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상의 어떤 생명체가 유해할 수 있을까

<미물일기>를 읽고

by 니디

오늘은 '일상 속에서 행복을 느끼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저는 팔목에 찬 얇은 시계마저 갑갑하게 느껴지는 날들이면 곧바로 제 강아지들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곤 합니다. 저는 '개'만큼 사랑을 실천하며 사는 생명체를 아직 경험하지 못했어요. 그 사랑이 가득한 녀석들을 보고 있으면 정말이지 잠시나마 제 마음과 머릿속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는답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행복한 삶을 선물하는 일들은 작은 것에서 비롯되는 거 아닐까요?

나만 보면 쉴 새 없이 꼬리를 흔들며 귀를 납작하게 젖히는 나의 강아지 두 마리

무슨 할 말이 그렇게나 많은지 눈만 마주치면 냐옹~하고 수다를 떠는 고양이 한 마리

불어오는 더운 바람에 흔들리는 초록 이파리들

사랑하는 사람의 따뜻한 눈길과 말 한마디

오랜 친구와 특별한 것 없는 안주에 기울이는 술 잔

더운 여름 혀끝을 차갑게 식혀주는 아이스크림 한 입

우연히 만난, 마음에 쏙 드는 멜로디의 음악들..

여기 행복을 파리, 거미, 지렁이, 비둘기 등 즉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에서 찾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책 <미물일기>를 쓴 작가 진고로호 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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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서 저는 인간 이외의 생명체를 '미물'이라는 단어로 일컬어지는 것에 작은 분노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제 경험에 의하면 동물과 곤충과 새들과 물고기들이 미물이 아니었거든요.

오히려 그들은 너무 많은 방면에서 저보다 월등히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어 그들을 마주할 때마다

대단한 존경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인간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 중에 자신들이 가장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동물이 인간보다 하등하다는 것은 어떤 것을 기준으로 분류해 나온 판단일까요?

인간을 제외한 모든 생명체의 고통이 인간의 그것보다 더 가치가 없다고 단정 짓는 것은 옳은 일일까요?

우리가 어떤 권리로 비둘기를, 멧돼지를, 오리를, 쥐를, 두더지를, 참새를, 까마귀를, 직박구리를, 고라니를, 까치 등을 '유해 야생동물'로 정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하루하루 생존을 위해 버티는 삶을 살아오듯 그들도 그저 살아가는 것뿐 인걸요.

편편한 땅 위에 콘크리트 정글을 짓고, 하루아침에 동물들의 소중한 보금자리를 삭제시켜버리는 일.

그러면서 우리는 적반하장으로 비둘기들이 우리가 지어 올린 흉물스러운 빌딩에 똥을 싸재껴

건물이 부식되는 것을 이유로 들어 그들을 유해 동물로 만들어버렸죠.


그런 일련의 현상들이 발생될 수밖에 없는 원인은 도대체 맨 처음 누가 먼저 제공한 건가요?

인간이 아닌가요?

정령 인간은 이 지구상에서 약탈자가 될 수밖에 없을까요?

인간이 아닌 모든 생명들과 함께 '공생'할 수는 없을까요?

우리가 지구의 주인인가요?

그것은 순전히 인간의 무식한 착각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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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물일기>에서도 '비둘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만,

저도 작가처럼 항상 비둘기가 굉장히 똑똑한 도시 동물 중 하나라고 여겨왔습니다.

비둘기는 오직 땅에 떨어진 음식만 주워 먹습니다.

포장마차에서 파는 떡볶이, 튀김 등의 음식물에는 일체 입을 대지 않죠.

어느 날 퇴근길 저는 비둘기가 인간과 공생하기 위해 습득한, 그들의 현명한 행동을 포장마차 근처에서 흘린 음식 찌꺼기를 주워 먹는 비둘기를 만나면서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포장마차 주인의 등쌀이 과거 언젠가에는 있었겠지만, 저는 단 한 번도 파는 음식에 입을 대는 비둘기를 내쫓은 사장님의 성화를 목격한 적이 없습니다. 도시의 비둘기들은 오직 인간이 먹다 버린 음식이나 먹다 흘린 음식만을 제 부리에 가져다 댑니다.

제가 언젠가 친구에게 이 사실을 말했을 때, 친구 또한 '어? 진짜 그렇네?'라며 놀란 표정을 했을 때 이것은 저만의 오해가 아니겠구나 싶었습니다.

너무 기특하지 않나요. '기특'하다는 것 또한 인간 중심적인 단어라면 삭제하겠습니다. 그런데 달리 대체할 만한 단어가 떠오르질 않습니다.(ㅠㅠ)



작가 진고로호님은 <미물일기>에서

"동물은 생존하기 위해 집중한다. 완전하게 현재를 산다."라고 말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삶 속에 '현재'라는 말이 다르게 와닿기 시작했습니다.

항상 미래를 바라보며 달려오던 우리 인간들이 '현재'라는 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오직 현재를 행복하게

살아야만 그렇게 고대하고 기대하던 '미래 '또한 만족스러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버린 거죠.

작가의 말마따나 동물들은 이미 이 사실을 알았고, 행동하며 살아왔는데 말이죠.



그런데 이 '현재를 사는 일', 생각보다 참 어렵더라고요.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저는 하루하루 달라지는 매출에 일희일비를 밥보다 더 자주 하며 하루를 메꾸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거 아시나요? 자영업에서 가장 큰 위험이 바로 '일희일비'라는 사실을요.

이놈의 '일희일비'를 컨트롤하려 부단히도 애쓰지만 참 어렵습니다.

게다가 생애 첫 장사이고 저와 남편 둘 다 가게 하나에 매달려있다 보니, 마음의 조그마한 틈을 내는 것조차 쉽지 않아요.

아마 <미물일기>의 작가 또한 이런 마음으로 산책에 나서 동물과 곤충, 나무 친구들을 만났던 것이 아닌가 짐작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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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빗속에 젖어 바르르 떨며 죽어가던 참새 아가를 동생이 품에 안고 집으로 데려온 적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전 태어나서 처음으로 참새를 참으로 가까이 보게 되었고, 그 앙증맞은 참새의 얼굴은 '사람을 무장해제시키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귀여움이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제 마음을 단번에 무장해제 시켰죠.

저와 동생은 곧바로 흥건한 몸의 물기를 최대한 닦아준 다음 녀석의 체온을 높이기 위해 담요를 찾기 시작했어요. 워낙 몸집이 작아 두꺼운 담요 대신 얇은 수건으로 몸통을 돌돌 말아주었죠.

쌀 몇 톨과 물을 참새를 넣어둔 소쿠리 안에 넣어두고 잠자코 녀석을 지켜봤습니다. 죽는 건 아닌지 걱정이 이만저만이었거든요.

한 10분 정도 지났나, 녀석이 갑자기 몸에 두르고 있던 수건을 내팽개치고 날갯짓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내리던 비가 그치기 시작한 터라, 녀석이 원하면 언제든 발견된 그 장소에 데려다줄 수 있었어요.




조심스럽게 녀석을 수건에 감싸 집 앞 화단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더 조심스럽게 참새를 내려주었죠. 녀석은 찰나의 머뭇거림도 없이 푸른 잎이 돋아난 나뭇가지 위로 파드득 날아갔습니다. 아기 새가 워낙 빨라 동생과 저는 고새 녀석의 뒷모습을 놓치고 말았지만, 전 그날 녀석 덕분에 하루치 행복을 마음속에 두둑이 충전할 수 있었답니다.

언젠가 나중에 돈을 많이 벌면, 아픈 야생동물들과 유기 동물들을 다 같이 보살필 수 있는 쉼터를 짓고 싶어요. 가끔 생각하는 건데, 이것만이 제가 태어난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직 그 사명을 이루지 못해 지금의 내 삶은 이렇게도 우여곡절이 많은 거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고요.

지구상의 모든 생명을 존중하는 모든 분들에게 추천할게요. 작가 진고로호의 <미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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