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AI의 모든 것
AI가 대부분 인류의 지능을 초월한 시점입니다. 사람들의 일자리에 인공지능이 하나 둘 스며들며 입지를 넓혀나갈 것은 자명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산업에서 일자리가 가장 먼저 사라질까요? 무척이나 민감한 주제입니다. 정말 많은 전문가들이 나름의 근거를 들어가며 AI가 쉽게 대체할 수 있는 직업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2018년에는 업무 자동화를 두고 RPA라는 키워드가 가장 뜨거웠습니다. 업무의 단위를 최대한 쪼개어, 단순 반복 업무를 대신 수행하는 일종의 매크로를 제작하는 것이 RPA의 핵심입니다. 이메일 자동 확인, 뉴스 기사 자동 스크랩 등의 작업을 자동으로 처리하는 방법에 대한 관심도가 높았죠.
당시 RPA관련 사업을 수행하던 기업들은 대부분 단순한 업무, 반복되는 업무를 자동화할 수 있다는 부분만 강조하였지, 창의적이거나 매번 다른 방식으로 수행해야 하는 업무의 자동화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았습니다.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봤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생성형 AI 열풍 이후에는 오히려 창의적이거나 논리적인 작업을 AI에게 시키고, 사람은 결과물을 수정하는 등 단순 작업을 직접 수행하는 것이 더 낫다는 쪽으로 트렌드가 옮겨오고 있습니다. 특히 LG CNS와 같이 당시 RPA사업을 진지하게 추진했던 기업들이 앞다투어 생성형 AI 관련 키워드로 사업분야를 옮겨가고 있으며, RPA시절의 광고문구와는 다른 방향의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현상입니다.
그만큼 현재의 생성형 AI 열풍이 당시로써는 전문가들도 예측하기 어려운 영역의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유명 전문가들의 의견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지요. 따라서, 직업 세계의 전환을 이해하려면 최소한 챗GPT 열풍 이후에 수행된 대규모 연구자료를 참고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 이전에 발표된 연구나, 개인의 인사이트에 기반한 추론은 현실과 동떨어진 주장일 수도 있으니 신중해야 합니다.
이번 장에서는 OpenAI와 펜실베니아 대학 연구진이 발표한 논문을 중점으로 위험도가 높은 직업들과 낮은 직업들을 두루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 논문은 GPT와 같은 언어 모델이 고용 시장에 어떤 충격을 끼칠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 결과를 담고 있습니다. 이 논문은 2023년 3월부터 워킹 페이퍼가 ArXiv에 공개되었고, 꾸준히 업데이트되어 최종적으로 사이언스지에 개제되었습니다.
논문의 2023년 8월 버전은 다음과 같은 그래프를 수록하고 있습니다.
글자가 너무 작아서 잘 안 보이지요? 그래프를 읽는 방법을 먼저 알려드리겠습니다.
왼쪽의 글자는 산업군을 의미합니다. 막대 하나하나가 각각 특정 직업을 대표한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막대기의 길이는 위험성을 의미합니다. 상단에 위치한 직업일수록 빠른 속도로 무인화될 것이고, 아래쪽에 위치한 직업일수록 천천히 AI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이 그래프의 맨 밑에서 2번째 항목은 <식당과 카페>입니다. 우리는 식당이나 카페가 점차 자동화, 무인화되는 과정을 매우 흔하게 보고 있습니다. 이를 보며 요식업의 무인화 속도가 무척이나 빠르다 느끼셨겠지만, 속도만 놓고 보면 뒤에서 두 번째에 불과합니다.
제일 위에 있는, 직종은 무엇일까요? 놀랍게도 정답은 <AI 및 IT 전문가>입니다. AI시대에 AI와 관련도가 가장 높은 직업이 가장 위태로운 일자리라는 것이 무척이나 아이러니합니다. 특히 식당보다 수치적으로 4배 이상 위험하다는 예측 또한 놀랍습니다.
상단 1/3지점에 위치한, 가장 이름이 긴 직종은 <공무원>입니다. 공무원의 바로 위에 위치한 산업은 <부동산>이고요. <의사>도 근처에 있습니다. 이것 참,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직종들 대부분이 위험도가 높은 산업에 위치해있습니다.
공무원의 업무는 사실 무인화하기가 가장 쉬운 축에 속합니다. 2018년, 필자는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하던 중 6개월 가량 걸리는 업무를 지시받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 필자는 30분만에 이를 대신 수행하는 소프트웨어를 제작하여 업무를 자동화해버렸고, 이 사건이 이슈화되며 청와대를 비롯한 여러 공공기관에 기술자문을 제공했습니다. 당시 대부분 기관에서 고민하던 업무가 사실은 RPA 수준에서 자동화가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거 전부 도입되면 공무원이 많이 줄어들겠죠?"
"1년 안에 20만 명 정도는 줄일 수 있을걸요?"
"그러면 안 되는데. 죄송한데 회의를 처음부터 다시 해야겠습니다."
당시 모 고위공직자와 나누었던 대화입니다. 절차안정 측면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소프트웨어를 감옥에 보낼 수는 없으니 사람이 필요하다는 점과, 국가의 고용부양 의무 등을 고려하여 기획 단계에서 정책이 상당부분 축소되었지요.
사실 공직에 계시는 모든 분들이 공무원 업무 상당부분을 자동화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공감대입니다. 그렇기에 OpenAI의 연구자료에서도 상당히 위험한 직종으로 공무원이 등재되었고, 일론 머스크도 DOGE 장관으로 취임하자마자 20만명의 공무원을 해고하겠다 밝혔던 것입니다.
그래프의 중단부에는 유통, 물류, 마케팅, 제조, 중공, 건설 등 물건을 운반하고 판매하거나, 제조하는 산업 대부분이 기재되어 있습니다. 현실 세계에서 땀흘려 작업하는 업무가 GPT 때문에 자동화되고 일자리가 축소된다는 이야기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우선 물건의 생산과 관련된 작업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공장에서 자동화된 기계들이 물건을 생산하는 것은 무척이나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점점 더 무인화 비율이 높아지는 추세이고요. 그런데, 무인화가 많이 진행된 현장일수록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공장에서의 무인화는 반복적인 작업에 주로 적용됩니다. 그리고, 반복 작업은 대부분 단순 작업입니다. 단순한 손끼임, 자상, 타박상 등 가벼운 산업재해가 발생할 확률이 상대적으로 줄어듭니다. 반면 자동화하기 어려운 고위험, 고난도 작업이 인간에게 집중되는 경향성이 생길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전체적인 산업재해 발생 건수는 줄겠지만, 중대산업재해 비율은 오히려 증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언어 모델을 도입하면 중대산업재해를 큰 폭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전국적으로 빵을 유통하는 S 그룹의 공장에서 2022년, 2025년 자동화 설비에 사람이 끼여 사망하는 산업재해가 발생했습니다. 특히 22년에는 사망사고 8일 뒤, 자동화 기기에 근로자의 손가락이 끼여 절단되는 사건까지 있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S그룹의 자동화기기에 3천 원짜리 마이크 모듈과 GPT가 탑재되어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근로자가 "멈춰!", "아파!", "무서워!"라고 소리를 지르는 즉시 기기가 동작을 멈추어 산업재해를 예방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도입비용도 저렴하고 운용비용은 거의 공짜에 가까운데도 소중한 인명을 지킬 수 있는 조치입니다. 따라서, 향후 대부분의 자동화 설비에는 사람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AI가 탑재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GPT가 탑재된 기기를 안전관리 용도로만 쓰기는 아깝습니다. GPT는 말을 잘 합니다. GPT가 탑재된 로봇팔은 작업 할당량을 다 채우거나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카톡으로 업무보고서를 작성하여 보낼 수 있습니다. 감독자는 카톡창을 켜두고 기계들이 작성해 보낸 보고서를 살펴보며 작업현황을 모니터링하면 충분합니다. 공장 현장에 투입되어야 할 감독인력을 큰 폭으로 줄일 수 있겠지요.
그런데, 굳이 로봇팔이 작성해 준 보고서를 사람이 읽어야 할까요? GPT는 글도 잘 읽는데요. 자동화 기기가 보낸 보고서를 GPT가 대신 읽고, 사람의 출장이 필요한 상황일 때에만 알람을 준다면 훨씬 더 많은 인원을 감축할 수 있습니다. 본사의 위기대응팀이 필요할 때에만 전국의 공장을 방문하는 식으로 운영한다면 자동화공장에 필요한 인력을 90% 이상 줄일 수 있습니다.
게다가 GPT는 휴일에도 야간에도 군소리 없이 일을 합니다. 오히려 심야전기가 더 저렴하니, 생산시간은 증가하며 운영비용은 더 줄어듭니다. 결과적으로 물건을 제조하는 분야는 GPT와 같은 언어모델 때문에 일자리가 큰 폭으로 감소할 것이라 예측해 볼 수 있습니다.
유통, 물류, 마케팅 산업이 겪을 충격은 물건의 판매 방식 변화만 살펴보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유튜브 광고를 예시로 들어 보겠습니다. 유튜브 사용자가 광고를 한 번 클릭하면, 광고주는 구글에게 600원 가량의 요금을 납부해야 합니다. 이를 CPC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우리가 광고를 100번 클릭하더라도, 물건을 구매할 가능성은 1%가 채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광고를 클릭한 사람들 중에서 우리 의도대로 물건을 구매한 사람의 비율을 전환률이라 부릅니다. IT서비스나 게임에 비해 간식류나 식료품은 전환률이 매우 낮은 편에 속합니다. 이를 어림잡아 높게 쳐서 1%라 생각해 보겠습니다.
물건을 한 번 판매해 보려면 광고 클릭 100번이 필요한 상황이므로, 기업이 CPC로 지불하는 돈은 6만 원이 됩니다. 기업이 물건을 한 번 판매해 보기 위한 비용으로 6만 원의 예산을 잡고 있다 생각하시면 대략적인 이해를 하는 데에는 충분합니다. 그런데 유튜브 광고를 시청하다보면 음료수, 컵라면, 과자 등 3천원도 채 되지 않는 물건의 광고영상도 쉽게 시청할 수 있습니다.
기업은 왜 3천원짜리 물건을 팔아보려 6만 원을 지불하는 걸까요? 소비자가 일단 한 번 구매 해 봐야 다음에 또 구매해 줄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편의점에서 처음 보는 상품을 구매해 본 적도 있겠지만, 구매해 본 적 있는 상품을 다시 구매해 본 경험이 압도적으로 많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기업은 당장 물건 한 개를 팔아서 나오는 이윤이 아니라 소비자의 미래 선택에 투자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성형 AI를 쓰는 기업은 소비자의 구매 패턴을 한 번 바꾸는 데 들어가는 예산을 95% 절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스마트폰에 차곡차곡 쌓인 결제내역을 GPT로 한 번만 분석하면 여러분의 구매 패턴을 AI가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저 고객은 네네치킨을 자주 먹는구나. 저 고객은 주말마다 GS칼텍스에서 기름을 넣는구나. 그 다음은 일사천리입니다.
네네치킨만 시켜먹는 고객에게 <BBQ 배달료 할인권> 혹은 <교촌치킨 닭다리 +1개 쿠폰>을 보내준다면 어떨까요? GS칼텍스 단골 고객에게 <S오일 주유소 3,000원 할인권>을 보내준다면요? 취향에 꼭 맞는 쿠폰을 받은 고객은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새로운 가게에서 구매를 경험할 것입니다.
경쟁사가 6만원을 들여 구매 패턴 변화를 유도할 때, AI를 쓰는 기업은 5% 비용으로 고객을 기분 좋게 만들면서 구매를 유도한다. 경쟁이 성립이나 할까요? 결과적으로 AI도입에 늦어진 기업과 그 협력업체들은 물건을 홍보할 기회, 판매할 기회, 운반할 기회, 보관할 기회, 생산할 기회를 연쇄적으로 놓쳐버릴 것이라 예측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런 통찰들을 조합해 본다면 언어 모델의 발달이 몸을 움직여 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결국 생성형 AI 시대에 인공지능으로부터 완전히 안전한 산업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AI시대에도 지금까지 해 오던 방식을 그대로 고수하며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은 가만히 있어도 재산이 증가하는 자본소득자밖에는 없습니다. 육체노동이건, 지적노동이건, 세상에 부가가치를 전달하며 돈을 버는 모든 사람들이 AI와의 경쟁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조금 더 상세히 들여다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