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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아란 Feb 01. 2020

혼수로 플스를 해온 아내

코로나 바이러스로 외출을 못하는 우리가 버티는 방법


J는 하루 중에도 여러번 뉴스를 확인한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이다. 처음에는 중국 상황을 살피다가, 이제 국내 확진자도 늘어감에 따라 우리는 외출이 더 꺼려지게 되었다. 설 명절 이후 계속 집순이 집돌이로 지내고 있는 중이다. 마스크 쓴 사람들 풍경도 지인이 우리집에 와서 식사하면서 알게 되었다.


영화 '감기' 속 장면


서울이 아닌 곳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던 나는, 외출이 꺼려지는 이 상황이 새롭다. 남쪽 따뜻한 곳에 있을 때 서울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는 늘 '남의 이야기'였고, 언제나 내 생활반경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사스 때도, 메르스 때도, 조용히 흘러갔다. 그랬던 내가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인해 외출을 못하고 버틸 수 있는 건, 출근을 안방에서 작은방으로 5초만에 하기 때문이고, 넷플릭스와 플스(플레이스테이션)가 있는 덕분이다.



PC방에서 게임하다 여친 전화 받는 남자


J는 게임을 좋아한다. 고등학생 때도 야자시간에 공부하다 말고 PC방을 가기 일쑤였다. 내 기억 속 게임은 초등학생 때 포켓몬스터 게임을 했던 것, 피처폰시절 타이쿤 게임, 흑백 전자사전에 있던 테트리스, 윈도우 기본게임인 지뢰찾기를 했던 것 정도? 오락실도, PC방도 거의 대학생이 되어서야 출입을 했었다.


포켓몬스터는 원래 이랬다! 위키하우. How to Catch Zapdos in Pokémon Yellow


어릴 때 오락실과 PC방 출입을 거의 하지 않았던 것 뿐만 아니라, 오락실에 가는 남자애들을 선생님께 일러바치기도 했다. 오락하는 남자애들이 한심했고, PC방에 가는 남자아이들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했다. 영화와 게임 모두 같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이지만, 게임은 '한심한 남자아이들이나 하는', 여자가 할 법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익숙했다.


그리고 좀 더 자란 후에는, PC방에 가서 연락두절되는 남자친구, 혹은 가지 않았다고 거짓말하는 남자친구 때문에 연인사이에 늘 싸우는 이야기들을 듣다보니 PC방과 게임은 연애를 방해하는 한 요소로 인식 되었다.


그런 나에게 J는 같이 게임을 하자고 설득했다. 쉽게 설득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떤 때에도 J는 친구들과 PC방을 갔을 때 연락두절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디야?"

"지금 친구들이랑 PC방"

"근데 왜 전화 받아????"

"전화받는 게 왜?"

"친구들이랑 게임하느라 바쁘잖아"

"게임하느라 바쁜 거랑 자기 전화 받는 거랑 무슨 상관이야?"


물론 게임을 같이 하던 친구들은 뭐하는 거냐고 한소리 했을테지만, 나는 항상 J의 우선순위였다. 오히려 PC방에서 전화를 너무 잘 받는 바람에, 내가 얼른 끊고 게임에 집중하라고 할 정도였다. 그리고 꼭 게임에 이기라고 당부했다.



혼수로 플스4를 사다


처음에는 배틀 그라운드를 같이 하자고 했다. PC게임은 포켓몬스터가 다였고, 스타크래프트 한 번 해보지 않았던 나는 캐릭터가 뛰는 방향과 카메라 시선의 방향을 일치시키라는 J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은 이해하지만, 자꾸만 카메라 시선은 뒤로 향한 채 앞을 향해 뛰었다. 원래 후방에 적이 있는지 확인할 때 잠시 카메라 시선을 돌리는 건데 그 상태로 계속 뛰었던 것이다. 몇 번 배틀그라운드 전용 PC방을 갔다가, 이내 포기해버렸다. J는 의도하지 않았을 지라도 자꾸만 못하는 나를 질책하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운전연수 중인 아내 옆에 앉아 답답해하는 남편처럼 말이다. 한동안 같이 게임하는 일이 없다가 같이 하게 된 건, 결혼을 하고 플스를 사게 되면서였다.


신혼집을 하나둘 채우며 우리는 플레이스테이션, 그러니까 플스를 사기로 했다. J는 플스3를 통해 플스 시리즈에 이미 익숙했고, 나는 미국에서 교환학생 중일 때 XBOX를 해본 적이 있었다. 거실에서 다같이 XBOX를 즐겁게 했던 기억도 플스 구입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결혼하면 어차피 못할 건데 뭐하러 사느냐"고 하는 주변의 반응에 J는 아내가 산 거라며 SNS로 자랑을 했다. 워낙 게임하는 남편vs못마땅한 아내의 구도가 많기에 게임하는 남편을 이해해주는 나는 J의 자랑이었다. 게다가 내가 플스로 '어쌔신 크리드 오디세이'를 완료한 뒤로, '아내가 어쌔신 크리드를 한다'고 자랑인듯 아닌듯 이야기하며 주변 지인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This is Sparta! 스파르탄 킥은 어쌔신 크리드 오딧세이 최고의 기술임에 틀림없다.


사실 내 첫 게임이자 최애 게임, '어쌔신 크리드 오디세이'의 엔딩을 보기까지 피눈물나는(?) 적응기간이 있었다. 듀얼쇼크(조이스틱) 조작법에 익숙하지 않아서 거짓말 안하고 말 그대로 수십번 죽었다. 배틀그라운드를 할 때처럼 카메라 방향 조절에 익숙하지 않았고, 레벨이 낮아서 맞으면 한 방에 죽는데 피하지를 못했다. 옆에서 "피해, 피해, 피하라구!" 외치던 J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한 게임을 끝내고 나니 다른 게임을 시작하는 것도 쉬웠다. '스파이더맨',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레드 데드 리뎀션2', 그리고 오늘은 시국에 맞게 '라스트 오브 어스: 리마스터'도 시작했다. (엔딩을 본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



플스의 장점, 이런 점이 좋다!


'어쌔신 크리드 오디세이'를 하면서 게임에 대한 오해가 많이 사라졌다. 실제로 플레이해보니 게임이라기보다는 유저가 마음대로 엔딩을 결정할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조이스틱에만 익숙해진다면, 4D영화보다 훨씬 몰입감있는 영화를 한 편 볼 수 있다. 그리고 영화 못지 않게 스토리가 탄탄한 게임들이다보니, 실제 참여하지 않더라도 플레이하는 걸 보기만 해도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스토리가 약한 게임은 뼈대가 약한 거나 마찬가지라서, 초반 인기몰이를 할 지라도 지속적인 팬을 확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한다. 스테디셀러 게임은 좋은 시나리오와 탄탄한 전개에 달린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방에 틀어박혀 게임하는 대신 거실에서 가족이 함께 플스를 즐길 수 있다는 것도 장점 중 하나다. 플스를 사기 전에는 J 혼자 방에서 PC 게임을 하곤 했는데, 나와 한 집에 있으면서 방에서 혼자 게임을 하는 게 너무 싫었다. 모바일 게임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플스는 거실이라는 트인 공간에서, 함께 게임하며 취미시간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앞에서 언급했듯 지켜보기만 해도 재밌기 때문이다.



게임할 때 서로 터치하지 않는 부부


J 덕분에 좋은 게임들을 많이 알게 되면서, 남자아이들이나 하는 문화라는 고정관념도 깨졌다. 게임이 나쁜 것이라는 생각이 없어져서 그런지, J가 게임하느라 설거지를 도와주지 않을 때 그러려니 한다. 반대로 J가 밥을 준비하고 내가 게임을 할 때도 있다. 물론 도와주지 않아도 되는지, 계속 게임을 해도 되는 지 물어보고 한다. (대화가 중요하다)


아마 우리 부부는 아이가 게임을 한다고 해도 오히려 같이 플레이하면서 지지를 해줄 것 같다. 가끔 아이가 게임을 너무 좋아하면 어떻게 할 것인지 얘기를 나눠보곤 하는데, J는 만렙 탱커가 되어서 아이와 함께 게임을 하겠다고 했다. 아마 난 어떻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취미를 공유할 수 있게 되었는 지, 오늘 쓴 글을 꺼내들어 읽어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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