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한다는 친구랑 연락하다가 꺼내어진 과거의 우리들 이야기. 어떤 순서로 지금까지의 나의 삶이 이야기도 담길지 모르겠지만 남들보다 1년 늦게 들어간 22살의 대학교 2학년 1학기 시간표는 역학의 향연이었다. 거기에 수치해석, C언어 향 첨가. 복학생을 합치면 300명쯤 되는 우리 과, 우리 학부 특성상 여러 교수님들이 같은 과목을 개설한다. 학생의 입장에선 쉽게 잘 배워서 좋은 성적 받는 것이 매 학기 목표이지 않나. 쉽게.. 그래서 수강신청에 모두가 목을 맨다. 거저 좋은 학점을 받기 위해. 비싼 돈 내고 자의적으로 등록한 과정을 누가 시켜 억지로 하듯이 왜 날로 먹는 게 그저 좋다 생각했던 걸까.
어찌 되었든 결과적으로 난 수강대첩을 조졌다.
퀴즈라 칭하지만 한 학기 성적에 알뜰살뜰하게 기여하는 시험을 매주 주관하시는 교수님들의 수업들로 가득 찬 학기를 보내게 되었다. 꾸준히 공부하고 똑똑한 친구들은 오히려 일주일마다 새로 획득한 지식을 확인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지금에서야 들긴 한다. 왜냐면 아까 나와 이야기했던 친구에겐 어렵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똑순이 그 자체인 친구니까. 하지만 나에게 가장 어려운 꾸준함, 그리고 미리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고통 그 자체였다. 마지막에 몰아서 해야 효율적으로 밀도 있는 집중력을 이끌어 내서 공부할 수 있는데 말이다. 그 와중에 수치해석이란 과목이 그나마 숨구멍이었다고 착각했던 나. 대부분 그랬겠지? 시험은 오픈북으로 한다는 달콤한 말을 들었으니까.
매주 각 과목들의 과제와 퀴즈에 치여 하루하루 살다 보니 금방 중간고사가 다가왔다. 시험 기간에 특히나 달콤한 알코올도 섭취해야 했고 나머지 시간들 사이에는 역학들 공부하기에도 벅차 뒷전이었던 수치해석 시험. 시험 전 날, 오픈북이니 어느 위치에 뭐가 있는지 표시스티커를 붙이고 입실하자는 전략을 짰으나 대실패였다. 들고 들어간 책의 표시스티커는 옆면이 모자라 윗면에도 붙여야 했을 정도였다. 과장 조금 보태자면 대충 전체 페이지 수의 절반 정도는 붙어있었다. 하지만 무쓸모였다. 원래 교과서라는 게 예제문제와 연습문제의 갭이 크지만 거기서 또 연습문제와 시험문제와의 갭이 엄청난다는 거,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씨앗에 물을 주면 싹이 난다’를 알려주고 밀가루를 만들어내야 하는 게 연습문제라면 빵을 만들어내야 하는 게 시험이니까. 그날의 나는 시험 문제 속에 있는 단어가 나온 곳을 찾아 비슷한 연습문제를 찾았지만 답을 얻기에 실패하였고 예제를 풀며 시험시간에 시험공부를 하다가 나왔다는, 그런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그 이후로 그 친구도 나도 오픈북 시험 수업은 듣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