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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기계>라는 오랜 꿈

생성형 AI - 미래를 살아갈 우리를 위한 생존 가이드

by 반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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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일 수 있는 지성을 갖춘 기계. 요즘에는 정말 그런 기계가 출시되는 것이 머지않은 일처럼 느껴집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생각하는 능력을 갖춘 기계들을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마블 영화에서 인공지능 비서 자비스(JARVIS)가 등장한지도 벌써 20년이 다 되어가네요. 당시에는 “10년 뒤에는 저런 인공지능이 등장할 것이다.”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인류가 스스로 생각하는 기계에 대한 환상을 품은 것은 무척이나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탈로스(ΤάλΩς)라는 인공지능 로봇이 등장합니다. 탈로스는 인간처럼 생긴 거대한 청동상이고,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이는 강력한 병기입니다. 해적이나 적함을 능동적으로 탐색하고 요격하는, 일종의 자율방어 AI 시스템이지요. 르네상스 시대 유행했던 오토마톤이나, 자격루에 탑재된 종을 치는 사람 인형 역시 사람과 닮은 자동화된 기계에 대한 동경을 현실에 구현한 장치였을 것입니다.


기술적으로 <인공지능>으로 분류되는 소프트웨어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시기와는 별개로, 지능의 기계화를 향한 우리의 욕망은 여러 문화권에서 무척이나 오래전부터 계속되어 온 현상입니다. 그러므로 AI의 발전사는 기술이 있었기에 개념이 정립되어가는 과정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던 상상력의 산물을 현실에 구현해내기 위한 수단으로써 기술이 뒤따라 발전해온 역사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류는 왜 지능을 가진 기계를 상상하고, 현실의 존재로 구현해내고자 노력해온 것일까요? 여러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근에는 산업적인 효용성이 가장 큰 동기로 작동하는 것 같습니다. 업무를 더 빠르게 끝내는 데 도움이 되는 AI나 인력을 대체할 수 있는 AI에 대한 관심이 무척이나 뜨겁습니다. 하긴, 사람이 잠들어 있는 동안에도 AI는 일을 할 수 있지요. 학계에서는 "복잡한 현실 세계의 데이터를 쉽게 해석할 수 있는 도구"라는 측면에서 AI에 주목하기도 했습니다. 하나같이 합리적으로 납득이 되는 이유들입니다.


그런데 어쩌면 우리는 그런 합리적인 핑계가 아니라 다른 이유로 인공지능을 동경해 온 것 같습니다.


고대 그리스는 경제와 효율의 합리성보다도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합리성을 추구했습니다. 그런데 굳이 탈로스를 인간 모습으로 설정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심지어 역사 속 이야기가 아니라 신화적 존재입니다. 허구적 표현이 허용되는 문학적인 텍스트라는 뜻이지요. 그렇다면 인간 모양의 기계보다는 크레타섬 주위를 둘러싼 신성한 번개구름 등의 형태를 상정하는 것이 신의 권위를 강화할 수 있으니 문학적으로는 더욱 목적에 합치하는 방향이 아니었을까요? 왜 탈로스는 인간의 형상이어야 했을까요?


오토마톤의 외형은 왜 인간형이었을까요? 장영실은 왜 인간의 모습을 한 인형이 자격루의 종을 치도록 설계했을까요? 인간처럼 생각하는 기계, 인간의 모습을 딴 자동인형.


필자는 이들이 실용성보다는 상징성에 훨씬 더 비중을 둔 장치들이라 생각합니다. 인간에게는 인간 스스로의 정신을 투영한 존재를 창조하고싶다는 욕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창조자가 되고 싶다는 인간의 오만함의 발현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즉, 우리는 우리를 닮은 기계가 대단히 효율적이거나 실용적이어서 이를 원했다기보다는, 그냥 그런 기계를 만들고 싶다는 충동과 욕망에 이끌려 인공지능 기술을 발전시켜온 것이 아닐까요? 이렇게 생각하면 많은 퍼즐 조각들이 맞아떨어집니다.


AI기술의 발전은 어딘가에서 갑작스럽게 툭 튀어나온 흐름이 아주 오래된 욕망의 연장선상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기술이 너무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오래된 환상을 구현해내기 위해 정립되어온 기술은 어느덧 우리의 상상을 추월하기 시작하는 시점에 도달한 것으로 보입니다. 바둑 챔피언보다 바둑을 잘 두는 기계, 의사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질병을 진단하는 AI, 그리고 작가보다 글을 잘 쓰는 GPT까지.


“어떻게 하면 사람을 닮은 존재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제 이와 같은 질문은 필요를 다했습니다. 이제는 전문가들조차 나보다 일을 잘 하고, 나보다 스마트하고, 나보다 더 똑똑한 AI들이 가득 채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세상이 와버렸습니다. 몇 년 새 "우리를 닮은 기계"를 상상하며 즐거워하는 시대는 막을 내려버렸네요.


새로운 질문이 필요한 순간이 되었습니다. "AI가 우리보다 나은 존재로 설계된 것은 아닐까?“ "인류가 추구해 온 기계는 결국 인류를 대체할 것인가?“ 이런 질문도 유의미하다고 봅니다. 여기에 한 가지 질문을 더 얹어드리고 싶습니다.


"나는 결국 누구인가?“


인공지능을 알기 전에 나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타인의 평가에 의존하여 자신을 정의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평가해 줄 존재들이 하나둘 기계로 바뀌어가는 것을 보며 두려움만을 느낄 것입니다. 하지만 나 자신을 스스로 정의하는 사람은 격변의 세상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습니다.




신간에 들어갈 도입부입니다.

브런치에 책 내용 대부분을 업로드해도 여러모로 재밌을 것 같은데, 혼자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고민좀 해 보겠습니다.


생성형 AI를 주제로 기술, 산업, 인간, 철학을 두루 훑어보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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