 게 기억이 나네요.


물리적인 위치가 뭐가 중요하겠습니까만, 이스라엘 민족들에게는 창조의 첫 역사가 백성들과 가까운 곳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꼈을 것 같습니다. 유대인에게 일종의 선민의식을 제공하고, 어려운 시기를 견뎌낼 수 있는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모세 5경의 작성 기를 전통적인 관점에서 광야 시기로 보던, 혹은 포로기 후기 에스라 시점으로 보든 간에 이런 해석은 사회안정과 민족 자긍심 고취라는 효용이 있었을 것입니다.


현대 우리에게는 에덴동산의 위치는 그렇게 중요한 정보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신 창조행위가 시작된 장소가 에덴임을 기억하기만 하면 됩니다.


주 하나님이 사람에게 명하셨다.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는, 네가 먹고 싶은 대로 먹어라.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

창세기 2:16‭-‬17 RNKSV


선악과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주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남자가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를 돕는 사람, 곧 그에게 알맞은 짝을 만들어 주겠다.” 주 하나님이 들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를 흙으로 빚어서 만드시고, 그 사람에게로 이끌고 오셔서, 그 사람이 그것들을 무엇이라고 하는지를 보셨다. 그 사람이 살아 있는 동물 하나하나를 이르는 것이 그대로 동물들의 이름이 되었다. 그 사람이 모든 집짐승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러나 그 남자를 돕는 사람 곧 그의 짝이 없었다. 그래서 주 하나님이 그 남자를 깊이 잠들게 하셨다. 그가 잠든 사이에, 주 하나님이 그 남자의 갈빗대 하나를 뽑고, 그 자리는 살로 메우셨다.

창세기 2:18‭-‬21 RNKSV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위해 하와를 창조하십니다.


남자와 그 아내가 둘 다 벌거벗고 있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창세기 2:25 RNKSV


2장이 마무리됩니다.


창세기 2장의 주제는 인간의 창조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어떻게 창조하였는지를 1장보다 길게 풀어 설명합니다.


인간의 창조 이유 또한 간접적으로 드러납니다. 최초의 인간이 동식물에게 이름을 붙여 줍니다. 이름을 지어주는 행위를 통해 은유적으로 창조물들의 위계를 드러냅니다. 인간은 세상 만물 중 가장 귀하게 창조된 존재임을 강조합니다.


마지막 절에서는 창조 당시의 인간의 무결성을 강조합니다.


타락을 겪기 전에는,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고 흠이 없는 존재였다는 뜻입니다. 이는 3장부터 이어질 타락의 역사를 강조하기 위한 일종의 문학적 장치입니다. 저 한 절의 말씀 덕에 독자는 타락의 깊이를 더욱 크게 느끼게 됩니다.


편집자 또는 술자는 창세기 2장을 통해 민족을 위로하고, 결집하고, 하나님의 위대하신 역사를 강조합니다.

이는 현대까지 많은 교훈으로 파생될 여지가 큽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존귀한 피조물이므로 우리는 스스로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타락의 역사는 저녁에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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