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아란 Jan 23. 2020

그 질문은 50만원짜리입니다.

신혼부부의 자녀계획이 궁금한 사람들에게




J와 내가 자리하지 않은 새해 첫 가족 모임이었다. 친척들이 옹기종기 모인 자리에서 누군가가 내 동생에게 물었다.


“네 언니는 언제 애 낳는대?”


명절 잔소리 메뉴판에서 최고가인 50만원에 해당되는 질문이었다. 이런 일이 있었다고 전해주는데, 유선 너머에서 미간이 찌푸러지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왜 저런 질문을 하는 건지 이해가 안되는 모양이었다.


그 질문을 하려면 50만원을 내시오.



왜 양가 부모님도 하지 않는 질문을 하는 걸까?


사실 다른 누구보다 나는 결혼 후 지금까지 "언제 애기를 가질 거냐" 라는 질문에서 꽤 자유로웠다. 양가 부모님 누구도 내게 언제 아이를 가질건지 물어보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진 않고 양가 부모님도 푸시하지 않으시니 스트레스 없이 J와 자녀계획과 시기를 얘기했다. 그냥 부부의 일상 대화 주제 중 하나로 다루어질 정도다.


연초 가족모임에서 그런 질문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먼저 든 생각은 '왜 양가 부모님도 하지 않는 질문을 하는 걸까?'였다. 결혼을 하면 애기를 언제 가질 거냐는 질문은 예상도 했고 각오도 했다. 그런데 신혼생활 1년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그런 질문을 받으리라 생각은 못해서 약간의 충격을 받았다. 지금까지 그런 질문을 한 사람은 나이 90이 넘은 우리 외할머니가 유일했다.


가까이에 살며 왕래가 잦았던 외할머니는 나와 통화를 하거나 직접 만날 때나 "니 무슨 소식 없나? 내가 어제 꿈을 꿨는데"를 꼭 빠뜨리지 않고 말했다. 온갖 정이 다 든 우리 외할머니지만, "너희 시부모님이 겉으로는 내색 안해도 기다리고 있을끼다." 라는 소리를 듣자 할머니니까 속으로 그러려니 하고 겉으로 질색해버렸다.


애를 낳지 않는 현실적인 이유


아이를 낳을 계획이기는 해서 J와 나는 네이버 웹툰에서 "아이키우는 만화"와 "닥터앤닥터 육아일기"를 꼬박꼬박 챙겨보고 있다. 임신, 출산과 육아는 워낙 케바케라고는 하지만 몰라도 너무 모르는 우리는 웹툰으로 스스로를 교육하고 있는 셈이었다. 웹툰의 내용과 댓글에서 임신과 출산, 육아의 고통을 간접체험하면서 말이다.


댓글 중 가장 공감했던 부분은 육아휴직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애를 낳지 않는 이유에는 부부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육아휴직이야말로 가장 직격탄이 아닐까 싶다. 직전 직장의 클라이언트였던 국내 명실상부 유명 대기업에선 어떤 종류의 휴직을 쓰던, 그 빈 자리를 채워주지 않는다고 했다. 부서 동료들이 휴직자의 일까지 추가로 떠안게 되니 육아휴직을 주변 눈치를 보고 쓸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마치 시스템의 부족함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구성원들끼리 서로 돌던지기를 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게다가 육아휴직 후 직장에 복귀했을 때 남녀 불문하고 인사상 불이익을 준다는 이야기는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녀 모두가 육아휴직을 써야한다고 생각한다. 회사도 모든 사람에게 불공평한 처사를 내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국가에서 육아휴직을 쓰기 어렵게 만드는 현재의 시스템과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것에 대해 지금보다 훨씬 강력한 제재를 마련해야하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무자식이 상팔자다!


“네 언니는 언제 애 낳는대?” 질문이 있었다는 걸 뒤늦게 전달받은 아빠는 30년 넘는 육아(?)경력에서 우러나오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무자식이 상팔자다!"


앞으로 내게 자녀 계획을 물을 사람은 우리 부부와 양가 부모님 사이보다 더 가까운 촌수거나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우리 아빠의 말에 반박할 수 있을 정도의 육아경력과 연륜을 지녀야할 것이다. 아, 물론 질문할 때마다 내게 50만원을 내는 것은 당연하고 말고!




매거진의 이전글 이번 명절에도 친정집에 못가나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