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

타락

by 반병현

11/18 저녁묵상


하나님은, 너희가 그 나무 열매를 먹으면, 너희의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된다는 것을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여자가 그 나무의 열매를 보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을 슬기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였다. 여자가 그 열매를 따서 먹고,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니, 그도 그것을 먹었다.

창세기 3:5‭-‬6 RNKSV


아담과 하와는 뱀의 간교에 넘어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깁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으로 정의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마땅히 모든 것을 대비하여 주셨으나 금기시한 단 한가지를 어겼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탐내다가 벌을 받았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여러 곳에서 많이 등장합니다. 성경에서는 바벨탑 사건이 신의 권위에 도전하다 처벌받은 사례이며, 그리스 로마신화에서는 이카로스의 날개나 파에톤의 태양마차 사건 따위가 등장합니다.


신의 권위를 인간으로부터 초월시키며, 인간의 탐욕을 죄악의 원인으로 규정짓는 효과적인 기술 방법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 섭취 사건은 사탄의 사악함 뿐 아니라 인간의 나약함과 오만함, 이로 인한 처벌을 보여줍니다.


2장 후반에서 극도로 정결했던 두 부부는 결국 3장에서 타락합니다.


주 하나님이 가죽옷을 만들어서, 아담 과 그의 아내에게 입혀 주셨다.

창세기 3:21 RNKSV


이들의 죄악은 추방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죄 없는 짐승이 생명을 빼앗겨 가죽옷이 되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인간이 용서받기 위해서는 다른 생명을 취해야 한다는 사상이 등장하죠. 번제 따위의 제사절차와도 일맥상통합니다.


인간은 정결하였으나 그러지 못하게 되었고, 정함을 입으려면 항상 다른 희생을 필요로 하게 되었습니다. 피로써 씻은 죄입니다. 용서받았다 하더라도 항상 그 책임으로 무겁게 어깨와 마음을 짓누르며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선과 악, 부끄러움은 물론이거니와 죄책감이라는 감정까지도 깨닫게 되었을테니까요. 인간이 느끼는 감정 중 죄악과 관련된 것을 선악과 섭취 중에 가지고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므로 이 해석이 저는 무리가 없다고 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죄책감은 죄악의 길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안전장치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선악과를 먹게 될 것도 이미 알고 계셨으며, 타락 일변도를 걷지 않을 장치를 마련해 두셨습니다.


양심이나 선한 마음 뿐 아니라 선악과를 통해 비로소 인간에게 내재될 수 있었던 후회와 죄책감은 우리를 구속하여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올바른 방향을 제시합니다.


성경에서는 짐승의 목숨을 빼앗는 행위가 죄의 구현 중 하나인 부끄러움의 대가로써 제시되었고, 이는 일종의 죄책감과 책임감이 되어 등장인물과 독자들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과 악을 깨닫도록 하셨지만 악을 구분하여 멀어지라고 끊임없이 말씀하십니다. 잠언의 핵심 메세지가 이거죠.


비록 신앙적으로 방치되면 우리는 정결하지 못하고 악을 저지르게 되겠습니다만, 하나님께 지혜를 간구하여 악을 구분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행동과 입술을 단속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인지 살피는 것을 항상 마음의 최 우선적인 규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감사하고 회개하며 말씀 안에서 스스로를 제련할 때 비로소 우리는 정결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11/19


아담 이 자기 아내 하와 와 동침하니, 아내가 임신하여, 가인 을 낳았다. 하와 가 말하였다. “주님의 도우심으로, 내가 남자 아이를 얻었다.” 하와 는 또 가인 의 아우 아벨 을 낳았다. 아벨 은 양을 치는 목자가 되고, 가인 은 밭을 가는 농부가 되었다.

창세기 4:1‭-‬2 RNKSV


타락 이후의 인간의 행보가 소개되기 시작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가인과 아벨을 낳았습니다. 아벨은 목축업 종사자가 되었고, 가인은 훌륭한 직업군을 골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지만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십니다. 이유는 따로 나와있지 않습니다. 가인은 화를 그대로 표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죄라고 알려주십니다.


주님께서 가인 에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네가 화를 내느냐? 얼굴빛이 달라지는 까닭이 무엇이냐? 네가 올바른 일을 하였다면, 어찌하여 얼굴빛이 달라지느냐? 네가 올바르지 못한 일을 하였으니, 죄가 너의 문에 도사리고 앉아서, 너를 지배하려고 한다. 너는 그 죄를 잘 다스려야 한다.”

창세기 4:6‭-‬7 RNKSV


마음에 도사린 죄를 잘 다스리라고 하십니다. 절대자가 이런 터부를 제안하면 그것을 인간이 박살내고 벌을 받는 것이 전형적인 설화적 구조입니다.


가인 이 아우 아벨 에게 말하였다. “ 우리, 들로 나가자.”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 이 그의 아우 아벨 을 쳐죽였다.

창세기 4:8 RNKSV


가인이 결국 창조 이래 가장 큰 죄를 저지릅니다. 성경에서 등장하는 첫 살인자입니다.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이제는 너에게 효력을 더 나타내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 땅 위에서 쉬지도 못하고, 떠돌아다니게 될 것이다.”

창세기 4:12 RNKSV


가인이 받은 형벌입니다. 광야 유랑을 떠올리게 만들죠. JEPD 4문서 중 가인 이야기가 어디에 해당하는지는 한국어 번역본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광야생활 도중 또는 그 이후에 작성된 문서가 출처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뒤에 가인의 발언이 또 신학계에서 쟁점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오늘 이 땅에서 저를 쫓아내시니, 하나님을 뵙지도 못하고, 이 땅 위에서 쉬지도 못하고, 떠돌아다니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저를 만나는 사람마다 저를 죽이려고 할 것입니다.”

창세기 4:14 RNKSV


이 세상에 사람은 세 명 뿐이죠. 아담, 하와, 가인. 그런데 가인은 다른 사람 손에 죽임을 당할 것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농사로 단련된 가인의 실전근육을 나이 든 아담이나 여성인 하와가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거든요.


가인 이 자기 아내와 동침하니, 아내가 임신하여 에녹 을 낳았다. 그 때에 가인 은 도시를 세우고, 그 도시를 자기 아들의 이름을 따서 에녹 이라고 하였다.

창세기 4:17 RNKSV


가인의 아내 또한 출처가 명확하게 기재되어 있지 않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이 땅을 가득 채우라는 말 대로, 아담과 하와가 많은 자식을 낳았다고 해석하면 모순이 사라질까요. 그 중 사건을 터뜨리지 않은 자식들은 기재가 누락되었다고 보면 말이 되기는 합니다.


가인은 형제를 죽였으니 다른 형제들의 보복을 두려워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다른 신학자들의 해석이 궁금하지만 논문까지 찾아 읽기는 싫으므로 넘어갑니다.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 그렇지 않다. 가인 을 죽이는 자는 일곱 갑절로 벌을 받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가인 에게 표를 찍어 주셔서, 어느 누가 그를 만나더라도, 그를 죽이지 못하게 하셨다.

창세기 4:15 RNKSV


4장에서도 처벌과 함께 안전장치가 제공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징계가 작동하는 방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식들을 결코 완벽하게 내버려두는 일이 없으십니다.


라멕 이 자기 아내들에게 말하였다. “ 아다 와 씰라 는 내 말을 들어라. 라멕 의 아내들은, 내가 말할 때에 귀를 기울여라. 나에게 상처를 입힌 남자를 내가 죽였다. 나를 상하게 한 젊은 남자를 내가 죽였다. 가인 을 해친 벌이 일곱 갑절이면, 라멕 을 해치는 벌은 일흔일곱 갑절이다.”

창세기 4:23‭-‬24 RNKSV


인간의 죄와 오만의 역사는 되풀이됩니다. 선악과가 불러온 재앙이 이리도 큽니다. 죄책감조차 못 느끼는 모습을 보시죠.


아담 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였다. 마침내, 그의 아내가 아들을 낳고 말하였다. “하나님이, 가인 에게 죽은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나에게 허락하셨구나.” 그의 아내는 아이의 이름을 셋 이라고 하였다. 셋 도 아들을 낳고, 아이의 이름을 에노스 라고 하였다. 그 때에 비로소, 사람들이 주님의 이름을 불러 예배하기 시작하였다.

창세기 4:25‭-‬26 RNKSV


최초의 예배자 셋이 등장하며 4장이 마무리됩니다.


4장은 타락의 역사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예배자가 등장하며 이야기가 마무리됩니다.


독자들은 5장부터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것임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다.



11/19 저녁묵상


아담 의 역사는 이러하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셨다. 하나님은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그들을 창조하시던 날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고 하셨다.

창세기 5:1‭-‬2 RNKSV


3절부터는 아담의 족보가 이어집니다. 앞 부분에 등장하는 1절과 2절은 5장 전체에서 이질감을 형성합니다. 편집과정에서 삽입된 것이 틀림없습니다만 어떤 의도인지는 마저 읽어봐야 알 것 같습니다.


에녹 은 므두셀라 를 낳은 뒤에, 삼백 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아들딸을 낳았다. 에녹 은 모두 삼백육십오 년을 살았다. 에녹 은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사라졌다.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신 것이다.

창세기 5:22‭-‬24 RNKSV


그 와중 특이한 부분을 발견했습니다. 아담과 그 후손은 몇살까지 살고 "죽었다"라고 기재되어있으나 에녹만은 다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아들딸을 낳다가 하나님이 데려가십니다.


죽음을 겪지 않고 말입니다.


에녹의 이야기를 찾아보려 했으나 아담의 계보를 이으며 이름이 언급되는 것이 대다수였습니다. 예외를 발견하긴 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두고 아담 의 칠대손 에녹 은 이렇게 예언하였습니다. “보아라, 주님께서 수만 명이나 되는 거룩한 천사들을 거느리고 오셨으니, 이것은 모든 사람을 심판하시고, 모든 불경건한 자들이 저지른 온갖 불경건한 행실과, 또 불경건한 죄인들이 주님을 거슬러서 말한 모든 거친 말을 들추어내서, 그들을 단죄하시려는 것이다.”

유다서 1:14‭-‬15 RNKSV


유다서 내용은 메세지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에녹의 이름을 사칭한 것으로 보입니다. 구약에도 기록이 없는 인용이 갑작스레 등장할리가 없지요.


믿음으로 에녹 은 죽지 않고 하늘로 옮겨갔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옮기셨으므로, 우리는 그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옮겨가기 전에 그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렸다는 증언을 받은 것입니다.

히브리서 11:5 RNKSV


히브리서의 내용은 납득이 갑니다.


여담인데 히브리서에서는 에녹 이후 노아를 언급합니다. 아담의 계보를 순서대로 인용하며.. 아 나중에 따로 묵상해야겠습니다.


여튼 에녹의 내러티브는 창세기와 히브리서가 끝이네요. 에녹 떡밥도 뜨거울 것 같은데 자료가 없으니 해석이 어렵습니다.


히브리서에 따르면 믿음이 크면 죽음이라는 고통을 겪지 않고서도 하나님 곁으로 갈 수 있다는 이야기로 해석하면 될 것 같기는 한데요.. 음.


결국 독자는 믿음과 하나님을 기쁘게 해야함을 깨닫게 되겠죠. 다른 복음서나 율법서 등에서 강조하는 경건함을 부각하는 장치가 될 겁니다.


에녹의 내러티브는 또한 에스라가 경전을 편집한 목적이 회중에게 구두로 읽어주기 위함이었음을 함께 고려하며 이해해야 합니다. 민중을 대상으로 경전을 읽으면서 부연설명과 강해가 없었을리가 없죠.


에녹의 내러티브가 포로기 후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떤 의미가 되었을지도 탐구하며 읽어보면 재미가 있겠습니다만 성경에서도 단 두 구절 등장할 뿐인 인물인지라 이쯤에서 중단하겠습니다.


에녹의 내러티브를 경건함을 강조하기 위한 시너지적 장치로 받아들이고, 성경에서 가장 하나님을 기쁘게 하였던 인물인 에녹의 신앙을 상상해 보며 신앙생활을 해 나가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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