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야 내 세월 돌려줘요
언제 이렇게 많이 썼지?
밥 먹듯이 글을 쓰다 보니 어느새 책이 스무 권이 쌓였습니다.
2020년 4월부터 2023년 1월까지만 계산해 보자면 33개월간 18권의 책을 집필했네요. 사실 아직 출판사에서 편집 진행 중인 원고가 2권 더 있다 보니, 이 기간 동안 실제로는 20권을 썼습니다.
대략 매월 0.6권 분량의 글을 완성했고, 50일 간격으로 한 권의 책을 완성했네요.
퇴근 이후나 주말에만 글을 쓰고 있으니 이 정도지, 만약 직장을 다니지 않고 전업으로 글만 썼다면 네 배 정도 많은 글을 쓸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만 해 봅니다.
그런데 일을 하면서 새로운 스킬도 익히고, 처음 보는 사람들도 만나고, 고생도 하고 성취감도 느껴 보는 과정에서 소재라는 것이 생기는 게 아니겠습니까. 아마 골방에 앉아 글만 썼으면 작품활동을 금방 그만뒀을지도 모릅니다.
여튼, 다행히도 저는 아직까지도 글을 쓰는 것이 즐겁습니다. 술을 먹고 게임을 하는 것 보다 글을 쓰는게 즐거워요. 20권의 책을, 아니 편집 중인 원고까지 포함해 22권의 책을 집필했음에도 글은 제게 있어서 업이 아니라 해소의 영역으로 남아 있습니다. 다행입니다. 복 받았습니다.
어쩌면 번식의 욕구를 해소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의 DNA를 복제하여 세상에 남기는 행위라는 점에서, 집필은 야스와 다르지 않거든요.
이쯤 되니 내가 구현할 수 있는 작품과 할 수 없는 작품을 구분하는 눈도 생긴 것 같습니다. 내가 남들보다 잘 할 수 있는 영역도 조금은 알 것 같고요. 남들을 따라잡지 못 할 분야는 확실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머릿속에 하고 싶은 말이 가득 차올랐다면, 양동이를 쏟아버리듯 이를 활자의 형태로 쉽게 옮겨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제 재능인 것 같습니다. 다만 한계도 명확합니다. 별로 할 말이 없으면 진도를 못 나갑니다.
예를 들어 1년에 한 번 떠오를까 말까 한 개꿀잼 글감이 떠올랐다 칩시다. 이 토픽을 회사에서 신나게 떠들고 퇴근하면, 그 주제로 글을 써야겠다는 욕구가 전혀 생기지 않습니다. 이미 회사에서 충분히 대화의 욕구가 충족되어 버린 탓입니다. 이계 제 한계입니다.
전업 작가였다면 생계가 달려있으니 꾸역꾸역 글을 뱉어냈을지도 모릅니다. 기교를 부리며 분량을 늘려보려 애썼을수도 있고요. 혹은 몇날 며칠을 고민한 끝에 한 개의 문장을 빚어냈을수도 있고요. 위대한 작가들은 아마 다들 이런 경험이 있겠죠?
근데 저는 이게 안 됩니다. 게임을 할 때에도 조금만 난관을 만나면 바로 종료하고 삭제해버리는 스타일인지라, 머릿속에서 글을 구상하던 중 쉽지 않겠다는 판단이 들면 바로 그만둡니다. 만약 뛰어난 작가로 발돋움하고 싶다면 반드시 넘어야 할 벽입니다만, 취미로 글을 즐기는 입장에서 굳이 노력해서 극복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딱 아마추어 취미 예술가 수준이 제게는 맞는 것 같습니다. 왜, 퇴근 후에 한 두 시간 정도 기타를 연습하다가 헤어지는 직장인 동호회 있잖아요. 일년에 한 번 정도 지인들 불러 놓고 작은 공연도 하는. 딱 그 정도면 수준을 목표로 하면 계속 즐겁게 글을 써 나갈 수 있을 것 같네요.
다행인 점은 워낙 말을 하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끊임없이 뭔가 문장을 조합하고 글을 만들어내려는 욕구가 한동안은 마르지 않을 것 같기는 합니다. 현실에 말동무가 없으니 종이랑 대화 나누는 거에요. 딱 그 정도입니다.
여튼, 20권이라는 숫자를 채우면 무언가 대단한 변화가 생기고 심적으로 크게 달라질거라 생각했는데 별로 그런 느낌은 없네요.
해가 바뀌면서 눈에 띄는 변화도 있는데요, 매 년 기획출간의 비율이 높아진다는 점입니다. 그 와중에도 하고 싶은 말은 꼭 해야 하는 성격이라 꿋꿋하게 몇 권 팔리지도 않을 POD 출간을 고집하는 것이 어쩌면 제가 되고싶은 작가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지 않나 싶기도 해요.
돈을 벌고 싶으면 남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준비하는 것이 맞습니다만, 저는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는 독백이 더 즐겁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