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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현 Aug 13. 2023

대리기사님을 만난다는 건.

  서울은 차가 없어도 살만하다. 대중교통이 잘 되어있기 때문에 오히려 출퇴근 시간엔 차 없이 다니는 뚜벅이가 더 이득. 근데 나는 어쩔 수 없이 식물을 사입하러 직접 여기저기 돌아다녀야 했기에 차를 살 수밖에 없었다. 


  내가 면허를 딴 건 고등학교 졸업 후였던 것 같다. 이제 잘 기억이 안 난다. 아까 친구랑 술 한잔 하며 나왔던 야구를 빗대면 누군가 규칙을 알려주지 않아도 경기의 흐름과 규칙을 알았던 것처럼 면허를 딸 때 필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기본 규범 같았달까. 최근에 놀랐던 건 비보호, 유턴에 관련해서 논란이라는 것이다. 비보호가 초록불에 보호받지 않고 좌회전을 한다는 건데 빨간불에 간다는 말도 안 되는 지식을 가진 용감한 사람을 보고는 기겁했다. 야구의 규칙처럼 따로 제대로 공부하지 않았던 거 같은데 나는 왜 올바르게 아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다행이다. 자연스레 운 좋게 올바른 규범들을 알고 있다는 것이 차에 관심이 많았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운전면허 필기를 치는 당일 새벽에 답만 쭉 보고 갔던 양아치였는데 말이다. 나름 면허가 까다롭던 시기에 한 번에 다 통과해서 도로주행 시험 때는 눈보라가 쳤는데 시험관이 운전을 부드럽게 잘한다는 칭찬도 해줬다는 뭐 그런 과정이 있었다.


  면허를 딸 수 있는 나이가 되고서 바로 취득했지만 운전은 이십 대 후반이 되어서야 했다. 그것도 많은 초보무법자들이 판친다는 제주도에서, 나도 그 원오브뎀이 되었었다. 근데 나는 트럭 몰 일도 없는데 1종 보통을 취득했었다. 그러고는 오토 차를 몰아본 적이 없었다. 기어 변경을 클러치로만 했는데 브레이크로 할 줄이야. 그것도 모르고 제주에서 렌트를 아주 용감하게 했다. 친구 학회가 제주에 있어 숙소 침대가 자리가 빈다는 말에 혼자 차를 몰고 호텔로 가는 일정을 계획했다. 레이를 빌렸다. 지금은 너무 당연하지만 기어변경을 하지 못해 식은땀을 흘렸다면 믿어줄까. 렌트업체 특성상 차가 테트리스 되어 있어서 내가 나가야 뒤차가 나가는데 출발하지 못하는 나는 어쩔 줄 몰랐다. 아빠에게 전화했지만 받지 않았다. 어떻게 방법을 알아내 출발했지만 나는 왜 서쪽으로 갔지? 나는 제주대, 동쪽으로 가야 했는데. 무법자는 직진만 하다가 멈추기 위해 골목 어딘가로 들어가 모르는 아파트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다시 리프레시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의 목적지는 반대편이었고 네비를 찍어 서울만큼은 아니지만 대구만큼 막히는 제주 시내를 뚫고 친구 숙소인 호텔 주차장으로 꾸역꾸역 들어갔다. 근데 또 난간에 봉착했다. 주차. 이래저래 주차를 하는데 내 맘 같지 않은 임시 마이레이. 그러던 중에 내가 길을 막아 나갈 수 없던 차량에게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부탁하러 갔다.

'죄송한데 혹시 주차 좀 해주실 수 있을까요...?'


  이때가 면허를 따고서 처음 운전했다고 보면 되는 순간들이다. 아빠차를 언젠가 국도에서 몰 수 있도록 해줬었는데 찰나였달까. 그러고선 종종 공유차량으로 필요할 때마다 운전을 하긴 했지만 언제나 매 순간 긴장했다. 종교 없이 나를 믿는 나인데 핸들 앞에선 나를 믿지 못하는 나였기에 항상 떨렸다. 


  그렇게 일 때문에 차를 산 후에도 항상 긴장은 떨쳐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운전개차반까지는 아녔다고 생각한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아빠의 말 중 하나인데, 누군가의 운전을 욕하는 순간에 하는 말인 '저 여자 아니가'라는 말과 반대로 나 보고는 남자처럼 운전한다는 그 말이 그나마 욕할 만큼의 실력은 아니었지 않나 추측해 본다. 나름 대처능력을 가졌고 남들에게 피해 주지 않는 운전을 하는 노력을 하지만 피할 수 있다면 피했던 운전으로 굳이 버스나 지하철을 타서 오래 시간을 소비하기도 했다. 그래서 대리기사님을 만난 일이 없었다. 이제 나의 차, 베니는 3년 차에 접어들었는데 가장 첫 번째 대리기사님은 장례식장에서 집에 올 때 한 번, 그때 이후로는 없었다. 그런데 최근 1달 동안 2번의 기사님을 만났다. 그러면서 느낀 건 내가 진짜 이제 나의 이동수단이 네 바퀴가 되었다는 것이다. 


  사람을 좋아해서 레트리버라 불렸던 내가 지금은 세미 대인기피증처럼 사람이 싫어진 지금. 소소하게 대리기사님들의 얘기를 들으며 재밌었던 순간을 떠올리다 보니 이런 기회가 나에게 왔다는 것이 꽤나 능숙한 운전자가 되어서, 운전할 기회가 많아져서 그런 게 아닐까 싶어 운전능력이 레벨업이 되어 느끼는 성취감 같아서 기쁘다.


  저번 기사님은 내가 사는 동네 근처에 사시는 분이었다. 퇴근할까 싶어 잡았다는데 오는 동안 기사님은 신나게 본인얘기를 하셨다. 먹고살만큼 벌어놓았고 본업이 아니라 필드 나갈 취미생활용 용돈벌이를 한다고 했다. 오늘 만난 기사님은 본인얘기보단 차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다. 나도 차에 대해 관심이 꽤나 많은 편이라 짧은 거리를 오면서도 재미나게 얘기하면서 왔다. 아내분이 차가 커서 주차를 불편해한다면서 소형 suv인 내 차를 눈여겨보고 있다는 얘기로 시작해서 요즘 이슈인 롤스로이스 차에 대한 얘기 등등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됐다. 사람에 질려 산으로 들어가고 싶은 지금의 나에게 새롭게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배우는 걸 보면 사람의 본질은 크게 변하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도 이렇게 대리기사님들을 만난 기회가 생긴다는 건 나의 생활에 차, 운전이라는 게 예전보다 깊숙이 들어왔다란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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