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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아란 Jun 10. 2020

언니 그 남자 만나지 마요

착한 남자란 무엇인가

착해서 만나


그 남자 어디가 그렇게 좋아?라고 물으면 착해.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너무 궁금해서 뭐가 착한데?라고 물으면, 내 얘기도 잘 들어주고 내 성질 다 받아줘.라는 말을 들곤 했다. 그런 착한 남자, 20대 초반에 나도 있었다.




그때 그 시절 착한남자 1호


나의 CC(캠퍼스 커플) 히스토리에서 마지막 남자였던 착한남자 1호는 참으로 못생겼었다. 주변에서 내가 아깝다는 소리를 들었고, 부모님은 왜 저렇게 못생긴 남자를 만나는지 이해를 못하고, 그가 군대에 갈 때쯤 이별을 종용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를 만났던 건, 착한남자였기 때문이었다. 그 시절 내게 착한남자란, 내 얘기 잘 들어주고, 내가 하라는 것을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을 하지 않는 남자였다. 그래서 1호는 나와 함께 교회를 다녔고, 담배를 바로 끊었으며, 심지어 젓가락 쥐는 법도 고쳤다. 또한 그는 내가 온갖 짜증과 성질을 부려도 다 받아주었다.


1호를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그때의 나는 애정결핍과 낮은 자존감으로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었고, 온 마음이 상처투성이었다. 그 상처를 가까운 남자 친구와 얘기하며 이해받고자 했고, 끊임없이 나를 사랑해주길 바랐다. 그래서 내가 그에게 성질을 부리면 그는 무조건 받아줘야 했다. 상처투성이인 내게 그가 화를 내는 건 허락되지 않는 일이었다. 나에 대해서 잘 아는 네가 화를 내? 너 나 사랑하지 않는구나? 하며 종종 다투기도 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무조건적으로 나를 받아주길 바라는 사랑을 원했음에도, 내가 줄 수 있는 마음보다 받는 마음이 더 크니 그것이 부담스러워 결국 이별을 통보했다. 이렇게 못난 나를 사랑할 리가 없는데? 어떻게 나를 이렇게 계속 사랑해주는 거지? 나는 너를 그만큼 사랑할 자신이 없는데? 자존감이 낮은 사람에게는 사랑을 받는 것이 주는 것보다 더 어려운 법이다. 그렇게 내가 받는 사랑에 대해 의심하고 부담스러워하며 이별을 통보하고 말았다.




착한남자란 통제가 쉬운 남자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내게 착한 남자란 내가 컨트롤(통제)이 가능한 남자를 의미했다. 앞서 말했듯 착한남자 1호는 내가 하라는 것을 했고, 하지 말라는 것을 하지 않았으며, 내가 성질을 내도 함께 화를 내지 않음으로써 나의 통제가 가능한 위치에 있었다.


나 자신을 돌아보면 그런 통제가 쉬운 남자를 바랐던 원인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원인이 되는 남성이 누구인지 개개인별로 차이는 있을 순 있겠지만, 가부장적이며 남성 중심사회에서 여성 구성원으로 살며 형성된 억눌린 감정은 낮은 자존감을 낳았고 컨트롤 쉬운 남자를 바라게 했다.


결국 1호와 같이 못생긴 남자를 만난 것도 우위의 선점이었던 것이다. 나처럼 예쁜 여자가 널 만나 주니까 넌 무조건 나한테 잘해야 해.

 


언니 그 남자 만나지 마요


최근 지인의 연애상담을 하면서, 왜 그 남자가 좋냐, 왜 계속 만나냐 물으니 자신의 성질 다 받아주는 착한남자라서 만난다고 했다.


돌아보면 1호가 끝까지 온갖 짜증과 화를 잘 받아주었던 건 아니었다. 물론 연애 초반에야 가능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에게도 한계가 오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당연한 수순이었다. 상대방의 부정적인 감정을 일방적으로 받아주는 데는 누구나 한계가 있는 법이다. 이건 남녀 관계뿐만 아니라 친구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을 정도다. 그렇다면 그 착한남자가 평생 그런 모습의 착한남자일까?


지금의 내게 착한남자란 사회적 약자의 아픔에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이다. 나의 상처에 한껏 성숙해지고, 자존감도 많이 올라가고 보니, 무조건적으로 나를 사랑해주고 받아주기만 하는 착한남자란 존재하지 않으며, 평생 나의 통제 하에 있어야할 그런 착한남자도 필요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러니까 약자의 아픔에 공감하는 '착한 사람'을 착한남자로 규정할 수 있을 때까지, 언니 그 남자 만나지 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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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3대 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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